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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천하 삼분지계, 또다시 멀어지나

중앙일보 2017.12.07 01:51
차세현 중앙SUNDAY 차장

차세현 중앙SUNDAY 차장

역대 대선이나 총선에서 3위를 기록한 정당은 결국 사라졌다. 20대 젊은 유권자들에겐 이름마저 생소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통일국민당, 박찬종 전 의원의 신정치개혁당, 이인제 전 의원의 국민신당, 김종필 전 총리의 자유민주연합이 그랬다.
 
양당 구도는 한국 정치사의 비정한 단면이다. 제3당은 존속기간에 차이만 있을 뿐 결국 현재 권력인 여당에 흡수되거나 미래 권력인 제1야당에 통합됐다. 그나마 ‘정치 9단’ 김 전 총리가 이끌었던 자민련이 2006년 제1야당인 한나라당과 합병할 때까지 용케 11년을 버텼다. 15대 총선에서 50석을 얻었는데도 말이다.
 
19대 대선 이후 6개월이 지난 지금의 풍경도 다르지 않다. 먼저 지지율 4위인 유승민 대표의 바른정당이 직격탄을 맞았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자 보수진영 내에서 ‘뭉쳐야 산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9명의 소속 의원들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원내 11석으로 원내 교섭단체 지위마저 무너진 바른정당은 2018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허공에 주먹질밖에 할 수가 없었다.
 
‘비(非)박근혜, 비(非)문재인’ 제3지대 구축을 정치적 신념으로 내건 안철수 대표가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국민의당도 이미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인력에 끌려가고 있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주장한 안 대표는 젖비린내가 난다는 전 대표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국민의당 원내 지도부는 지난 5일 공무원 증원, 최저임금 보전, 법인세 증세 등에 대한 반대 입장을 갑자기 바꿔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지역구 예산 챙기기와 개헌·선거구제 개편 이면 합의 논란까지 일으키면서다. 마음은 벌써 민주당에 가 있는 듯하다.
 
반(反)통합파인 이상돈 의원은 최근 중앙SUNDAY 인터뷰에서 안 대표가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결행하면 통합 정당은 교섭단체 지위도 못 얻을 거라고 경고했다. 국민의당 호남 의원들의 민주당행은 부인했지만 예정된 수순으로 보인다. 한국 정치사가 그랬다.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약 636만 명(26.74%)의 유권자들은 정당투표에서 국민의당을 선택했다. 지난 5월 대선에서 안철수·유승민 후보는 약 700만 명(21.41%)과 220만 명(6.76%)의 지지를 받았다. 미운 놈과 덜 미운 놈 사이의 선택이 아닌 대안 세력을 희구하는 유권자들의 열망은 이만큼 강했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는 제갈량의 조언에 따라 중원의 요지인 형주를 접수했다. 이어 서진(西進)해 마침내 촉나라를 건국,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를 완성했다. 우리 정치권에 그동안 형주를 얻은 정치인은 수없이 많았다. 과연 누가 촉(蜀)을 세울 수 있을까.
 
차세현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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