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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집에 피아노 있는 사람

중앙일보 2017.12.08 01:40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학창 시절 선생님이 “집에 피아노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하던 기억이 있으신지요? 생활환경 조사라는 이름 아래 컬러TV나 냉장고 같은 물건들의 보유 여부를 표시해 오라던 가정통신문은 기억하시는지요? 대부분 가난하던 시절, 서류의 많은 칸을 비운 채 제출했던 어린 마음들이 상처 입을 게 뻔한데도 일괄적으로 행해지던 이런 조사가 지금은 무척 배려 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시절 로고가 선명했던 유명 브랜드 운동화는 그토록 갖고 싶었기에 중년이 되어도 여전히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는 아저씨들의 이야기와 피아노가 있는 친구는 당연히 이층집에 살며 레이스 달린 옷을 입고 있을 것만 같았다는 추억담은 누구나 공감하는 술자리 주제입니다.
 
수저 하나 들고 시작했던 없는 살림에서 하나씩 물건을 들이며 기뻐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애틋하게 기억되는지도 모릅니다. 외국산 밥솥을 들이며 뿌듯해하다가 김치냉장고가 당연시되고 이제 빨래 건조기를 살까 고민하는 모습은 산업사회를 거쳐 왔던 대다수 가정의 변화상인 듯합니다.
 
빅 데이터 12/8

빅 데이터 12/8

빈곤의 한을 풀기 위해 물질의 풍요를 추구하던 사회는 성장의 기울기가 완만해지면서 의미를 찾는 사회로 변화하고 물건에서 경험으로, 필요에서 욕망으로 우리의 관심이 이전하고 있습니다.
 
전시회를 관람하고 네일아트를 받으며 해외의 별미도 특별한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경험으로 여겨지는 사회가 오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시간과 비용은 제한돼 있기에 선택과 집중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나의 취향으로 귀결됩니다. 생활의 수준이 물건만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집이 없어도 여행은 떠날 수 있고, 자동차가 없어도 내가 좋아하는 해외의 음악 축제는 갈 수 있습니다.
 
요즘 자주 언급되고 있는 취향 공동체는 그 의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격’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소유하는 물건이 많은 것보다 그 의미를 이해하고 즐기는 것에서 ‘격’을 찾으려는 사회로 진화하는 것은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독특한 우리 종의 각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제 물어야 할 것은 집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보다 당신의 마음속에 어떤 취향이 있는지가 아닐는지요.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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