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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빠진 겨울올림픽 쇼크 … 문 대통령 ‘평창 구상’ 타격

중앙일보 2017.12.07 01:35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5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 본부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러시아의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을 금지시키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선수들이 조직적으로 도핑 금지약물을 사용한 데 따른 조치다. 이날 IOC 본부 앞에서 한 여성이 러시아 국기를 흔들며 시위하고 있다. [로잔 AP=연합뉴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5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 본부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러시아의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을 금지시키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선수들이 조직적으로 도핑 금지약물을 사용한 데 따른 조치다. 이날 IOC 본부 앞에서 한 여성이 러시아 국기를 흔들며 시위하고 있다. [로잔 AP=연합뉴스]

지난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 뉴욕을 방문해 ‘평화 올림픽을 위한 메트로폴리탄 평창의 밤’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모든 분들이 평창을 직접 방문해 ‘평화 올림픽, 평창올림픽’을 완성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그러곤 “북한이 참여하는 평화 올림픽을 성사시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6일에도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남북 대화를 강조하며 "이런 과정에 평창올림픽이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평창 구상’이 연타를 맞았다. 지난달 29일 북한의 화성-15형 발사에 이어 6일 스위스에서 또 ‘한 방’이 날아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로잔에서 집행위원회를 열고 조직적 도핑 조작을 저지른 러시아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를 금지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올림픽의 붐업은 물론이고 평화의 제전이라는 의미가 상당 부분 상쇄될 수 있는 상황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도핑으로 인한 첫 국가 출전 제재=토마스 바흐(64·독일) IOC 위원장은 집행위원회 종료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가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을 전후해 자행한 도핑 조작은 올림픽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밝혔다. IOC는 이전에도 정치적 이유 등으로 특정 국가의 올림픽 출전 자격을 박탈한 적이 있다. 독일·일본(전범국)·남아프리카공화국(인종 차별)·쿠웨이트·가나·인도(정부의 과도한 개입) 등이다. 하지만 도핑으로 인한 국가 제재는 처음이다.
 
IOC는 또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의 자격을 정지하고, 도핑 조작의 막후 지휘자로 드러난 비탈리 무트코(59) 러시아 체육담당 부총리를 올림픽에서 영구 추방하기로 결의했다. IOC는 수년간 도핑 스캔들을 조사하느라 발생한 비용 등을 대신 지불하라는 취지로 ROC에 벌금 1500만 달러(약 163억원)도 부과했다.
 
러시아의 도핑 조작 스캔들은 지난해 5월 그레고리 로드첸코프 전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 대표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IOC와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합동조사 결과 러시아가 2011년부터 5년간 자국 선수들의 소변 및 혈액 샘플을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30여 개 종목 1000여 명의 도핑 결과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IOC는 러시아 국적으로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25명의 기록과 성적을 무효화하고 메달 11개를 박탈했다.
 
다만 IOC는 도핑 테스트를 통과한 러시아 선수의 경우 개인 자격으로 평창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개인 자격으로 출전 시 러시아 국기 대신 오륜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국적은 OAR(Olympic Athlete from Russia·러시아 출신의 올림픽 선수)로 표기된다. 금메달을 따도 러시아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진다. 러시아는 IOC의 결정에 반발하며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제소를 결정했다. 또 아예 ‘보이콧’을 결정, 자국 선수들의 개인 자격 출전도 불허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정부, IOC 결정 존중한다지만=IOC의 발표 이후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러시아 선수단이 개별적으로 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한 IOC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청와대 관계자도 “러시아의 조직적인 도핑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태였고, 청와대 역시 IOC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겨울스포츠 강국인 러시아의 부재는 올림픽에 대한 관심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가 “평창올림픽은 한반도와 동북아, 전 세계적인 평화 올림픽이라는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며 “IOC에 대승적 차원에서 다른 방안을 강구해 달라는 요청을 할 계획”이라고 말한 이유다.
 
고심은 더 있다. 평창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으려던 문 대통령의 평창 구상이 갈수록 꼬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 도발을 멈춘다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할 수도 있다는 게 정부 입장이었다. 정부는 중국·러시아 등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들의 지원도 기대했다. 하지만 북한의 고강도 도발에 이어 러시아까지 참가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정부가 그리던 평화 올림픽의 모습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평창 구상 수정 필요성=전문가들은 평창올림픽을 정치적 국면 전환의 돌파구로 삼으려는 정부의 구상을 현실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는 “평창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좀 조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참가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참가하더라도 국면 전환의 계기가 되기엔 부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창을 한반도 긴장 완화의 기회로 삼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국민 사이에 ‘북한이 불참하는 평창올림픽≠평화 올림픽’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성공적인 올림픽을 열고 한국의 발전상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발신하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외교부 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평창올림픽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수록 올림픽이 정치적으로 변질될 우려도 커진다. 북한은 물론 러시아와 중국도 평창올림픽 참가를 우리에 대한 레버리지(지렛대)처럼 쓸 수도 있는 일”이라며 “순수하게 올림픽의 정신에 입각해 인류 화합을 구현하는 평화의 스포츠 제전으로 치르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러시아 도핑 스캔들 일지
● 2014년 12월 독일 방송사 ARD ‘러시아 조직적 도핑’ 폭로 다큐멘터리 방영. 세계반도핑기구(WADA), 러시아 도핑 의혹 조사 착수
● 2015년 11월 WADA “러시아 육상선수들 광범위한 도핑 확인” 조사 보고서 발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러시아 국제대회 출전금지 징계
● 2016년 7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러시아의 리우올림픽 출전 여부 각 종목서 결정”. 육상·역도, 러시아의 리우올림픽 참가 불허. WADA “러시아, 소치올림서도 도핑 위반” 추가 보고서 발표
● 2016년 12월 9일 WADA “러시아, 소변 샘플 바꿔치기, 선수 1000여 명 연루” 2차 보고서 발표
● 2016년 12월 28일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 “국가 차원서 금지약물 투여” 첫 시인
● 2017년 9월 15일 미국·영국 등 17개국 반도핑기구, IOC에 “러시아, 평창올림픽 출전 금지” 요청
● 2017년 11월 5일 러시아대륙간아이스하키리그(KHL), IOC 비난하며 평창올림픽 보이콧 언급
● 2017년 11월 11일 WADA, 러시아의 도핑스캔들 입증할 데이터베이스 확보
● 2017년 11월 16일 WADA 이사회, RUSADA 자격 정지 징계 유지
● 2017년 12월 6일 IOC, 러시아의 평창올림픽 출전 금지. 도핑검사 거친 개인 참가만 허용
 
유지혜·송지훈·강태화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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