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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인간혁명]2500년전 중국의 설계자가 있었다
윤석만 기자 사진
윤석만 중앙일보 팀장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2500년전 중국의 설계자가 있었다

중앙일보 2017.12.02 01:00
 
춘추전국시대 인문의 부흥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사상가 공자. 영화에서 공자를 연기한 저우룬파(周潤發).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 인문의 부흥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사상가 공자. 영화에서 공자를 연기한 저우룬파(周潤發). [영화 공자]

2500년 전 동서양 문화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요? 오늘 ‘인간혁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고자 합니다. 지난주 ‘인간혁명’은 서두에서 소크라테스와 공자, 석가모니의 공통점을 물었죠. 3명 모두 세계 4대 성인(예수 포함)으로 꼽히는 분들이고 각기 동서양에서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위인들입니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3명 모두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정신문화의 꽃을 화려하게 피웠던 주인공들이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게 매우 흥미로운 포인트입니다. 비록 사는 곳은 떨어져 있었지만 이들은 각기 자신이 속한 문명에서 정신문화의 원류가 됐습니다.    
 
 ‘인간혁명’은 BC 5세기 그리스에서 인문의 부흥이 일어났던 이유를 도시국가(폴리스)의 출현과 소피스트의 등장으로 설명했습니다. 200여개의 폴리스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를 발전시키면서 생산력이 급증하고 ‘시민’이란 계급이 나타났습니다. 그 시민을 키우는 소피스트의 등장으로 학문과 사상의 다양성이 꽃을 피웠다는 이야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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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0년 전의 그리스처럼 중국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인문과 정신문화가 부흥했습니다. ‘인간혁명’은 동서양에서 어떻게 그런 일들이 동시에 가능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 떠나보고자 합니다. 지난주엔 3000년간 신화와 허구 속의 이야기로 잠들어 있던 트로이를 역사적 실체로 끌어낸 슐리만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죠. 오늘은 수 천 년 전 이미 현대의 중국을 설계한 관중(管仲, BC 716년 ~ 645년)의 이야기로 여행을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중국의 설계자 관중이 있었다.”
 기원전 8세기 천하의 패권 국가였던 주(周)나라가 쇠퇴하면서 춘추전국시대가 열렸습니다. 황제의 식읍(食邑·봉건제에서 왕이 제후들에게 내려준 봉토)을 받아 각 지역을 다스렸던 영주들이 이제는 스스로 왕을 자처하기 시작한 것이죠. 지금의 산둥반도에 위치한 제(齊)나라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주나라가 쇠퇴하면서 제후 국가들이 힘을 키우기 시작한다. 이때를 춘추시대라 부른다. [두산백과]

주나라가 쇠퇴하면서 제후 국가들이 힘을 키우기 시작한다. 이때를 춘추시대라 부른다. [두산백과]

 당시 제나라에선 폭군 양공이 죽자 왕위 계승을 놓고 규(糾)와 그의 동생 소백(小白)이 쟁탈전을 벌입니다. 당시 규의 참모였던 관중은 그의 명령으로 소백을 암살하려 했죠. 그러나 관중이 쏜 화살이 허리띠에 맞은 소백은 극적으로 살아납니다. 이 일로 전세를 역전시킨 소백은 왕위에 오르고 규는 자결합니다.
 
 그리고 왕을 살해하려 했던 관중은 사형 위기에 처하죠. 그 때 소백의 한 참모가 말합니다. “전하께서 제나라에 만족한다면 신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천하의 패자가 되고 싶다면 관중 외에는 인물이 없을 겁니다. 부디 관중을 등용하십시오.”
 
 참모의 의견을 중시했던 소백은 관중을 거두어 자기 사람으로 만듭니다. 이후 관중은 자신이 죽이고자 했던 사람의 휘하에서 재상이 됐고 제나라는 춘추전국시대의 첫 패권을 쥔 나라로 등극합니다. 당시 자신의 암살자를 오른팔로 만든 소백이 바로 그 유명한 제나라의 명군주 환공(桓公, BC 685년 ~ 643년)입니다.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패자로 만든 환공과 그를 도운 명재상 관중. [네이버]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패자로 만든 환공과 그를 도운 명재상 관중. [네이버]

 그렇다면 관중을 소백에게 천거했던 그 참모는 누굴까요? 자칫하면 자신의 목숨 또한 내놔야 했을지 모를 위험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그 참모는 관중의 오랜 친구였던 포숙아(鮑叔牙)입니다. 후대 사람들은 두 사람의 목숨을 건 우정을 빗대 ‘관포지교(管鮑之交)’라 부르고 있죠. 관중은 포숙아를 이렇게 말합니다.  
 
