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김춘식의 寫眞萬事] 낚싯배 전복 참사에 울려퍼진 '용비어천가'

중앙일보 2017.12.07 09:23
살아 있는 권력과 맞서야 진짜 언론! 
 박근혜를 생각하면 최순실이 떠오른다. 둘의 이미지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 두 사람의 이름은 치욕의 다른 이름이 됐다. 고건 전 총리의 말마따나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을 관리하는 정도의 자리에 만족했어야 했다.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 맡아서는 안 되는 자리를 꿰차는 건 본인에게도, 공동체에도 결국 저주일 뿐이다.  
 
3일 오전 6시12분께 인천 영흥도 앞 해상에서 22명이 탄 낚싯배가 전복됐다. 해경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낚싯배는 급유선과 충돌 후 전복됐다. [사진 옹진군청]

3일 오전 6시12분께 인천 영흥도 앞 해상에서 22명이 탄 낚싯배가 전복됐다. 해경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낚싯배는 급유선과 충돌 후 전복됐다. [사진 옹진군청]

 
 대한민국 공동체는 촛불이라는 상징적 행위로 대표되는 의식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거부했고, 3월 10일 헌법재판소 판결로 그녀의 임기는 종료됐다. 자연인 박근혜는 아직 생존하지만 정치인 박근혜는 이미 사망했다. 정치적으로 사망선고가 내려진 박근혜는 좋든 싫든 과거가 됐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그녀는 떠내려간 존재다. 변호사가 사퇴하든 말든, 그녀가 재판정에 나오든 말든, 형량이 얼마가 내려지든 말든 그것은 본류가 아니다. 국민적으로, 법률적으로, 정치적으로 삶의 방식이 거부당한 인생에 더 이상 무슨 의미가 남았겠는가. 인간으로서 이 이상 가혹한 형벌은 없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삶이 박근혜의 삶, 최순실의 삶이다.  
 
해경이 뒤집힌 배안에 남은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사진 해경]

해경이 뒤집힌 배안에 남은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사진 해경]

 
 천하게 하려면 먼저 귀하게 한다. 낮게 하려면 먼저 높게 만든다. 추하게 하려면 먼저 곱게 만든다. 한때 귀하고 높던 자가 이제 천하고 낮은 자가 되었다. 그녀가 차지했던 자리는 한때 그녀의 정적이었던 경쟁자가 차지했다. 그게 지난 5월 10일이다. 벌써 7개월 전 일이다.  
 
 실패한 리더십 직후 자리를 물려받은 후임자에게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행위의 전범이 제시된다. 전임자의 반대로만 하면 최소 낙제를 면한다는 것이다. 시대정신과 어긋난 권위주의 리더십, 철없는 은둔과 신비주의 전략, 지지자만 바라보는 편협성, 그리고 일반인의 고통을 외면한 불통, 고집 등은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세월호 7시간의 의문은 그 불통의 상징이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시간에 미용사를 불러 올림머리를 했다는 알리바이는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정치적 입장을 떠나 많은 국민이 인간적으로 절망한 대목이다.  
 
사고 후 인양된 낚싯배.최정동 기자

사고 후 인양된 낚싯배.최정동 기자

 
 낚싯배 침몰에 대처하는 문재인 정부의 매뉴얼은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사고 대처가 정답을 제시한 셈이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지도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인명구조를 담당할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우왕좌왕하며 구조 시늉만 한다거나, 유가족의 고통을 나 몰라라 외면해 공분을 일으킨 세월호 케이스는 정말 둘도 없는 반면교사의 교훈이었다.    
 
 진보 진영의 한 언론이 세월호 대처와 다른 문재인 정부의 낚싯배 전복사고 대처를 두고 ‘첫 발언부터 사과까지…문재인과 박근혜, 이것이 달랐다’란 제목으로 용비어천가를 불렀다. 낚싯배 전복 3시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문 대통령이 “현장 지휘관을 중심으로 구조작업을 진행하라”고 지시하는 등 사고 이후 첫 발언부터 사과까지 대응이 빠르고 명확했다고 극찬했다. 이 언론은 그러면서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재난 상황의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자체로 구조 작업자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고 피해자나 그 가족들에게 구조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며,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정부가 위기 상황의 해결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음을 알 수 있어 최소한의 위로를 받고 그 재난을 딛고 일어설 힘을 갖게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인천 영흥도 해상에서 낚싯배가 전복된 것에 대해 직접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찾아 해양경찰청,행정안전부 세종 상황실 등을 화상으로 연결해 상세보고를 받고 실종인원 구조 작전에 만전을 기할 것 등을 지시하고 있다.[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인천 영흥도 해상에서 낚싯배가 전복된 것에 대해 직접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찾아 해양경찰청,행정안전부 세종 상황실 등을 화상으로 연결해 상세보고를 받고 실종인원 구조 작전에 만전을 기할 것 등을 지시하고 있다.[사진=청와대]

 
 한편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그 권력자의 행위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우호적일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아무리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위의 기사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정부가 펴내는 관보도 그런 낯 뜨거운 표현을 삼간다. 이 사고의 사망자들에 대한 장례조차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이 진보 언론은 문 대통령의 행위를 극찬하면서 유가족들이 최소한의 위로를 받아 다시 일어설 힘을 갖게 한다고 호도했지만 유가족의 심정이 과연 그랬을까 의문이다.
 
사고 소식을 들은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최정동 기자

사고 소식을 들은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최정동 기자

 
 세월호 사고 때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은 이번 낚싯배 전복 사고에도 여지없이 반복됐다. 항구에서 불과 10분 거리에서 침몰한 이 사고에서 해경 고속단정은 사고 발생 37분이 지나서 도착했지만 정작 필요한 구조대가 없어 기다려야 했고 사고해역 구조를 책임진 인천구조대는 출동지령 1시간20여분이 지나 현장에 도착했다. 1분이 급한데 해경 인천구조대엔 출동할 고속보트 조차 없었다. 구조대가 사전에 장비를 점검해 신속히 출동했다면 선내에서 사망한 11명의 희생자가 줄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까지 나섰지만 탑승객 22명 중 15명이 사망함으로써 대통령이 나서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이번 낚싯배 사고의 사망률은 세월호보다 훨씬 높았다. 이 사고의 모든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한 문 대통령의 발언도 두고두고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유가족을 위로한다는 레토릭의 뉘앙스가 있지만 어쨌든 너무 나갔다. 앞으로 모든 우발적 사고의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억지 주장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낚싯배 사고를 일으킨 명진15호 선장이 6일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인천지방법원에서 들어서고 있다. 강정현 기자

낚싯배 사고를 일으킨 명진15호 선장이 6일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인천지방법원에서 들어서고 있다. 강정현 기자

 
 언론은 기본적으로 워치독이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이 진영 논리에 취해 스스로 펫독이 되어버리는 퇴행은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자기 배신 행위다. 이미 270여일 전에 정치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과거의 인물에게는 가혹한 칼날을 들이밀면서 살아 있는 현재권력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행태는 진정한 언론이 보여 줄 모습은 아니다. 좌든 우든 본분을 잊은 언론은 공해일 뿐이다.   
 
김춘식 중앙일보 포토데스크 부국장 kim.choonsik@joongang.co.kr    
 
 
기자 정보
김춘식 김춘식 기자

Innovation Lab

트렌드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