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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사고 징계 '솜방망이'...세월호 선장도 면허 취소 안돼

해양사고 징계 '솜방망이'...세월호 선장도 면허 취소 안돼

중앙일보 2017.12.08 11:57
[데이터데이트] 4년간 해양사고 787건 전수 조사…선장 면허 취소 0건
 
또 한 번의 비보가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인천 영흥도 낚싯배 사고 얘기입니다. 낚시를 즐기러 떠났던 15명의 이웃이 이 사고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2014년 세월호 사고로 아이들을 떠나보냈던 우리는 궁금했습니다. 왜 이런 사고가 끊이질 않는지, 어떻게 하면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을지 말입니다. 그래서 2014년부터 2016년 10월까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이하 해양심판원)에 올라온 해양사고 데이터를 전수 조사해봤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충돌 사고로 침몰한 인천 영흥도 낚싯배. 이 사고로 낚시여객 15명이 목숨을 잃었다.[중앙 포토]

충돌 사고로 침몰한 인천 영흥도 낚싯배. 이 사고로 낚시여객 15명이 목숨을 잃었다.[중앙 포토]

 
세월호 사고 이듬해 줄었던 해양사고 다시 늘어
해양심판원은 해양사고 사건 심판을 담당하는 해양수산부 산하의 준사법기관입니다. 이곳에 등록된 2016년 해양사고 심판 건수는 총 237건이었습니다. 2014년(193건)과 비교해 약 22.8%가 증가했습니다. 세월호 사고 후 잠시 줄어드는가 싶었던 해양사고가 다시 늘었다는 얘기입니다. 선박 종류별로 보면 낚시어선(60건)ㆍ예인선(57건)ㆍ연안자망 어선(34건)ㆍ근해안강망 어선, 근해 채낚이 어선(각 27건) 순으로 사고 빈도가 높았습니다. 
 
유형별로 보면 지난 4년간 발생한 총 787건의 사고 가운데 344건(44%)이 충돌 사고였습니다. 이 가운데는 사람이 다치거나 숨진 경우도 포함돼 있습니다. 조업 중 그물에 걸려 넘어지거나 바다에 빠진 경우 등 충돌 이외 사상(死傷)사고도 113건(14%)이나 됐습니다. 
 
인천 낚시배 사고 선장, 이전에도 충돌 사고…조사 받던 중 또 사고
사고를 낸 사람들은 어떤 징계를 받았을까요? 해양심판원의 징계 수위는 크게 5단계로 나뉩니다. 가장 약한 ‘권고’부터 ‘견책’ ‘명령’ ‘업무정지’ ‘면허 취소’ 순입니다. 2014년부터 올해 10월까지 총 1145명이 해양사고를 내 징계대상에 올랐지만, 이들 가운데 면허가 취소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다 기울어진 세월호에서 팬티 바람으로 탈출했던 이준석 선장을요. 승객의 안전을 뒤로 한 채 가장 먼저 탈출한 이 선장은 무기징역을 살고 있습니다(2015년 11월 대법원 원심 확정). 하지만 그런 이 선장조차 면허가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무기징역을 받았는데 행정처분이 별거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천 영흥도에서 낚싯배와 충돌해 15명의 목숨을 앗아간 급유선 명진 15호의 선장 전 모(37·구속) 씨는 올해 4월에도 사고를 냈습니다. 인천 해상교통관제센터(VTS)로부터 "우선(우측)에 어선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연락을 받고도 중국 선적 화물선인 천주(TIAN ZHU) 호와 충돌한 겁니다. 선장 전 씨는 이 사고로 형사처분은 받지 않았지만, 해양심판원의 징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만약 조사가 빨리 끝났고 전씨가 강한 징계를 받았더라면, 그래서 이번에 배를 몰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면허 취소’ 다음으로 강한 ‘업무 정지’ 처분을 받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전체 1145명 가운데 547명(48%)이 1개월 이상의 업무 정지를 받긴 했지만, 그중 절반 이상(303명)은 집행이 유예됐습니다. 실제 1개월 이상 배를 몰지 못하게 된 사람은 전체 징계자의 다섯명 중 한명 꼴(244명, 21%)이었습니다.  
 
해양심판원은 왜 이런 ‘솜방망이 징계’를 내리는 걸까요? 해양심판원 관계자는 “세월호 사고 이후 징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 징계 수위가 높아졌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생업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보니 ‘면허 취소’ ‘업무 정지’를 남발하기보다, 재발 방지 교육 위주로 징계를 내리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데이터가 보여주는 사고 원인을 들여다보면 참담합니다.  
 
전체 사고의 절반이 ‘경계 소홀’ 탓
해양심판원이 내놓은 2012~2016년 사고원인 통계를 살펴보면 ‘항해 일반 원칙 미준수’가 83.5%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조업 중 다른 배가 다가오는지 확인을 하지 않은 ‘경계 소홀’이 56.9%를 차지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해양사고의 대부분이 ‘기본’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인재(人災)였다는 얘기입니다.  
 
또 하나 주목해 봐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2014~2016년 해양사고 징계자 649명 가운데 61세 이상의 고령자가 274명(42%)이었습니다. 승선 경력 면으로 봐도 경력 30년 이상의 '베테랑'이 307명(47%)이나 됐습니다. 결국 바다에서 오래 일한 고령의 경력자들이 사고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김광수 목포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어업 종사자들의 고령화는 사회적인 문제”라며 “고령 어업 종사자들은 현장 경험은 많지만, 생계에 집중하다 보니 안전의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인천 영흥도 낚싯배 사고 구조작업 모습. [중앙 포토]

인천 영흥도 낚싯배 사고 구조작업 모습. [중앙 포토]

 
사고 원인 파악, 징계에 시간 오래 걸려  
해양사고의 원인 파악과 징계가 늦어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해양심판원은 목포·인천·동해·부산에 있는 지방심판원과 중앙심판원(2심 담당)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심판관은 지역별 3명과 중앙에 5명, 총 17명뿐입니다. 이들이 모든 사건을 도맡아 처리하다 보니, 사고 원인 파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해양심판원이 징계를 결정해도 당사자가 불복하면 고등법원과 대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총 4심제이다 보니, 최종 결론이 나올 때까지 행정처분이 미뤄집니다. 앞서 언급했던 세월호 선장이나 영흥도 사고 배 선장에 대한 징계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은방 한국해양대학교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해양사고를 막기 위해선 국민의 안전 의식 고취와 함께, 사고 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재발을 막기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배여운 데이터분석가, 김현예 기자 bae.yeow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