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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 귀순 총격 사건, 북한에 따질 수 있을까

중앙일보 2017.11.15 14:43
1991년 2월 13일 459차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 모습. 북측이 실질적으로 참석한 마지막 군정위다. [중앙포토]

1991년 2월 13일 459차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 모습. 북측이 실질적으로 참석한 마지막 군정위다. [중앙포토]

 
군 관계자는 지난 13일 북한군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귀순하는 과정에서 총격이 일어난 데 대해 “정전협정 위반이며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를 통해 북한에 엄중 항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의 엄중한 항의는 공허한 외침에 끝날 가능성이 크다. 군정위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459차 군정위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는 유엔사 대표들. [중앙포토]

459차 군정위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는 유엔사 대표들. [중앙포토]

 
북한은 1991년 3월 25일 한국군 황원탁 소장이 유엔 측 수석대표를 맡자 군정위 참석을 거부했다. 북한은 중국에게도 군정위에 참석하지 말 것을 종용, 중국 대표단도 결국 94년 12월 철수했다. 북한은 94년 4월 28일 군정위 북한 대표단을 완전 철수한 뒤 5월 24일 새로운 협상기구인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개설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후 유엔사령부와 북한군 간 채널인 장성급 군사회담이 가동됐다.
 
유엔사는 군정위 소집을 북한에 요구할 방침이지만 이를 전달할 채널도 마땅찮다. 남북한 통신망이 끊겼기 때문에 확성기로 통보해야한다. 또 북한이 군정위 소집에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유엔사는 유엔사 소속 장교와 필요할 경우 중립국 감독위원회 위원까지 참여하는 특별조사반(SIT)을 꾸려 자체 조사를 벌인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유엔사 특별조사반이 활동을 벌인 뒤 조사 결과를 유엔에 보고했다. 유엔사는 특별조사단 결과를 바탕으로 유감의 뜻이 담긴 성명을 발표하는 데 그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89년 5월 29일 419차 군정위 모습. [중앙포토]

89년 5월 29일 419차 군정위 모습. [중앙포토]

 
북한이 군정위를 거부한 배경엔 90년대 전략적 열세를 타파하기 위해 정전협정을 무력화하려는 노림수가 있었다.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한국이 북방정책을 펼치자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하기 위해선 정전협정 대신 평화협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군정위는 53년 정전협정 조인 후 이 협정을 이행하고 위반사항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정전협정 당사자인 유엔군과 조선인민군·중국인민지원군에서 각각 5명씩 모두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또 정전협정 이행을 감시하기 위해 스위스·스웨덴, 폴란드·체코 등 4개국 대표로 이뤄진 중립국 감독위원회가 있다. 지난 13일 유엔사 JSA 경비대대가 쓰러진 귀순 북한군을 끌고 북한군 사격으로부터 몸을 숨긴 곳이 중립국 감독위 건물이었다. 북한의 강권에 따라 중립국 감독위에서 체코 대표단은 93년 4월. 폴란드 대표단은 95년 2월 각각 철수했다.
 
419차 군정위에서 북한 대표단이 회의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419차 군정위에서 북한 대표단이 회의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군정위는 휴전 다음날인 50년 7월 28일부터 91년 5월 29일까지 460차례가 열렸다. 460차 군정위는 북한이 참가하지 않아 유엔사 단독으로만 열렸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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