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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 쪽지예산의 패밀리 비즈니스

중앙일보 2017.12.07 01:00
서경호의 산업지도 
구유통(pork barrel)은 가축 먹이를 담는 길쭉한 그릇이다. 옛날 미국 남부의 농장에서 돼지고기 통에 고기를 던져 주면 모여드는 노예처럼 이권을 얻으려고 달려드는 정치인을 비판하는 용어다. [김회룡 기자]

구유통(pork barrel)은 가축 먹이를 담는 길쭉한 그릇이다. 옛날 미국 남부의 농장에서 돼지고기 통에 고기를 던져 주면 모여드는 노예처럼 이권을 얻으려고 달려드는 정치인을 비판하는 용어다. [김회룡 기자]

예산은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말한 대로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며, 지향하는 가치다. 하여 예산 심의는 법률 제·개정과 함께 국회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나라의 한 해 살림을 따지고 국가 경영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예산 국회는 그러나 패밀리 비즈니스의 성격이 짙다. 가족처럼 따뜻하게 서로를 챙기고 먹거리를 사이좋게 나눈다. 국회는 자신들이 받을 세비를 올리고 보좌진을 늘렸으며 특수활동비는 꼬리표만 바꿔 다는 꼼수를 부리며 유지했다. 예산국회 막판에는 선심성 지역구 사업을 챙기는 주고받기가 기승을 부렸다. 여론의 비판에도 달라지지 않는 국회의 패밀리 비즈니스를 ‘산업지도’의 시각에서 바라봤다.
 
지난달 13일 국회 운영위원회 소회의실.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가 국회의원태권도연맹에 보조금을 줘야 할지 검토하기 시작했다. 여야 의원 70여 명이 참여한 의원태권도연맹은 태권도 진흥·발전과 올림픽 정식종목 유지를 위한 의원 외교 차원에서 결성된 국회사무처 소관 법인이다. 의원태권도연맹은 보조금 3억3000만원을 요청했는데 문제는 신설법인에는 보조금을 지급할 근거가 없다는 점이었다. 국회사무처 지침은 법인 설립 허가를 받고 3년이 지난 뒤 실적을 평가해 보조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게 돼 있다. 의원태권도연맹은 올해 6월 국회사무처에 등록했다.
 
▶박홍근 소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사무처 지침을 먼저 고치고 나서 자격을 따지는 게 맞지 않습니까?
 
▶최도자 국민의당 의원=좀 해 주십시오. 좀 해 주셔요. 좋은 사업 아닙니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반대한다는 의미로) 이번에 제대로 방향 잡고 저희가 욕을 좀 먹지요.
 
▶박홍근=다 속기록에 남는 일 아닙니까? 나중에 누가 감당할 수가 있어요.
 
▶최도자=선례도 있으니 해 주십시오.
 
박 위원장은 “사사로운 정에 끌리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면서도 지침 개정과 제도 개선 등을 거론하며 보조금 지급 쪽으로 의견을 모아 갔다. 국회사무처가 내부 실무지침을 어겨 가며 소관 법인에 보조금을 지급해 온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보조금 규모는 어떻게 결정됐을까.
 
▶박홍근=사업비가 세부적으로 나와 있지가 않고 외교 활동 2억원, 시범단 5000만원, 연맹 운영 5000만원, 수련장 운영 3000만원, 이렇게 그냥 잡아 온 것 같은데….
 
▶엄용수 자유한국당 의원=다른 단체처럼 다 사업비니까 1억원 내에서 하지요.
 
▶최도자=1억원 갖고는 너무 힘들어요.
 
▶박용진=동료 의원들에게 싫은 소리 좀 듣고 원칙 세우고 가는 게 맞다고 봐요. 그것밖에 못했느냐고 얘기 듣겠지만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행정부에 할 말이 있지요.
 
▶최도자=2억원 정도면 안 되겠습니까?
 
▶박홍근=저는 그러면 더 원칙적으로 갈 거예요. 우리가 너무 편의적으로 의정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최도자=1억5000만원 하면 안 될까요?
 
