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소련 100만 대군 떨게한 '귀신 핀란드'···그 기막힌 전술
채인택 기자 사진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hae.intaek@joongang.co.kr

소련 100만 대군 떨게한 '귀신 핀란드'···그 기막힌 전술

중앙일보 2017.11.17 01:05
핀란드 국기.흰색은 핀란드의 눈덮인 벌판을, 푸른색은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노르딕 십자가로서 기독교를 각각 샹징한다. 푸른색은 맑고 푸른 핀란드의 호수와 하늘의 의미하기도 한다.

핀란드 국기.흰색은 핀란드의 눈덮인 벌판을, 푸른색은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노르딕 십자가로서 기독교를 각각 샹징한다. 푸른색은 맑고 푸른 핀란드의 호수와 하늘의 의미하기도 한다.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소련 100만 대군 앞에서 당당했다, 핀란드 ‘겨울전쟁’ 정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핀란드는 오는 12월 6일로 독립 선언 100주년을 맞는다. 1917년 러시아 2월혁명으로 제정이 무너지고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하자 새 나라를 세웠다. 핀란드는 러시아 혁명 와중에 독립한 나라 중 가장 인상적인 역사를 이뤘다. 핀란드·폴란드·발트3국을 제외하고는 22년 소련의 일부로 흡수됐다. 폴란드는 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개전하며 소련과 나치독일에 분할 점령됐고 발트3국은 40년 소련에 무력 합병했다. 핀란드만 예외였다. 소련에 고분고분하지도 않았다. 두 차례에 걸쳐 치열한 전면전을 치르고도 소련군을 막아냈다. 오히려 냉전시대 소련과 국경을 맞대면서도 마르크스레닌주의 이입을 막고 서방식 시장경제·의회민주주의·자유인권을 지켰다. 
 
핀란드 지도.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유럽 국가중 러시아와 가장 길게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핀란드 지도.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유럽 국가중 러시아와 가장 길게 국경을 맞대고 있다.

 
왜 소련은 핀란드를 함부로 하지 못했을까? 비결은 핀란드가 소련과 치른 ‘겨울전쟁(39년 11월 30일~40년 3월 13일) 에 있다. 당시 소련은 핀란드 국경이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32㎞ 밖에 있어 안보를 위협한다며 국경선 재조정을 압박했다. 큰 나라임을 내세우며 주권을 무시하며 무례한 요구를 한 것이다. 핀란드가 이를 거절하자 '소비에트 제국' 소련은 즉각 전쟁에 나섰다. 당시 인구 1억6852만 명의 소련은 99만8100명의 병력과 2514~6514대의 전차, 3880대의 항공기를 동원해 물량작전에 나섰다. 당시 인구 300만 명의 핀란드는 25만~34만 명의 병력과 32대의 전차, 114대의 항공기로 맞섰다. 소련 병력은 핀란드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이르렀다. 
 
유럽에서의 핀란드 위치. .핀란드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3000달러에 이르는 강소국의 대표주자다.

유럽에서의 핀란드 위치. .핀란드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3000달러에 이르는 강소국의 대표주자다.

 
핀란드는 이 전쟁의 총사령관에 72세의 노장군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하임(1867~1951)을 임명했다. 핀란드 출신이지만 인구의 6~10%를 차지하는 소수민족인 스웨덴어 사용자로 제정 러시아군에서 중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핀란드가 독립하자 귀국했지만 핀란드어를 제대로 하지 못해 통역을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핀란드 내전 당시 백위대를 지휘해 러시아 볼셰비키의 지원을 받은 적위대를 물리치고 현대 핀란드 건국의 초석을 놓았다. 
 
겨울전쟁을 이끈 핀란드의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하임(1867~1951) 원수. 1944~46년 대통령을 지냈다.

겨울전쟁을 이끈 핀란드의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하임(1867~1951) 원수. 1944~46년 대통령을 지냈다.

 
만네르하임은 새 조국에 충성하며 국민 기대에 부응했다. 그가 이끈 핀란드군은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지혜로 ‘세계 최초’를 양산했다. 세계 최초로 겨울용 백색 설상군복을 도입했으며 차량과 야포도 그렇게 위장했다. 세계 최초의 스키부대도 꾸렸다. 병력이 모자라자 저격수를 활용했다. 지형지물을 활용한 위장으로 은신하고 있다 적이 나타나면 먼 곳에서 필살의 총탄을 날렸다. 핀란드군의 전설적인 저격수 시모 해위해(1905~2002)는 542명(800명이라는 설도 있음)을 사살했다. 핀란드의 저격수 양성 방식은 전 세계에 퍼졌다. 핀란드인의 '궁즉통'은 현대전 교리까지 바꿨다.
 
 
핀란드군의 전설적인 저격수 시모 해위해(1905~2002)는 겨울전쟁 중 542명(800명이라는 설도 있음)을 사살했다. 자신을 노린 소련군의 포격으로 얼굴에 파편을 맞았다.

핀란드군의 전설적인 저격수 시모 해위해(1905~2002)는 겨울전쟁 중 542명(800명이라는 설도 있음)을 사살했다. 자신을 노린 소련군의 포격으로 얼굴에 파편을 맞았다.