 “젊은 시절 함께 장사를 하면서 나는 내 몫을 더 많이 챙겼지만 포숙아는 날 욕심쟁이라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세 번이나 패하고 도망쳤지만 그는 나를 겁쟁이라 하지 않았다. 내게 노모가 계신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兒也).”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아의 사귐. 목숨을 걸 만큼 깊은 우정을 뜻하는 사자성어. [네이버]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아의 사귐. 목숨을 걸 만큼 깊은 우정을 뜻하는 사자성어. [네이버]

 한국에선 주로 관중을 우정의 대명사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중국 역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훨씬 큽니다. 중국 고대사의 전문가이면서 ‘춘추전국이야기(1~11권)’를 쓴 공원국 작가는 관중을 ‘중국의 설계자’라고 표현하고 있죠. 정치와 경제, 사법, 행정에 이르기까지 중국이라는 국가의 기틀을 만들어 놓은 사람이 바로 관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흔히 쓰이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표현도 그가 처음 구분해 놓은 것입니다. 다만 관중은 계급을 나누고 차별을 하기 위해 이렇게 구분한 것이 아니라 직업을 세분화 해 효율성을 높이려 했던 의도였습니다. 즉,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키워 본인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농공상을 나눠 놓은 것이었죠.  
 
 관중은 재상이 되어 조세개혁을 단행하고 정전(井田·토지를 9등분으로 나눠 8가구가 한 등분씩 소유하고, 가운데 필지는 공동 경작해 수확물을 국가에 바치는 방식) 제도를 개혁했습니다. 백성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토지 이용률을 높이는 한편 세금을 줄였습니다. 또 상인 출신이었던 관중은 바다에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중국 역사상 최초로 중상주의 정책을 폈습니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화폐가 널리 유통됐습니다.
중국 산둥성 쯔보시 관중기념관 앞에 있는 관중의 상. [네이버]

중국 산둥성 쯔보시 관중기념관 앞에 있는 관중의 상. [네이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때부터 농사에서 철제 농기구가 확산되고 ‘우경(牛耕·소를 농사에 이용하는 것)’이 시작됐다는 겁니다. 석기나 청동기로는 불가능했던 농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생산력이 급증한 것이었죠. 특히 관중은 제나라에서 생산되는 철의 사용량을 늘리며 기술혁신을 주도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상업이 발달하니 국가의 경제력이 강해지고 나라의 재정 또한 튼튼해졌습니다. 제나라에서 시작된 기술혁신은 곧 이웃나라로 퍼졌습니다. 관중이 설계한 국가의 체제, 사회 구조 등은 곧 춘추전국시대의 ‘글로벌 스탠다드’가 됐죠. 당시 국가들의 대부분이 철기구와 우경 등 기술혁신을 통해 높은 생산성을 갖게 됐고, 상업의 발달로 다양한 문물이 교류되면서 춘추전국시대는 문화적 융성기를 맞이합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철제 농기구가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이와 함께 농사에 소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생산력이 급증했다. [네이버]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철제 농기구가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이와 함께 농사에 소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생산력이 급증했다. [네이버]

 이때 처음 생겨난 계층이 바로 ‘사(士)’입니다. 원래 주나라 시대의 계급 구조는 지배계층인 천자와 제후, 그리고 피지배 계층인 서인으로 나뉘어 있었죠. 제나라 시대엔 제후와 그의 혈족인 대부로 세분화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토지를 갖고 있는 유산 계급이 위에 있었고, 그 아래에는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하며 조세를 바치는 평민 계급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관중이 ‘사농공상’이라는 직업 구분을 했던 것처럼 평민 중에서 ‘사(士)’라는 계층이 처음 생겨납니다. 제후와 대부처럼 토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귀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 조세를 바치는 일반 서인도 아니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력이 급증하면서 육체적 노동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새로운 계층이 나타나게 된 것이었죠.
춘추전국시대엔 상업과 유통이 발달해 다양한 화폐가 출토됐다. [네이버]

춘추전국시대엔 상업과 유통이 발달해 다양한 화폐가 출토됐다. [네이버]

 이들은 중국 역사에 처음으로 나타난 ‘지식인’ 집단이었습니다. 제후를 뒷받침해 지식을 전하기도 하고, 직접 관료를 맡아 행정을 펴기도 합니다. 공자가 활동했던 BC 5세기에는 이 같은 ‘사(士)’ 집단의 규모가 매우 커지죠. 많게는 100명씩 몰려다니면서 제후나 대부의 집에 머물면서 귀족 자제들의 선생이 되기도 했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참모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제자백가’의 출현입니다. 중국, 나아가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대부분의 사상들이 이 때 나왔습니다. 인과 의, 예 등 사람의 본성과 도덕을 강조한 공자와 맹자의 유가 사상, 엄격한 법과 제도를 중시한 한비자의 법가, 자연과 무위를 강조하는 노자와 장자의 도가, 평화와 사랑의 실천을 강조한 묵자의 묵가 등이 꽃을 피웠습니다. 
 
