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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대의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 건전한 경쟁 절실하다

중앙일보 2017.11.15 01:00
정치 선진화하려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에 대한 공론조사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결론을 도출했다. 정부 정책은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취지에서 공론조사는 시대가 요구하는 민주주의 본질에 부합한다. 방식 면에서도 응답자들의 직감적인 의견 대신 전문가가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충분한 토론을 거쳐 결론을 낸 점에서 의미가 컸다. 리셋 코리아 정치분과는 원전 재개 공론조사를 통해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숙의민주주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국회)와 숙의민주주의의 양 날개로 작동한다는 걸 고려하면 국회는 새 라이벌(숙의민주주의)을 만나 더욱 강화된 경쟁력으로 국민에게 봉사할 책무가 생겼다. 숙의민주주의 역시 첫 시도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보완해 정당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낙제수준의 국회 생산성

낙제수준의 국회 생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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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공론조사를 통해 등장한 숙의민주주의야말로 대한민국 국회에 주어진 위기이자 기회다. “제대로 된 경쟁자를 만났다”며 긴장해야 앞으로 국회가 유권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 사실 국회의 위기가 일상화된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숙의민주주의는 점잖은 문제 제기 방식이다. 24시간 방송되는 뉴스 채널이 활성화된 지 오래고 시민 각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정치에 대한 의견을 쏟아내는 시대다. 총선에서 한 번 의원을 선출하면 4년 내내 그들의 선정(善政)만 기대하라는 의회주의는 설 자리를 찾기 힘들다. 세계적으로도 의회 중심 시대는 끝났다. 문제는 우리 국회의 경우 아예 사회의 중심에 서 본 적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의회는 그것(it)이 아니고 그들(they)이라는 주장이 있다. 부실하고 무능한 국회로 인한 손해는 결국 국민의 몫이다. 의회가 제자리를 찾으려면 무엇보다 의원들이 자기 자리를 잡아야 한다.
 
무엇이 필요한가? 원내대표들 간 ‘협치’가 합의되기 전까지 그저 손 놓고 있는 현재 구도에서 벗어나 상임위원회가 주야로 쟁점 법안을 다룸으로써 의원들이 토론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 소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자주 만나 전문가들을 불러 공부해야 한다. 기명투표를 해야 하는 인사와 정책 영역도 늘려야 한다. 의원들이 던지는 표가 투명성과 책임성을 가져야 의원들이 긴장하기 때문이다.
 
또 공천심사위원회 방식을 없애고 후보 선출 과정을 개방해 정책 선호가 다른 의원들의 존재가 당내에서 자연스럽게 인정되도록 해야 한다. 지역구와 당 지도부의 입장 사이에서 주체적 선택을 하는 의원들이 늘수록 의회가 정치 변화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선거 때마다 ‘물갈이 개혁’이라 포장돼 발표되는 중진 의원 불출마 선언도 없애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식 쇼에 불과하며, 매 국회 초선 의원들이 절반에 달한다면 의원들의 전문성 축적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정책 훈수를 둘 수 있으려면 북핵이나 복지 전문가 의원들이 해당 상임위원회의 터줏대감이어야 한다.
 
“말이야 쉽지만 현실이 그렇나”라는 반론이 나오는 바로 그 지점이 정치의 시작이다. 어떤 개혁도 저절로 굴러간 적은 없다. 무엇보다 개혁의 기치를 내세우며 정치적 야심을 채우는 자연스러운 경쟁이 이어져야 한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트레이드 마크인 ‘촛불 민심’ 완성을 정당 민주화 노력으로 실현하면 어떨까?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청와대가 공천을 좌우하는 정치공학을 차단하고 기명표결로 국회법을 개정해 의원의 책임성을 제고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보수 혁신’을 말로만 떠들며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는 자유한국당은 공천심사제도를 선제적으로 폐지하고 상시적 정책청문회 운영을 주도한다면 개혁 이미지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호남파와 통합파로 갈려 내홍이 깊어 가는 국민의당은 대북 정책을 다뤄 본 호남 중진 의원과 통합파 의원들 간에 계파를 초월한 정책토론회를 열어 정체성과 확장성을 함께 확보하는 방안도 있다. 결국 개혁은 명분을 선점한 세력이 국민 여론을 업고 기득권 그룹을 압박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생산적 국회’와 ‘민주적 정당’을 요구하는 민심은 분명한 만큼 여야가 경쟁적으로 의회 개혁에 뛰어들 이유와 승산은 충분하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공론조사 시민대표단이 국민 전체의 대표성 갖게 해야
배심원제처럼 공론조사 참여 의무화 고려해볼 만 

