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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공안검사 변창훈의 죽음 이후 … 그 흔적을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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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 중앙일보 논설위원 cho.kangsoo@joongang.co.kr

[논설위원이 간다] 공안검사 변창훈의 죽음 이후 … 그 흔적을 더듬어 본다

중앙일보 2017.11.16 01:00
조강수의 세상만사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14일 오전 분당추모공원 입구. 꽃가게가 눈에 들어와 길가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 찬 바람이 쉬잉~얼굴을 때린다. 힐끗 쳐다보는 여주인에게 물었다. "요즘 어떤 꽃이 잘 나가요?" "이게 '크리스마스 꽃'인데 많이 찾아요" 손에 받아든 포인세티아는 치명적으로 붉었다. 핏물이 스며든 것 같았다. 추모공원 관리사무소로 들어가 망자의 이름을 대자 검은 양복 차림의 직원이 포스트잇에 숫자를 적어준다. 연꽃묘역 한켠에 그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형해화된 육체를 담은 납골함이 있었다. '원주변공 차장검사 창훈'이라고 적힌 작은 비석도 보였다. 사진·안경 등 고인의 유품이 빼곡한 옆의 납골당에 비해 단출했다. 가족들이 아직 보낼 준비가 안 됐다는 신호 같았다. 작은 공간 속 검사 변창훈의 시간은 11월 6일에 멈춰 있다.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40여분 앞두고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 화장실 창문(※며칠 전 가보니 투신 방지용 쇠창살 두 개가 새로 설치돼 있었다)을 열고 투신해  숨진 바로 그날이다. 그는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때 국정원 법률보좌관으로서 압수수색 나온 검사들에게 가짜 사무실을 만들어 보여주고 자료를 은폐하는 등 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았다. 
 
그의 죽음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수사가 치열하게 전개되던 전쟁터에 '땅-'하고 울려 퍼진 한 발의 총성 같았다. 그 소리에 놀란 검찰도 잠시 흠칫하고 뒤를 돌아다봐야 했다. 가장 비통한 건 유족들이었다. 변 검사의 부인 이모 씨는 14일 기자와 만나기로 했다가 "집안 어른들이 애들 살아가는 데 도움될 게 없으니 하지 말라고 반대한다"며 정중히 취소했다. 대신 전화 통화에서 그는 이른 아침 압수수색을 나온 게 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됐다고 말했다. "압수수색을 7시 5분에 왔어요. 큰애가 고2, 작은애가 중2이라 학교 보내려고 깨우려던 시간이에요. 누가 벨을 누르길래 차를 빼달라는 소리인가 하고 모니터를 봤더니 양복 입은 분이 보였어요. 몹시 당황해서 남편과 애들을 깨웠죠. 다들 파자마 바람이었죠. 이것(남편 변고)의 시작은 그거였던 것 같아요. 남편 병원에서 마지막 떠날 때 봤는데 인간적으로 연민이 느껴졌어요. 정말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사법시험 공부해 초임을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했고 한번도 남한테 싫은 소리 안 하고 긍정적으로 살았는데, 왜 이렇게 (운명이) 가혹할까. 살아만 주면 구치소 가도 다 뒷바라지하려고 생각했는데...(흐느낌)"
 
검찰이 압수해 간 물품이 뭔가
“검사 1명, 수사관 3명이 와서 남편 휴대폰, 『국가보안법』 책이랑 애들이 게임하며 갖고 노는 갤럭시 탭을 가져갔다. 탭은 암호 패턴을 풀어달라고 해서 애들 쓰는 거라 모른다고 했더니 가져갔다. 기종도 오래됐고 무거워서 잘 안 쓰는 건데.”
 
이후 이씨로부터 장문의 문자 메시지가 여럿 왔다. 이를 문답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남편은 어떤 사람이었는지요
“힘들게 공부했지만 속 꼬인 거 없이 늘 긍정적이고 소탈하게 살았습니다. 숨지기 전 20여일간 마음 고생 지독히 하면서도 한번도 검찰 원망 안 했습니다. 구속영장 청구되기 전 이틀간 남편이 친구랑 서울 근교로 마음 달래러 갔을 때 문자 몇통 보내왔어요. 그때 제게 그러더군요. '너무 억울하고 슬프니 눈물도 안 나네'라고.”
 
돌아가신 뒤 어떤 생각이 드나요
“선생님(기자를 지칭). 저희 남편이 사회질서에 반하는 흉악범이던가요? 기억 저편에 흐릿하게 자리 잡은 4년 더 된 일로 남편은 이미 시작부터 사회적으로는 목숨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남편은 이 지리멸렬한 싸움은 죽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구나 이미 체념했던 거 같습니다.”
 
검찰에 대해 느낀 점이 있다면
“어느 신문 기사에 윤(석열) 지검장이 남편과 형아우하는 사이로 특별히 아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고 실렸더군요. 정말 잔인한 사람입니다. 망자는 말이 없음에 윤 지검장은 형제 같은 동기검사도 철저히 수사하는 진정한 칼잡이로 본인을 둔갑시켰더군요. 아. 피가 거꾸로 솟는단 표현으로도 모자랍니다. 남편은...옷 벗고 나오면 변호사보다는 두 다리 튼튼할 때 전세계를 누비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이 남자 참 열심히 살았는데...남편이 너무나 애닯습니다.”
 
마지막 문자 메시지는 이랬다.  
 