 특히 공자는 제자백가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유럽에 소크라테스가 있다면 아시아엔 공자가 있죠. '군자'를 강조하는 그의 정치사상은 훗날 맹자로 이어지며 동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체계의 원류가 됩니다. 특히 조선은 공자와 맹자의 유학을 받아들인 신진사대부가 주축이 돼 세운 나라로 500년간 그의 가르침을 믿고 따릅니다.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의 체제를 만든 것이 관중이라면, 그 안에 혼을 불어 넣은 건 공자입니다.  
노나라의 공자는 전국을 떠돌며 그의 사상을 전파한다. [영화 공자]

노나라의 공자는 전국을 떠돌며 그의 사상을 전파한다. [영화 공자]

  제자백가는 지난주 살펴본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과 비슷합니다. 철기의 발달로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문자의 확산으로 지식전승의 수단이 자리 잡으면서 그리스와 중국 모두 지식인이 생겨난 거였죠. 지식인이 만들어낸 지식과 학문은 문자를 통해 전달되면서 문명 발달의 가속화 했습니다.  
 
 당시 그리스와 중국은 서로 교류를 하진 않았지만 비슷한 시기 농사에서 철기를 도입하고 문자사용이 보편화 되면서 똑같은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지식인 집단이 전문적으로 세상의 근원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 거죠. 그렇다 보니 비슷한 생각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탈레스와 관중은 세상의 근원을 모두 ‘물’이라고 했죠. 정치지도자의 이상으로 현명한 철인을 제시한 플라톤이나 인과 예를 갖춘 군자를 말하는 공자는 일맥상통합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철기의 확산으로 전쟁 기술이 발달함과 동시에 농업 생산력 또한 높아졌다.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철기의 확산으로 전쟁 기술이 발달함과 동시에 농업 생산력 또한 높아졌다. [영화 공자]

 이처럼 춘추전국시대의 국가들은 전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활발한 교역을 통해 다양한 문물을 교류하며 인문의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백가로 꽃피었던 춘추전국시대의 정신문화는 BC 221년 진(秦)의 통일과 함께 암흑의 시대로 빠져듭니다. ‘분서갱유’와 같은 학문과 사상의 말살로 융성했던 인문 정신과 문화가 후퇴한 것이죠.
 
 고대 그리스와 중국의 역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술의 발달은 혁명적인 문명의 전환을 가져옵니다. 새로운 문명은 인간의 삶과 사회 제도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하게 만들고요. 개방과 관용의 정신을 토대로 다양한 생각이 오가며 성숙한 담론이 모아지면 그 시대의 문명은 높은 수준으로 발전합니다. 그러나 물질적 성장에 걸맞은 정신적 성숙을 이루지 못했을 때, 다양성이 억압되고 획일성이 강조될 때 그 사회는 곧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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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차 혁명으로 불리는 우리의 미래는 청동기에서 철기로 변했던 2500년 전 동서양보다 훨씬 큰 기술혁신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문자’에 한정됐던 지식과 문화의 소통 수단은 동영상과 홀로그램, 가상현실 등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있고요. 국가 간 장벽은 낮아지고 교류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제자백가와 소피스트가 그랬듯 한 단계 더 높은 정신문화와 인문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갖춰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선 기대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과거 지혜로운 선조들이 그랬듯 우리도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민 개개인의 의식은 눈부신 문명의 발전을 정신문화와 조화시킬 수 있을 만큼 성숙한지, 우리의 제도는 차별과 격차를 줄이고 공정한 기회를 통해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 만큼 숙의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비록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와 중국에서 살았던 이들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총량은 훨씬 많을지 몰라도, 정작 우리가 그들보다 더욱 지혜로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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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는
윤 기자는 2010년부터 교육 분야를 취재했다. 특히 인성·시민 교육 및 미래와 관련한 보도에 집중했다. 앞으로는 성적과 스펙보다 협동과 배려, 공감 같은 인성역량이 핵심능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를 주제로 ‘휴마트(humanity+smart) 씽킹’이란 책을 냈다. 유네스코가 15년마다 주최하는 세계교육포럼에서 세계시민교육 심포지엄의 기조발표자로 나서기도 했다. 중앙인성연구소 사무국장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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