핀란드군은 현대 기술을 활용한 신전술 채택에도 적극적이었다. 자체 개발한 ‘1931년식 수오미(핀란드어로 핀란드어라는 뜻) 기관단총’으로 소련군을 기습했다. 무거운 소총탄 대신 가벼운 9㎜ 권총탄으로 속사가 가능한 대신 화력이 약한 것이 흠이다. 핀란드인은 적에게 몰래 접근해 기관단총으로 단시간에 연발사격을 가하고 사라지는 신보병전술을 개발해 단점을 장점으로 바꿨다. 개인화기에 탄약을 한꺼번에 최대한 많이 장탄하기 위해 71발이 들어가는 동그란 드럼형 탄창도 개발했다. 눈밭에 설상복 차림에 스키를 타고 귀신처럼 불쑥 나타나 기관단총을 갈기고 핀란드군 앞에 소련군은 속수무책이었다. 
 
핀란드의 겨울전쟁

핀란드의 겨울전쟁

겨울전쟁 당시 설상복으로 위장한 기관총 분대.

겨울전쟁 당시 설상복으로 위장한 기관총 분대.

 
나중에 소련군은 이를 벤치마킹해 ‘따발총’으로 불리는 PPSh-41 기관단총을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선 무장공비들이 많이 쓰던 개인화기다. 2차대전 중후반기 소련군의 상징이 된 원통형 드럼 탄창도 겨울전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관단총은 독일군도 유용하게 사용했다. 2차대전 중 독일군을 상징했던 기갑부대는 기관단총을 든 기갑보병과 함께 움직여 전술 시너지를 극대화했다. 대전차무기가 부족했던 핀란드군은 겨울전쟁 중 에탄올과 가솔린 등이 섞인 750㎖짜리 화염병 45만 개를 정식무기로 실전에 사용했다. 나라를 구하려고 온갖 갖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총동원하며 단결했던 핀란드인의 의지와 지혜는 기적을 낳았다. 
 
겨울전쟁 중 활약했던 핀란드군 스키부대.

겨울전쟁 중 활약했던 핀란드군 스키부대.

 
버티다 못한 소련은 약간의 영토를 받는 다소 후한 조건으로 전쟁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핀란드는 41년 소련 침공에 나선 나치 독일과 손잡고 겨울전쟁에서 잃은 영토를 되찾으려고 계속전쟁(41년  6월 25일~44년 9월 14일)에 나섰다. 하지만 소련이 역공에 나서자 다시 타협하고 이번엔 자국에 들어온 독일군을 쫓아내는 라플란드 전쟁(44년  9월 15일~45년 4월25일)에 나섰다. 주변 강대국 등살에 2차대전 중 여러 차례 말을 바꿔 탄 비극의 역사다. 그런데도 소련 독재자 요시프 스탈린은 종전 뒤 핀란드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겨울전쟁의 악몽이 한몫할 수밖에 없었다. 
 
1956년 헬싱키에서 열린 만네르하임 국장.

1956년 헬싱키에서 열린 만네르하임 국장.

 
 
지난 2001년 9월 핀란드를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핼싱키의 만네르하임 원수와 우르호 케코넨 대통령(1900~1986)의 묘지에 헌화하고 있다. 만네르하임의 묘지는 핀란드 독립과 위엄, 자존의 상징이다.                 [크렘린 궁 홈페이지]

지난 2001년 9월 핀란드를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핼싱키의 만네르하임 원수와 우르호 케코넨 대통령(1900~1986)의 묘지에 헌화하고 있다. 만네르하임의 묘지는 핀란드 독립과 위엄, 자존의 상징이다. [크렘린 궁 홈페이지]

핀란드는 전후 미국이 제공하는 마셜 플랜 원조와 나토 가입을 사양하는 대신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 조약기구도 가입하지 않고 냉전 시기 내내 미묘한 중립을 유지했다. 냉전 당시 핀란드는 주변 강대국을 건드리지 않는 대신 주권과 체제를 유지한다는 의미의 ‘핀란드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핀란드의 중립은 온 국민이 단결력과 의지로 소련에 맞선 ‘겨울전쟁 정신’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명예로운 무장중립인 셈이다.
 
핀란드 수도 한복판에 위치한 19세기 러시아 차르 알렉산데르 2세의 동상. 강대국의 침탈 역사를 보여준다.

핀란드 수도 한복판에 위치한 19세기 러시아 차르 알렉산데르 2세의 동상. 강대국의 침탈 역사를 보여준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핀란드인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는 경제적 성공으로 이어져 현재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 달러 이상을 유지하는 부자나라로 자리 잡고 있다. 겨울전쟁 정신과 핀란드인의 선택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나라가 택할 수 있는 생존전략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겨울전쟁은 오는 30일로 개전 78주년을 맞는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모습.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모습.

1852년 세워진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헬싱키 교회.

1852년 세워진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헬싱키 교회.

1868년 완공된 헬싱키의 우스펜스키 러시아 정교 교회.

1868년 완공된 헬싱키의 우스펜스키 러시아 정교 교회.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배너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구독하기를 하시면 기사 업데이트 시
메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