정치분과위원

정치분과위원

공론화위원회의 시민참여단은 과연 누구를 대표하는가? 이 근본적 질문에 대한 고민과 공감대가 필요하다. 국회의원 지지율 조사는 대상을 19세 이상 유권자로 명확하게 규정한다. 반면 원전 공론조사의 대상인 시민참여단은 ‘국민 전체’ ‘능동적 시민’ 등으로 모호하게 규정됐다. 특히 학습 능력이 충분한 고등학생들은 공론조사에 따른 정책의 영향을 가장 오래 받게 됨에도 제외됐다.
 
물론 이번 조사는 대표성과 투명성을 지키기 위해 큰 공을 들였다. 참여단 선정방식부터 기존 전화 조사 방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선됐다. 비확률적 표집인 할당 방식 대신 층화확률 추출 방식을 썼고 표집 틀도 무선·유선 비율을 90대 10으로 설정했다.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적용해 총 10회 이상 재통화 규칙을 엄격히 적용했고, 표본 수도 2만 명에 이른다. 또 공사 재개에 대한 의견, 성별, 연령대에 따라 30개 층으로 나눈 후 무작위 추출을 통해 대표성 유지에 노력을 기울였다.
 
문제점은 2만 명을 추출하는 단계에서 참여 의사를 분명하게 밝힌 이들을 뽑은 것이다. 응답률이 50.1%로 높게 나타났다.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 때 ‘신고리 공론화위’라는 메시지가 뜨도록 한 탓에 조사 참여 의사가 있는 이들의 응답률이 높은 것 같다는 게 위원회의 설명이다. 이는 원전 재개 여부가 매우 중요한 이슈였음을 의미할 수 있으나 1차 조사 대상자가 정치적으로 의견이 매우 강한 유권자임을 뜻할 수도 있다.
 
여기서 다시 참여단의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만일 위원회가 논쟁적 이슈에 강한 의견을 가진 적극적 유권자를 1차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면 여기서 무작위로 추출된 시민조사단은 의견이 강한 적극적 유권자층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통상적인 국민 전체라고 보기 어렵다. 참여단의 대표성에 국민적 동의를 끌어내는 과정이 없었던 만큼 차후엔 이 부분에 논의가 있어야 한다. 배심원제처럼 공론조사 참여를 의무화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물론 대표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숙의민주주의 확장에 반감이 있는 교조적 대의민주주의자들에게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들은 선거를 통해 뽑힌 의원만이 대표성을 지니고 책임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회는 국민에게 가장 불신받는 조직이 된 지 오래다. 대의민주주의자들이 국회의 정통성 근거로 삼는 선거 투표율은 요즘 50%대에 불과하다. 의원 소환제가 없는 상황에서 선거가 끝나면 다음 선거까지 4년 동안 의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또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대로 40대 이하 여성층은 참가 희망률이 낮았다. 그러나 이처럼 참가를 꺼리는 대상자 가운데 상당수는 선거에는 참여할 것이다. 공론조사보다 투표에 참여하는 걸 더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간주하지만 특정 계층에선 조사 참여가 투표보다 더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여길 수도 있다.
 
결국 ‘선거만이 의미 있는 유권자의 의사 표현’이라며 공론조사를 폄하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숙의민주주의 시대에 국회는 전문성을 갖고 쟁점 법안 입법에 성공하는 것을 통해 존재 의미를 입증해야 한다. 중요 정책마다 공론조사를 하기에는 비용이 크게 든다. 의회가 전문적이고 효율적이라면 공론조사의 과잉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구본상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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