▶박홍근= 그러면 (요청액의) 3분의 1로 감액해서 1억1000만원으로 하겠습니다.
 
시장에서 콩나물값 흥정하듯 보조금 규모가 결정됐다. 속기록에 남을 것이라는 부담도 패밀리 비즈니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지출 근거와 구체적인 용처도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동료 의원들의 민원에 밀려 국민 세금이 이렇게 사용돼도 괜찮을까. 어제 새벽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내년 수정예산안의 총지출 규모는 428조8000억원. 이에 비하면 1억1000만원은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정말 그럴까.
 
기획재정부의 한 전직 장관은 “정부의 예산 편성 과정에서는 도저히 채택될 수 없는 예산인데 국회에서 무리하게 옆으로 치고 들어온 예산을 쪽지예산이라고 한다면 대략 3000억~4000억원 정도 될 것”이라며 “하지만 이런 사업이 국회에서 예산안에 반영돼도 80~90%는 기재부가 수시배정으로 묶어 버린다”고 말했다. 수시배정은 국회에서 예산이 확정됐더라도 사업계획이 미비하거나 타당성이 부족한 경우 예산 배정을 보류하는 제도다.
 
기재부의 공식 입장은 ‘쪽지예산’은 없다는 것이다. 예결위 정책질의나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추가된 사업은 예산안조정소위에서 책자로 묶어 정리하는데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 사업은 2013년부터 예산 심의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과거 막판 예산 심의에 들이미는 쪽지가 동료 예결위원이나 상임위원에게 보내는 카톡이나 문자로 바뀌었을 뿐이다. 예산국회의 밤이 깊어갈수록 예결위 정책질의와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자신과 동료의 지역사업 민원이 판친다. 나라 재정을 특정 지역의 선심 사업에 나눠 준다는 의미의 ‘구유통(pork barrel) 정치’라는 비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의원들 간에 상대방의 지역사업 예산을 따내도록 서로 지원해 주는 ‘상호밀어주기(logrolling)’도 자주 일어난다”고 말했다.
 
물론 국회의원의 지역사업이라고 모두 문제 사업은 아니다. 표에 민감한 의원들이 지역사업을 챙기는 것을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다. 때로는 지역 현안을 잘 아는 의원이 예산당국이 미처 보지 못한 현장 맞춤 사업을 발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구만 보고 국가 전체를 보지 않으면 사업 타당성이 떨어져 우선순위가 낮은 사업까지 예산에 포함돼 결국 예산 낭비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안타까운 것은 선심성 지역사업을 챙겼다는 여론의 비판마저도 ‘빛나는 훈장’으로 여기는 의원이 많다는 점이다. 이미 의원 스스로 SNS 등에 자신의 ‘성과’를 공개하거나 지역 언론이 소개하는 형식으로 성공 스토리가 쏟아지고 있다. 또 다른 홍보를 피하기 위해 굳이 여기에 더 이상 인용하지 않겠다.
 
투명성과 책임성이 부족한 점은 여전히 문제다. 예산 심의 과정이 소위까지 공개되고 있지만 중요한 막판 조정작업은 예결위 간사들이 소위 밖에서 결정한다. 신해룡 전 국회예산정책처장은 “예산심의 과정이 투명하지 않으니 정실(情實)·밀실·부실 심의로 이어져 ‘3실 심사’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말했다.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박재완 전 장관은 “우리도 미국처럼 예결특위에서 총액 예산을 심의해 상임위별 한도를 정한 뒤 각 상임위에서 전권을 갖고 개별 사업을 심사해야 쪽지예산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신해룡 전 처장은 “정부가 중기재정계획인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예산안보다 먼저 국회에 제출해 재정총량을 우선순위로 두고 먼저 고민하는 사전예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눈 밝은 유권자도 절실하다. 새해가 되면 지역구 의원들이 예산 확보 전과(戰果)를 자랑할 게 분명하다. 예산은 예산인데 정작 돈은 나오지 않는 수시배정 예산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명 ‘터파기 예산’도 조심해야 한다. 소액의 설계예산만 반영해 놓고 생색내는 경우가 많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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