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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줄리아 리를 위하여

중앙일보 2017.12.08 01:25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그 이름을 볼 줄은 몰랐다. 이구(李玖·1931~2005). 조선의 마지막 황세손이다. 그의 부인이었던 줄리아 여사의 타계 소식이 본지 보도로 알려지면서 잊혀졌던 그의 존재가 다시금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채 사흘도 안 된 지금, 그의 존재는 다시금 잊혀지는 분위기다. 그의 한평생이 그러했듯 쓸쓸하기 그지없다.
 
이구는 사후 ‘회은(懷隱)’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숨을 은’이라는 글자가 어울리는 삶이었다. 조선의 마지막 적통 후계였지만 도쿄에서 나고 자란 그의 모국어는 일본어였다. 해방 후에도 조국에 오지 못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이후 들어간 뉴욕 건축사무소에서 줄리아 멀록을 만나 결혼했고, 한국에 돌아와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활했으나 번번이 사업에 실패하며 일본으로 건너간 뒤 은둔의 삶을 택했다.
 
2003년부터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이리저리 수소문했으나 헛수고였다. “아무도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러다 2004년, 종묘제례를 주재하기 위해 한국으로 일시 귀국한 그가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는 영어로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어는 못하지만 내 정체성만큼은 한국인이다.” 자신의 순탄치 않은 인생을 얘기하면서 “후회는 없다”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왠지 힘이 없어 보였던 그가 미소를 지었던 유일한 순간은 가족에 대한 추억을 물었을 때였다. “너무 좋은 추억이 많지만 가슴속에 묻고 가려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듬해, 자신이 태어났던 터인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에서 숨을 거뒀다.
 
그가 가슴속에 묻은 추억 속엔 줄리아 여사도 자리할 터다. 이혼은 했지만 결혼 전 이름인 ‘줄리아 멀록’이 아닌 ‘줄리아 리’로 기억되길 바랐던 그의 마지막도 쓸쓸했다. 하와이 요양병원에서 숨을 거둔 사실조차 열흘 뒤에 알려졌을 정도다. 그의 죽음에 대해 대중이 반짝 관심만 보이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도 전화를 해보니 “(줄리아 리의 타계에 대해) 특별한 입장은 없다”고 했다.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적폐 아닐까. 줄리아 리와 이구 모두 하늘에선 부디 평안하길.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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