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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人流]코트의 화석이 말한다, 여자에게 코트는 집이다.

중앙일보 2017.12.07 00:01
막스마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안 그리피스. 30년간 브랜드에 몸담아오며 시그너처가 되는 코트를 디자인했다.

막스마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안 그리피스. 30년간 브랜드에 몸담아오며 시그너처가 되는 코트를 디자인했다.

서울에 또 하나의 패션 전시가 시작됐다. 12월 12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이탈리아 여성복 브랜드 막스마라의 '코트(Coats!)'다. 행사는 이름 그대로 1951년 브랜드 설립 이후 선보인 역대급 코트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막스마라는 스포츠웨어부터 웨딩드레스까지 여성이 입는 모든 옷을 만드는 다양한 계열 브랜드가 있지만, 이 전시에서만큼은 코트 하나만을 내세웠다. 코트 하면 막스마라, 막스마라 하면 코트를 떠올릴 만큼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기념하기 위해 이안 그리피스(Ian Griffith·52)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서울을 찾았다. 지난 30년간 막스마라에 몸담아온 그에게 이 행사는 디자이너로서의 궤적이기도 하다. 11월 27일 한남동 하얏트 호텔에서 전시에 대한 소회, 코트에 대한 철학을 들었다. 글=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막스마라  
 
 
디자이너로서 전시를 소개한다면.
"코트의 내러티브다. 행사장이 패션쇼·크리에이티브스튜디오 등 각 컨셉트에 따라 7개 방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것이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설책이 여러 챕터로 나누어져 있지만 결국 앞 챕터의 내용에 따라 뒤가 연결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의 내 작업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가령 10년 전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아 지금 컬렉션을 새롭게 구상하는 식이다. 내 일도, 전시도 하나의 스토리다. "  
12일까지 DDP에서 열리는 막스마라 ‘코트’ 전시장 내부. 시대별로 주목받았던 브랜드의 대표 아이템들을 선보였다.

12일까지 DDP에서 열리는 막스마라 ‘코트’ 전시장 내부. 시대별로 주목받았던 브랜드의 대표 아이템들을 선보였다.

 

그 '내러티브'를 시대별로 설명해달라.
"막스마라가 1951년 설립됐을 때 목표는 '현실의 여성들을 위한 현실적인 옷'이었다. 코트 역시 고급스럽지만 귀족이나 왕실의 여자들이 아닌 성공한 중산층을 대상으로 삼았다. 변호사나 의사 부인들이 입을 법한 그런 옷 말이다. 하지만 60년대 들어서는 좀 더 일하는 여성들이 입을 법한 옷을 고민했고, 70년대에는 여성 스스로 하나둘씩 의사·변호사가 되는 시대가 되면서 이들을 위한 고급 아이템에 초점을 맞췄다. 컬러·실루엣·옷감을 다양화하는 방식이었다. 80년대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이른바 '파워 드레싱'으로, 저마다의 분야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당당한 여성들을 위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지금까지 셀레브리티들의 의상과 패션쇼 컬렉션 등으로 발전했지만, 현재 여자들이 입고 있는 옷은 어쩌면 이때부터 발전돼 온 것이라 봐도 좋다.  
 

막스마라의 첫 시그너처 코트가 80년대에 나온 것도 같은 이유인가.
"물론이다. 81년에 나온 101801 코트로, 일하는 여성이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를 정의하는 옷이다. 캐시미어와 울이 혼합된 옷은 기모노 실루엣을 지니면서도 남성적이고 직선적인 칼라가 특징인데, 카리스마와 당당함이 느껴진다. 또 120㎝ 길이는 어느 체형에나 어울린다. 지금까지 36년째 같은 디자인으로 나오는 이유다."
 
1981년 첫 선을 보인 이래 지금까지 만들고 있는 막스마라의 ‘101801’ 코트. 2016년엔 엄마와 딸이 함께 입는 옷이라는 컨셉트의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1981년 첫 선을 보인 이래 지금까지 만들고 있는 막스마라의 ‘101801’ 코트. 2016년엔 엄마와 딸이 함께 입는 옷이라는 컨셉트의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101801 말고도 수십 년 째 나오는 코트가 또 있나.
"96년 만든 마누엘라 코트다. 단추 없이 벨트로 겉감을 덮어 묶는 랩 코트 형식인데, 다른 브랜드에서도 이 마누엘라와 비슷한 코트를 너나없이 만들만큼 대표적인 모델이다. 이처럼 아이콘이 되는 코트는 어느 시즌에 '자, 이제 만들까' 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스무 번, 서른 번 이상을 디자인하고 또 디자인해 보며 가장 완벽한 모양을 찾아낸다. 당시에도 "우린 더는 더 나은 랩 코트를 만들 수 없어'라고 생각할 때까지 작업을 반복했다. 랩 코트를 만들자고 시작한 건 53년부터였으니, 완성까지 43년이나 걸린 셈이다. 세 번째 아이콘으로 만든 테디 베어 코트 역시 장난감 인형의 포근한 질감과 실루엣을 코트로 옮기기 위해 노력한 옷이다."
마누엘라 코트를 입은 미국 배우 제시카 비엘.

마누엘라 코트를 입은 미국 배우 제시카 비엘.

 
전 보그 파리 편집장인 키란 로이펠트가 입은 막스마라 테디 베어 코트.