"선생님. 어제 통화 말미에 검찰에 하고 싶은 말 있냐 하셨지요? 윤 지검장에게 묻고 싶습니다. 진정 파견검사들이 국정원이란 거대기관을 상대로 의사결정에 주도적이었다 생각하는지 또한 4년이 지난 국정원의 내부문서가 실제 가정에 있다 생각하여 압수수색 준칙도 따르지 않고 이른 아침 아이들 앞에서 집을 뒤졌는지 말입니다. 구속영장은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 발부하는 게 아니던가요? 세상이 바뀌어 국정원 직원들이 다 물갈이된 지금, 4년 전 국정원에 파견간 남편이 무슨 증거를 어떻게 갖고 있을 수 있다고 보는지, 그리고 처자식 노모 다 버리고 어디로 도주할 거라 보는지요... 검사 임용 수석으로 중앙지검에 부임하여 무수히 많은 사건을 다루고 뜻한 바 있어 공안검사로 분야를 잡아 국가에 헌신했습니다. (중략) 공안검사의 길은 어찌 이다지도 험난한지요? (중략) 변창훈 검사는 검찰 선후배에게 가슴 속 불씨 하나씩 남기고 갔을 거라 믿습니다. 언젠가 세상이 바뀌어 지금의 불씨가 변창훈 차장검사를 재평가하고 새로운 역사가 열리는 초석이 되길 그저 바랄 뿐입니다."
 
검찰에는 압수수색 준칙이 존재한다.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경로당 등 다른 장소로 보내고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학교에 보낸 뒤 실시한다고 돼 있다. 특히 4년 전의 일을 갖고 이른 아침 집을 압수수색한 것은 인권침해적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대해 검찰 수사 관계자는 "압수수색 준칙을 전반적으로 잘 지킨다. 그날 다른 집에 나갔던 압수수색 팀들은 커피숍 등에서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변 검사 집에서만 문제가 생겼다. 현재 인권침해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 중이다. 이 사건에 연루된 국정원 전·현직 직원 집은 다 압수수색했기 때문에 형평성 차원에서 검사들의 집도 압수수색해야 했다"고 말했다.  
 
수사 절차뿐 아니라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4년 전 댓글 수사를 맡았던 검사들에게 재수사를 맡긴 것 자체가 보복수사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사실 변 검사 등이 연루된 수사 방해 건은 댓글 수사의 본류가 아니다. 수사 도중 튀어나온 지류다. 그럼에도 마치 적폐 부역자의 핵심처럼 급부상한 데는 곡절이 있었다.  
 
"당시 국정원 수사와 원세훈 전 원장 재판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현안 TF 소속 위원은 8명이었다. 그중 가담 정도가 경미한 직원 2명이 먼저 구속된 상황이었다. 한 사람은 유서가 발견되고 한 사람은 이상 행동을 보여 서둘러 구속했다. 뒤이어 국정원 소속 정치호 변호사가 소환도 안 했는데 스스로 검찰에 들어와 '나는 검사들이 시켜서 했다'고 자백하고는 증거 자료를 가지러 나갔다가 자살했다. 국정원 대변인을 제외하고 변 검사 등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한 4명에 대해 전원 구속영장을 청구한 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은 영장실질심사도 포기하지 않았나."(검찰 고위 관계자)
분당추모공원 연꽃묘역의 변창훈 검사 납골함. 포인세티아 꽃이 피처럼 붉다. [조강수 기자]

분당추모공원 연꽃묘역의 변창훈 검사 납골함. 포인세티아 꽃이 피처럼 붉다. [조강수 기자]

결국 가벌성이 약한 말단 직원부터 차례로 처리를 하다 보니 일망타진식 영장 청구와 구속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검찰총장 출신 변호사는 "마치 1990년대 조폭과의 전쟁 수사 때처럼 굴비 엮듯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있다. 많이 구속한다고 좋은 수사가 아니다. 싹쓸이식이 아니라 진짜 책임자 중심으로 사법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재과정에서 변 검사와 이제영 대전고검 검사가 국정원에 부임한 게 그해 4월 23일이고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러 내곡동에 들이닥친 게 4월 30일이었음을 알게 됐다. 부임하고 불과 일주일 만에 인생의 변곡점이 될 대형 사건에 휘말려든 셈이다. 한 부장검사는 "셋이 다 성격이 순하고 착하다. 불법이라고 판단해 지시를 거절했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해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국정원이 보수 정부 9년간 광범위하게 정치에 관여한 흔적은 많이 드러났다. 국정원 업무 성격 자체가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오간다는 걸 악용해왔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 수사는 끝을 봐야 한다. 다만 사람을 살리는 수사를 해야 하듯이, 국정원을 살리는 수사를 해야 한다. 수사를 엄정히 해 죄책을 엄정하게 묻되 인권을 존중하는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걱정되는 건 수사 과정에서의 ‘문무일 검찰총장 패싱’이다. 총장보다 먼저 윤 지검장이 원포인트로 발탁되면서 배태된 결과다. 이번처럼 정부 차원의 사정 수사를 둘러싼 찬성과 반대, 속전속결 속도전과 속도조절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도 드물다. "요즘 시국엔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가 분분한 것 같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거기에 답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검찰 중견 간부의 읊조림이 넋두리가 되어 귓가를 맴돈다. 그가 덧붙인다. "확실한 건 당장의 정의는 칼을 쥔 자가 정의한다는, 그것뿐일 것이다. 대원군이, 한명회가 술을 마시며 세월을 기다린 건 그래서 아니었나요?"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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