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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주혁, 그를 기억하다 ③

중앙일보 2017.11.15 01:00
[매거진M] 우리는 2017년 10월 30일 겨울의 길목에서 김주혁을 잃었다. 하나의 세계가 스러졌다. 그가 만들고 꿈꾸고 사랑한 세계. 3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 우리는 오랫동안 그의 세계에서 행복했다. 재능있고 성실한 예술가였고, 품이 넓은 사람이었다. 배우 김주혁의 20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게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김주혁과 함께한 동료들이 매거진M에 보내 온 그의 이야기 ③
 
※2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싱글즈'

'싱글즈'

“처음 그는 착하고 어리숙한 남자 정준(이범수) 역할을 원했다. 하지만 난 그에게 잘나가는 증권맨 수헌 역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에게서 휴 그랜트의 이미지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만나보니 그가 왜 정준 역을 맡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유난히 외로움과 수줍음을 많이 탔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사람 좋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늘 동료 배우들을 편안하게 해줬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알콜 분해 효소가 없어서 술을 원체 못 마시는 그가 ‘싱글즈’ 뒤풀이 때 엄청 과음해서 기절해 실려 간 적도 있다. 애드리브를 자주 하는 배우가 아닌데, 장진영과 러브신을 찍으며 그가 큰 맘 먹고 준비해 온 대사가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는 닭살 돋는 대사가 많은데, 김주혁은 그것조차 늘 진심으로 느껴지게 하는, 남다른 부분이 있었다. 진심을 담아 던졌던 ‘싱글즈’의 대사 한 마디가 기억난다. ‘열심히 사랑했잖아요.’”

-‘싱글즈’를 함께한 권칠인 감독
 
'아내가 결혼했다'

'아내가 결혼했다'

“주혁씨는 현장에서 스태프와 동료 배우를 긴장시키지 않는 주연 배우였다. 노출 장면처럼 배우가 예민해질 대목을 촬영할 때도 상대 배우를 더 배려했다.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면서 최대한 NG를 안 내려는 모습이 고마웠다. 주혁씨는 사석에서도 거짓말을 잘 못했다. 당시엔 자기감정을 적당히 속여야 하는 예능프로그램 출연도 그런 이유로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와 이야기 나눌 때마다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려, 부단히 뒤돌아보는 사람이라 느꼈다.”

-‘아내가 결혼했다’를 함께한 이영기 프로듀서
 
“워낙 배려심이 깊고 착해서 스태프들도 그를 많이 따랐다. ‘커플즈’ 때 제작비가 넉넉지 않아 의상팀에서 걱정이 많았는데, 주혁씨가 사비로 여러 벌의 의상을 마련해 왔다. 이 사실을 모르다가, 뒤늦게 의상 스태프에게 듣고 무척 고맙고 미안했다. 편집실에서 자신의 연기를 꼼꼼히 체크할 만큼 일에서는 누구보다 완벽을 추구했다. 그 정도로 섬세하면 모나게 행동할 법도 한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다시 꼭 뭉쳐서 작품하기로 했었는데….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커플즈’를 함께한 정용기 감독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당시 여러 사정으로 홍상수 감독님이 프로모션 활동을 전혀 못하셨다. 홍보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앞길이 막막했는데, 김주혁 배우가 GV에 참여해줘 큰 힘이 됐다. 톱배우로서 부담스러운 자리일 수도 있을 텐데, 전혀 불편함 없이 적극적으로 임해줬다. 관객과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을 함께한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좋아해줘'

'좋아해줘'

“‘난 사회성도 없고 재미도 없는 사람인데, 배우를 하고 있는 게 참 신기해.’ 늘 그렇게 말했지만, 현장에 오면 배우나 스태프에게 먼저 웃으면서 다가가고 가끔은 싱거운 농담을 던지곤 했었다. 그러다 이내 다시 조용해지셨지만. 술 마시면서 급하게 친해지는 걸 못 하는 거지, 일터에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편하고 친근한 공기를 만드는 데는 꽤 능력자였던 것 같다. 너무 뜨겁거나 끈적하지 않은 그 쾌적한 공기가 참 좋았다.

이런 이야기를 언젠가 하고 싶었다. 아마 앞에서 얘기하면 민망해하며 1절만 하라고 할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그렇더라도 한 번은 말할 걸 그랬다. 같이 작업할 수 있어 몹시 기뻤고 고마웠다고, 눈에 담아둔 귀한 순간들을 가끔 혼자 꺼내보곤 했었다고. 성실한 개인주의자, 다정한 궁시렁쟁이, 소심한 야심가, 내 맘대로 그렇게 떠올려보는 당신을.”

-‘좋아해줘’를 함께한 박현진 감독
 
김주혁 필모그래피 
김주혁 필모그래피 (상)

김주혁 필모그래피 (상)

 김주혁 필모그래피 (하)

김주혁 필모그래피 (하)

 
정리=백종현·고석희·김나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사진=중앙포토, 각 영화사·방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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