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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달인 양지운 “나도 경제를 갱제라 했던 초짜였다”

중앙일보 2017.11.15 01:00
“나는 분명 ‘겨울’ ‘경제’라고 말했는데 사람들은 ‘개울’ ‘갱제’로 듣더라고. TBC(동양방송, JTBC의 전신) 선배들은 ‘목소리는 좋은데 사투리가 좀 그렇다’고 했어요. 그래서 고쳐보려고 한동안 사투리 쓰는 사람들이랑 말도 안 했어요. 표준어 쓰는 사람들만 만났죠. 퇴근하면 남대문시장이나 충무로 중앙시장에 가서 표준어 쓰는 사람들의 일상어를 매일 듣고 어학공부하듯 연습했죠.”
 
양지운(69)씨는 49년을 성우로 살았다. 반세기 동안 한길을 걸었다. 경남 통영 출신의 그는 살아남기 위해 사투리와 사투를 벌였다고 했다. 그는 ‘고쳤다’가 아니라 “극복해냈다”고 표현했다.
 
양씨는 지난달 30일 SBS ‘생활의 달인’을 끝으로 성우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은퇴 이후 2주째, 그는 “너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즐겁게 일했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즐길 자유가 주어진 게 너무 행복해요.”
 
TV 외화 시리즈 ‘600만불의 사나이’ ‘스타스키와 허치’의 목소리로 유명한 성우 양지운씨가 지난달 30일 SBS ‘생활의 달인’을 끝으로 49년 성우 생활을 마쳤다. 그의 소감은 ’홀가분하다“였다. [장진영 기자]

TV 외화 시리즈 ‘600만불의 사나이’ ‘스타스키와 허치’의 목소리로 유명한 성우 양지운씨가 지난달 30일 SBS ‘생활의 달인’을 끝으로 49년 성우 생활을 마쳤다. 그의 소감은 ’홀가분하다“였다. [장진영 기자]

양씨는 1948년 경남 통영 산골마을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바닷가에서 맘껏 뛰어노는 대신 산속에서 고구마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가족을 도왔다. 농사를 돕다가 뒤늦게 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2학년이던 17살, 서울과 경기도에 살던 두 형을 따라 의정부로 올라왔다.
 
고교 방송반 생활을 하며 방송의 맛을 알았다. 국어 선생님들도 성우를 해보라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지만 가난을 외면할 수 없었다. 당시 경제개발 열풍에 따라 한양대 토목공학과에 들어갔다.
 
“토목공학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방송에 대한 미련은 계속 남아 있었는데, 어느날 TBC 공채 소식을 접하고 흔들렸어요. 라디오 드라마를 듣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성우에 도전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는 69년 10월에 TBC 공채 5기로 합격해 성우생활을 시작했다. “사투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때 TBC에서 ‘광복 20년’이란 라디오 연속극을 했어요. 이승만 대통령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경남 마산 출신 배역을 맡았는데 물 만난 고기였지요. 회사에 편지로, 전화로 ‘글마 누고?’하는 연락이 오는데 ‘됐구나’ 싶었죠.”
 
76년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TBC 외화 ‘600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 스티브 오스틴(리 메이저스) 역을 맡아 전 국민의 스타가 됐다. 그는 지금까지 성우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은 다 받았다고 했다. 지난달에는 2017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언론통폐합으로 KBS로 자리를 옮긴 뒤 선배였던 배한성(TBC 2기)과 함께 ‘스타스키와 허치’를 녹음해 다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드니로, 해리슨 포드 목소리를 전담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방송환경 변화와 기술 발전으로 성우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공감의 언어를 전달하는 일은 결코 끝이 없다. 다만 이전보다 더 많은 재능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성우도 목소리 연기, 진행 등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씨는 두 아들의 옥바라지를 인생에서 가장 힘든 기억으로 꼽았다. 그는 87년 부인을 따라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됐다. 양씨는 병역의무를 마쳤지만, 두 아들은 병역거부를 선택했다. 현재 막내인 셋째아들(25)도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대안이 없다면 막내도 감옥에 가야합니다.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는 현재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다. “내 또래들이 고혈압·당뇨 등을 앓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병이지만 친구처럼 그저 토닥거리면서 안고 가야죠.”
 
인터뷰 중간중간 파킨슨병 증상으로 양씨는 자주 손끝을 떨었다. 하지만 그가 가꿔온 목소리에는 조금의 떨림도 없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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