전 보그 파리 편집장인 키란 로이펠트가 입은 막스마라 테디 베어 코트.

 
이번 전시를 기념하는 '코트 서울'을 선보였다. 어떻게 작업했나.
"코트를 만들기 전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걸 해보라는 주문이 있었다. 한국 사무실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2017년초 그냥 혼자 무작정 서울에 왔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리움 뮤지엄 등을 돌아다녀보니 특징이 잡히더라. 이 도시엔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더라. 과거 유물과 현대 미술이 한 공간에 있는 장면을 보고 이게 한국 문화구나 싶었다. 유기는 그런 가운데 발견한 물건이다. 과거엔 일상적으로 쓰던 그릇인데 지금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소중한 유산이 된 물건 아닌가. 바로 이거다 싶었다. 유기의 빛깔과 광택을 코트 안감에 녹여 디자인했다."
그리피스가 한국 유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서울 코트. 유기의 광택을 안감에 적용시켰다.

그리피스가 한국 유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서울 코트. 유기의 광택을 안감에 적용시켰다.

 
 
이력서가 가장 짧은 디자이너일 것 같다. '87년부터 막스마라 재직 중'이 전부다. 처음에 브랜드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1985년 맨체스터 과학기술대(건축)를 졸업하고 런던 왕립 예술학교에서 패션을 공부했다. 87년 졸업반 때 막스마라 주최 공모를 통해 발탁됐다. 당시 브랜드 창립자인 아킬레 마라모티 회장(1927~2005)이 심사를 했다. 동기들 의상은 옷은 뭔가 크고 넓고 길었던 거에 비하면 내 의상들은 훨씬 덜 과장적이라는 게 특징이었다. 그땐 내가 왜 뽑혔는지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알 수 있었다. 그게 바로 막스마라가 만들고 싶어했던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의상들이 지금 막스마라 아카이브에 남아있고, 나 역시 휴대폰에 이 스케치를 저장해 두고 있다."
 
 
요즘 디자이너들은 브랜드를 옮겨다는 게 일반적인데 변화의 욕심이 없었나.
"막스마라는 내 집이나 다름없다. 다른 디자이너들은 새로 맡은 브랜드의 가치에 뭔가 자기 것을 얹고 싶겠지만, 나는 막스마라의 가치와 스스로 중시하는 패션 철학이 거의 일치한다. 내가 독립해서 브랜드를 만든다면 막스마라와 너무 비슷해서 소송을 당할지도 모른다."
 
 
패션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컬렉션도 많은데.
"아트를 공부했지만 패션은 예술과는 달라야한다고 믿는다. 이미 완성된 걸 감상하는 게 예술이라면, 패션은 입는 당사자가 어떻게 개성 있게 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여지를 남겨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 입을 만한 옷, 자신감을 가지고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어주는 게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막스마라의 뮤즈로 활동 중인 지지 하디드.

2016년부터 막스마라의 뮤즈로 활동 중인 지지 하디드.

 
 
현실의 여성을 위해 만들지만, 뮤즈는 없나.
"꼭 살아있는 인물이어야 하나. 그게 아니라면 전설의 배우 메릴린 먼로다. 최근 이 생각을 많이 한다. 사실 그는 섹시 심볼로 알려졌지만 아이큐 160이 넘는 똑똑한 여자였다. 새로운 컬렉션에서 지금껏 가려진 그의 지성을 보여주고 싶다. 막스마라 디자이너의 의무는 여성의 아름다움만이 아닌 지성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막스마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
"너무 많지만 늘 흥분되는 순간은 거리에서 막스마라 코트를 입은 여자를 봤을 때다. 런웨이나 패션지 커버에 나온 옷을 보통 여성이 입었다는 건 내가 옷에 담은 감성이 전달됐다는 것 아닌가. 그와 내가 뭔가 연결된 것 같아서 가서 말을 걸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왜 여자에게 코트가 이토록 중요한가.
"다른 옷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장 독특하고 감성적인 옷이라서다. 여자는 코트에 '산다(Live)'. 코트를 입는다는 건 거리를 걸으면서도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다. 코트는 여자에게 일종의 집이다. 디자이너로서도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적인 문제로 접근하게 된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막스마라 코트 전시에 온 윤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막스마라 코트 전시에 온 윤아.

 
집이라니, 편안함을 뜻하는 것인가.
"편안함은 물론이고 즐거움의 문제다. 우리가 사는 집이 단순히 기능적인가. 아니다. 일상에 가치를 부여하는 공간이다. 경험과 감성을 키워주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장소다. 자신감·안정감이 집에서 나온다. 마찬가지로 코트를 여미고 벨트를 매는 단순한 행동에서 여자는 마치 자신이 영화배우가 된 듯한 당당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만나는데 더 당당해질 수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 건축적인 디자인은 코트의 잘에 연관돼 있기도 하다. 잘 지어진 집에서 오래 살 수 있는 것처럼 정교하게 만든 코트 역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가치가 크다."
 
 
좋은 집처럼, 좋은 코트를 고르는 요령은.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아무거나 사지 마라. 시간을 들여라. 일단 옷장에 있는 옷과 어울리는가를 생각해라. 무엇보다 딱 입었을 때 이 색깔이, 이 실루엣이 정말 내 것인지 직감적으로 판단해라. 하나라도 아니라면 절대 사지 마라. 집을 고를 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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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은 이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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