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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평창 겨울올림픽은 남북관계 희망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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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평창 겨울올림픽은 남북관계 희망봉이 아니다

중앙일보 2017.12.06 01:00
‘평창’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내년 2월 이곳에서 열릴 겨울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는 문제를 두고서다. 정부는 북한 초청을 위한 분위기 조성과 여론 띄우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일각에선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단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핵·미사일 도발로 긴장을 고조시킨 북한을 불러들이려 연연하는 건 볼썽사납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뜨거운 감자’로 다가온 평창 겨울올림픽과 북한 참가의 함수관계를 짚어본다. 
 
스포츠는 이데올로기와 체제를 뛰어넘어 인류를 소통하게 만든다. 때론 외교전선의 첨병을 맡아 꽁꽁 얼어붙은 정세를 녹여준다. 미·중 관계 개선의 메신저 역할을 한 핑퐁 외교는 대표적이다. 1971년 4월 일본 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했던 미국 선수단 15명은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을 돌며 친선 경기를 펼쳐 양국 관계 복원의 물꼬를 텄다. 남북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64년 도쿄 올림픽 북한 선수단에 포함됐던 육상선수 신금단이 열두 살 때 헤어진 아버지 김문준씨를 극적으로 상봉한 건 남북 분단의 아픔을 세계에 알린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평창 겨울올림픽 북찬 참가 추진 관련 움직임

평창 겨울올림픽 북찬 참가 추진 관련 움직임

65일 앞으로 다가온 평창 겨울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려는 발걸음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무모한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격랑에 휩싸인 한반도에 봄기운을 불어넣자는 취지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0월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는 게 새 국면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북한이 출전할 경우 모든 경비와 훈련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히는 등 국제 스포츠계 분위기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적극 나섰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24일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 앞에서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 측이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북한의 반응은 싸늘했다. 선수단을 이끌고 방한한 장웅 북한 IOC 위원은 “북남관계를 체육으로 푼다는 건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다. 기대가 지나치다”며 일축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7월 초 바흐 위원장을 만나 북한의 참가를 위해 힘써 줄 것을 요청하는 등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정부와 여권도 군불 때기에 나섰다. 북한의 참가를 유도하기 위한 묘책을 강구 중이란 후문이다. 논란도 불거졌다. 한·미 합동 군사연습 중단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일 통일연구원 주최 학술회의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무렵 키리졸브 훈련을 연기해,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고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군사연습 중단을 주장하는 측은 지난달 13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평창 겨울올림픽 휴전결의안’을 근거로 제시한다. “평화와 화합이란 올림픽 정신과 성공 개최를 위한 군사 긴장 완화란 측면에서 군사연습의 잠정 중지는 충분히 명분을 갖는다”(김상기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는 지적이다.
 
하지만 비판 여론도 팽팽하다. 우선 북한의 잘못된 행위인 군사 도발과 이를 억제·방어하기 위한 연례적 훈련을 맞바꾸는 게 타당한가 하는 문제다. 둘째는 평화를 지키는 노력인 한·미 군사연습이 한반도 평화 파괴의 주범으로 인식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북한의 도발은 외면하고 한·미 군사연습을 ‘악의 근원’으로 몰아가려는 북한과 추종 세력의 논리에 말려드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셋째, 중국이 주장해 온 쌍중단(雙中斷, 북핵과 한·미 합동연습 중단)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형국이 돼 향후 중국의 입지만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우려다. 대북제재에 미온적으로 대처해 온 중국은 쌍중단과 쌍궤병행(雙軌竝行,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을 내세워 한·미 책임론을 펼쳐 왔다.
 
남북한은 올림픽을 관계 개선의 호재로 삼아 왔다. 첫 남북 정상회담 개최 석 달 후인 2000년 9월에는 호주 시드니 올림픽에서 첫 공동 입장이 성사됐다. 2002년 9월 부산 아시안게임에선 남북 공동 입장과 함께 북한에서 온 응원단이 화제를 모았다. 이듬해 겨울 아시안게임과 2004년 올림픽, 2006년 겨울올림픽과 2007년 겨울아시안게임에서도 남북 공동 입장은 이어졌다. 하지만 북한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남북 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이용해 참가하기로 합의하고도 이행하지 않았다. 정세 변화나 남북관계, 한국 정부의 성향 등에 따라 스포츠 협력의 수위를 달리하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북한의 도발 패턴을 살펴보면 한국의 국제 스포츠 행사 일정이나 남북 간 합의 이행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터키 간 3~4위전이 열리던 6월 29일 2차 연평해전을 도발했다.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자행한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은 북한에 테러지원국 족쇄를 채우게 했다.
 
북한은 대성산체육단 소속 피겨스케이팅 페어 종목의 염대옥-김주식 조가 자력으로 출전권을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10월 말 국가별 1차 참가 등록 마감에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 최종 선수단 등록 마감이 내년 1월 29일이기 때문에 아직 시간은 남았다. 평창에 올지 여부에 대해선 함구 중이다. 막판까지 지켜보며 참가에 따른 득실을 계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집권 이후 국제 스포츠 행사는 정세와 관계없이 참가토록 하는 유형을 보여왔다. ‘국가 핵 무력 완성’ 선언을 계기로 내년 초 대남 유화 공세로 돌아설지도 북한 참가의 변수다.
 
우리 사회 일각에선 북한의 참가가 평창 겨울올림픽의 흥행과 성패를 좌우하는 듯한 주장이 판친다. ‘북한 모셔 오기’에 몰입하다 보니 몸값만 올려주는 모양새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의 참가를 환영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고,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 수준의 손님 맞이 준비면 충분하다. 북한 도발에 대응한 제재·압박과 방어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88 서울 올림픽 때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 한·미 전력을 더 증강했고, 결국 북한의 오판과 준동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뒀다는 게 군 원로의 귀띔이다.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6·15 공동선언 발표 17주와 8·15 광복절, 10·4 선언 10주년 등 주요 계기마다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희망했다. 북한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김정은의 도발 카드에 뒤통수를 맞았다. 치밀한 북한 다루기 전략 없이 캘린더나 이벤트만 쳐다봐서 해결될 일은 없다. 평창 겨울올림픽 북한 참가 자체가 남북관계의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 될 것이란 기대는 버리는 게 맞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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