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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문화예술인 아닌 사람의 ‘문화권’

중앙일보 2017.11.15 01:52
이후남 문화부 차장

이후남 문화부 차장

최근 각기 다른 자리에서 만난 문화산업 종사자들에게서 새 정부, 6개월 전 출범한 지금 정부에 대한 여러 기대나 바람을 거듭 듣게 됐다. 우연의 일치인지 공통된 키워드는 ‘지원’이다. 저쪽 분야에 비해 이쪽은 지원이 너무 적다든가, 지금 이쪽은 시장 상황이 매우 힘들어 지원이 필요하다든가 하는 얘기였다.
 
듣다보니 좀 의구심이 든다. 정치적 견해나 경제 전반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두고는 각자 입장이 다를 법한데 자기 분야에 대한 지원에는 하나같이 긍정적이다. 개인적으로 문화예술 지원에 반대하진 않지만 정부 주도의 지원이 늘 선(善)은 아니다. 특히 창작에 대한 지원은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지난 정부에서 문화예술인 지원배제명단,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진 게 가까운 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지난주 국회에선 문화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성별, 인종, 세대, 지역,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신체적 조건 등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않아야 될 항목에 ‘정치적 견해’를 새로 추가한 것이 핵심이다. 주목할 것은 그 대상이 문화예술인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란 점이다.
 
문화기본법은 2013년 말 처음 제정될 때부터 모든 국민이 문화권, 즉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향유하고 문화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지녔다는 점을 본격적으로 명시했다. 이 법에는 지금 봐도 여러모로 새로운 시각이 담겼다. ‘문화’의 폭넓은 정의도 그렇다. 예컨대 기존의 문화예술진흥법이 문학·미술·음악·무용·연극·영화 등 분야를 나열해 ‘문화예술’을 규정한 반면 문화기본법은 문화예술, 생활양식, 공동체적 삶의 방식, 가치체계, 전통 및 신념 등을 고루 ‘문화’로 아우른다.
 
이 법을 제정한 이유에선 문화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방향도 엿보인다. 기존의 관련 법률이 “주로 문화예술 창작자나 사업에 대한 지원과 청소년 교육 및 관련 산업 진흥에 치우쳐” 있어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문화적 권리에 대해서는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는 대목이다. 비록 그 이후 드러난 건 문화권 향상 대신 국정 농단이나 블랙리스트 같은 사건이지만 그렇다고 문화기본법의 취지까지 평가절하할 건 아니다.
 
새 정부가 적폐청산을 넘어 새로운 문화정책을 내놓을 때도 이는 유효한 방향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화예술 관련 단체장의 물갈이는 물론 분야마다 각종 지원제도의 확대와 중단이 다양하게 벌어졌다. 달리 말하면 온갖 제도의 운영 경험이 상당히 축적된 셈이다. 그러니 문화산업 각 분야에 선심 쓰듯 나눠주는 게 능사가 아니란 것도 잘 알리라고 기대한다.
 
이후남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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