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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문재인은 한국의 파비우스가 될까?

중앙일보 2017.12.08 01:24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이 땅에 제2의 한국전쟁은 절대로 다시는 안 된다. 그것은 21세기 인류 최악의 살육과 참상을 초래할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없는 평화는 오래 걸려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우리는 세계 갈등의 중심 한국을 반드시 세계 평화의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북한은 이제 당분간 세계 안보를 뒤흔드는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었고, 핵과 ICBM을 동시에 갖는 세계 군사강국으로 전변되었다. 한국의 가장 불안한 현실이자 가장 불편한 진실이다. 사회주의 해체, 국제 고립, 김일성·김정일 사망, 고난의 행군, 체제붕괴 위기, 흡수통일 담론, 제재와 봉쇄의 사반세기를 점진적·근본적으로 역전시킨 극적인 역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핵과 ICBM을 통해 남한의 장력(張力)과 장중으로부터 확실한 이탈과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북핵과 ICBM은 반드시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상시 핵전쟁 공포, 한국 안보의 항구적 대외 의존, 전쟁 위기와 영구분단의 장기 병존, 동북아 역내 남한만 군사적 소국 상황의 지속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로부터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로마를 구한 ‘굼뜬 느림보’ 파비우스(Quintus Fabius Maximus Verrucosus)의 대지혜와 대전략에 길이 있다. 그의 이름은 극단주의, 좌우급진주의, 패배주의, 단급주의에 맞서 아우구스투스 이래 미국 조지 워싱턴에 이르기까지 거시적·미시적 극단의 상황에서 전쟁 승리 및 멸망 위기를 넘고 끝내 평화와 번영, 변혁과 승리를 창출한 대역전과 대성공의 위대한 길이었다.
 
그는 당대 대중의 인기와 박수 대신 비난을 감수하며 국가의 안녕과 평화를 중시했다. 파비우스 지혜와 전략의 ‘모순적 핵심’인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More haste, Less speed/Make Haste Slowly)”는 오래도록 황제 아우구스투스(금화에까지 헌정된 바 있다)를 비롯해 티투스, 코시모 데 메디치, 메디치가의 금과옥조였다.
 
박명림칼럼

박명림칼럼

이 ‘점진적 급진주의’ ‘급진적 점진주의’는 인류의 위대한 현인들, 즉 르네상스 시기 에라스무스, 셰익스피어, 괴테에게도 모두 수용됐다. 에라스무스는 파비우스의 격언 “천천히 서둘러라”가 제왕에게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괴테는 프랑스혁명 이후 급진적 목표제일주의가 만연할 때 아우구스투스를 언급하며 “이제 천천히 서두르자”고 잠언한다.
 
인류 최초의 성문헌법을 만든 미국 건국의 교부들은 헌법 설계, 국가 디자인의 핵심 중의 핵심을 갈등 해소와 내외 평화에 두고 끝내 이를 달성하는 경이를 연출한 바 있다. 현대 영국 개혁가들은 목표 달성을 위해 파비우스의 지혜를 따르고자 아예 유명한 파비우스협회(Fabian Society), 파비우스 전략을 통해 유럽의 좌우급진주의를 넘고 점진 개혁과 사회 변혁의 모범 경로를 개척한 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부상과 냉전 시작의 시점에 미국의 명외교관 조지 케넌은 유명한 ‘봉쇄와 억지’ 전략으로 소련의 공세를 버텨내고, 끝내 평화적인 사회주의 붕괴의 초기 토대를 놓은 바 있다. 이 현명한 외교관은 현대의 파비우스였던 것이다.
 
문재인은 과연 한국의 파비우스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한국의 조지 케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거시전략을 통해 나라의 번영과 평화의 토대를 놓은 저 ‘굼뜬 느림보들’의 놀라운 ‘천천히 서두름들’, 즉 오스트리아 통일을 이룬 카를 레너, 동서 대립의 경계국가 핀란드를 동서 대화와 유럽 평화의 진앙으로 전변시킨 파시키비와 케코넨, 내부연합과 동·서독 공존의 이중 대전환을 이룩한 빌리 브란트, 소련 견제와 대미 접근을 통한 개혁·개방과 중국 번영의 설계도를 정초한 덩샤오핑…. 현대의 국가발전과 번영을 이룬 사람들은 모두 파비우스와 아우구스투스와 조지 워싱턴과 조지 케넌과 덩샤오핑처럼 천천히 서두른 점진적 급진주의자들이었다.
 
한국의 파비우스 지혜와 파비우스 전략은 이미 다른 부분에서는 선취를 예증한 바 있다. 경제건설과 민주주의가 그것이었다. ‘선 건설 후 통일’(박정희)은 남북 국력 역전을 이룬 하나의 선도 파비우스 전략이었다. ‘선 민주 후 통일’/‘선 평화 후 통일’(김대중) 역시 매듭 굵은 파비우스 전환이었다.
 
문재인은 이제 ‘평화’에서 파비우스의 대지혜와 대전략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재인이 가야 할 파비우스 전략은 과연 무엇인가? 내부, 남북, 국제 차원에 걸쳐 하나씩 ‘천천히 서둘러’ 살펴보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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