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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노독

중앙일보 2017.12.08 01:37
노독
-이문재(1959~ )

 
시아침 12/8

시아침 12/8

어두워지자 길이
그만 내려서라 한다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
길을 닮아 물 앞에서
문 뒤에서 멈칫거린다
나의 사방은 얼마나 어둡길래
등불 이리 환한가
내 그림자 이토록 낯선가
등불이 어둠의 그늘로 보이고
내가 어둠의 유일한 빈틈일 때
내 몸의 끝에서 떨어지는
파란 독 한 사발
몸속으로 들어온 길이
불의 심지를 한 칸 올리며 말한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한 죄
 
  
한 해의 끄트머리에 읽기 좋은 시다. 오로지 한곳을 향해 질주해 온 이에게 길은 그만 내려서라고 한다. 어둠 속에서 등불 앞에 가만히 앉아 보라고 한다. 몸속에 길을 쌓으며 살아온 독 같은 시간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마지막 두 줄은 속도를 버리고 마음을 다독인 끝에 얻게 된 뼈아픈 성찰이다.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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