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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정권의 아킬레스건…‘강영실 동무’ 판문점 탈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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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

북 정권의 아킬레스건…‘강영실 동무’ 판문점 탈출 사건

중앙일보 2017.11.29 01:00
빗발치는 총탄 세례도 자유를 향한 질주를 막지 못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지만 심장 고동은 멈추지 않았다. 끝내 살아남아 지옥 같던 청춘을 증언하라는 숙명인 듯하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지난 13일 탈북을 결행한 북한군 병사 오청성(25)씨의 이야기다. 무엇이 죽음을 무릅쓴 탈주에 나서도록 만들었을까. 그의 귀순사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과 북한 내부 실태를 들여다봤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집권 초 서해 섬 방어대를 자주 찾았다. 남측 수역 백령도와 연평도 등이 빤히 바라다보이는 북측 최전선이다. “항복 문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게 모조리 수장(水葬)시켜 버려라”는 섬뜩한 대남 위협을 쏟아낸 그는 초병들과 사진을 찍었다. 이튿날 노동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병사들과 함께하는 최고지도자’란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사진엔 북한이 감추고 싶어 하는 치부가 드러나 있었다. 몇몇 병사의 경우 단박에 심한 영양실조라는 걸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야위고 눈은 퀭한 모습이었다. 일부는 소년병으로 보일 정도로 키가 작았다. 북한군이 우리보다 평균 키가 11~13cm 작다는 걸 고려해도 그랬다. 김정은이 격노했다는 대북 첩보가 입수된 건 달포 정도 지나서였다. 병사들의 열악한 실태에 충격을 받은 김정은이 먹을 것과 주거 문제를 해결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는 요지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김정은이 현장 방문할 정도의 정예 방어부대가 왜 이런 꼴이었던 것일까. 세계 3위 규모로 119만 명에 이르는 북한군 병력의 주축은 20대 초중반의 하전사급이다. 17세 때 초모(招募·징집) 절차를 거쳐 10년간 의무복무해야 한다. 이들은 대부분 1990년대 중후반에 태어났다. 북한이 지금도 치를 떠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에 뒤이어 몇 해 동안 몰아닥친 대수해로 200만~300만 명의 주민이 사망(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증언)하는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다. 국가정보원과 미 정보 당국은 대북첩보를 통해 모두 46만 명이 아사했다는 보수적 정보 판단을 내렸지만, 북한 인구가 2500만 명 수준임을 감안할 때 대재앙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유엔과 국제인도기구 단체는 임산부·영유아 등 취약계층 지원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산모와 아이의 건강에 극히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대북 ‘모자(母子)보건 1000일 프로젝트’를 펼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엄마 배 속에서의 9개월(270일), 그리고 태어나서 2년간(730일)에 집중하자는 취지다. 북한군 병사 대부분은 재앙 같던 기근 사태로 태아 시절부터 제대로 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한 세대다. 그래서 북한 병영에는 ‘강영실 동무’로 불리는 병사가 유난히 많다고 한다. 군대에도 제대로 된 식량 공급이 안 되면서 ‘강한 영양실조에 걸렸다’는 자조 섞인 표현이다.
 
고난의 행군은 현재진행형이다. 다음 달 김정은 집권 6년을 맞지만 북한 민초의 삶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긴급 구호 차원에서 시작된 식량과 보건·의료 지원은 20년을 넘기면서 피로감(donor fatigue)을 드러낸다. 노동당의 배급망은 파산했고, ‘무상치료’는 빛이 바랬다. 대북 의료지원 활동을 벌여온 유진벨 재단의 스티브 린튼 박사가 전하는 북한 의료 실태는 참혹하다. 수술실에 전등이 없어 한낮 창밖에서 거울로 햇빛을 반사해 환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한다. 링거가 부족해 빈 사이다병에 수액을 담아 주사했고, 거즈는 넝마가 될 정도로 빨아 사용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선전 차원에서 세운 평양의 최신 병동은 그림의 떡이란 귀띔이다.
 
판문점을 넘어온 오청성씨의 몸은 북한의 열악한 보건 실태를 웅변한다. 그의 헛헛한 내장에 똬리를 틀고 있던 길이 27㎝의 회충이 던지는 메시지는 백 마디 말보다 명징하다. 2012년 4월 첫 연설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던 김정은의 다짐은 공수표가 됐다. 그 당혹감 때문인지 북한의 관영 선전매체는 오씨의 귀순을 보름 넘도록 함구하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오씨의 ‘인격 침해’ 문제를 들고나온 김종대 정의당 의원 주장은 뜬금없어 보인다. 김 의원은 수술 집도의 이국종 교수가 회충 검출 사실 등을 공개한 게 귀순 병사의 인격을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탈북을 막으려고 총격을 퍼부은 북한군과 다름없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에야 뒤늦게 사과에 나섰지만 어물쩍 넘길 일은 아니다. 진정 그가 북한 주민의 인격과 존엄성을 살갑게 챙길 생각이라면 구충제 하나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북한 당국에 비판 성명이라도 내는 게 맞다. 그게 혈세로 의원 세비를 대주는 국민에게 석고대죄하는 길이다. ‘정의’란 간판을 단 소속 정당에 끼친 누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길이기도 하다.
 
자유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는 이유로 40여 발의 AK 소총 사격을 서슴없이 퍼붓는 북한군 경비병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옛 동독의 베를린 장벽 탈출 장면이 오버랩된다. 300만 명의 서독행 탈출이 이어지자 동독 당국은 1961년 8월 182km에 이르는 철조망과 장벽을 기습적으로 세웠다. 죽음을 무릅쓰고 담장을 넘는 이들을 지켜보던 서베를린 시민들은 도움의 손길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총으로 위협하며 저지에 나선 동독 경비병을 향해 야유와 조소를 퍼부었다. “공산 보초병조차도 감히 총을 쏘지 못했고, 못 본 체 돌아서서 마치 ‘쏘지 않을 테니 길을 가시오’하는 표정이었다”(대한뉴스 336보, ‘자유를 찾아오는 동독 사람들’)는 상황 묘사에는 자유를 응원하는 시민의 힘이 투사된다.
 
우리의 현실은 답답하다. 대통령부터 장차관, 고위 관료 그룹이 마치 담합한 듯 이번 사태에 침묵한다. 통일부 등 대북 부처는 물론이고 인권문제 담당 기관들은 실종 상태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이런 판에 나온 브라이언 훅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관의 25일(현지시간)자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는 북한군 병사의 기생충 문제를 김씨 일가와 평양 엘리트층의 행태에 빗대어 “군인들조차 끔찍한 영양실조로 고통받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병사가 북한 주민들의 삶을 조망할 수 있는 ‘창(window)’이 될 수 있다는 의미도 부여했다.
 
언제부턴가 북한의 치부를 드러내는 상황에선 ‘침묵이 금’이자 미덕인 세상이 돼버렸다. 정치권과 관료사회, 시민단체와 언론·학계·종교·사회단체 등이 그렇다. 이 사이 북한은 더욱 근육질을 키운 채 흉포한 주먹자랑을 해댄다.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이 싸늘해진 건 북녘 동포의 참혹함을 외면한 업보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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