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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소리로 바위 깼다는 ‘배바로티’

중앙일보 2017.11.11 01:00
소리로 바위 깼다는 ‘배바로티’

소리로 바위 깼다는 ‘배바로티’

두어 해 전부터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낯선 이름이 들렸다.
 
뜬금없이 “배일동 명창 소리 들어봤죠?”라는 물음을 받기도 했다.
 
금시초문인 이름이었다.
 
그랬기에 잘 모른다고 답하면 그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소리로 바위를 깨뜨렸다고 합디다.”
 
“소리가 하도 우렁차서 별명이 ‘배바로티’.”
 
“호주의 유명 재즈 드러머 사이먼과 함께 6인조 그룹 다오름(Daorum)을 만들어
 
세계를 돌며 10년 이상 공연을 해오고 있습니다.”
 
눈으로 못 보고 귀로 못 들었으니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였다.
 
그러다 지난해 5월, 말로만 듣던 그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그가 책을 한 권 내밀었다.
 
『독공(獨功)』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러고는 소리를 들려줬다. 쩌렁쩌렁했다.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온몸에서 끌어올린 쇳소리를 터트리는 듯했다.
 
그때의 표정 또한 압권이었다.
 
찢어질 듯 입을 벌리고 터질 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소리를 만들기 위한 숱한 세월의 삶이 표정에 배어 있었다.
 
소리로 바위 깼다는 ‘배바로티’

소리로 바위 깼다는 ‘배바로티’

그를 만나고 돌아와 책을 읽었다.
 
26년간 소리꾼으로 살며 소리의 대가가 되기 위해 공부한 과정이 들어 있었다.
 
나아가 소리를 이론적으로 정리한 내용도 있었다.
 
그 책을 계기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서울 북한산 구천계곡으로 사진을 찍으러 가며 그에게 질문을 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얘기를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소리로 바위를 깨뜨렸습니까?”
 
“한 20m 되는 땡글 땡글 한 바위에 뽕나무 막대기로 장단치면서 공부했는디요.
 
한 3년쯤 때렸을까. 어느 날 고함을 지르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세게 때렸는갑소.
 
사방 1m쯤 되는 바위가 툭 떨어져 버립디다.
 
얼마 뒤 희한하게도 목청이 확 터져버렸소.”
 
“정말 7년간 폭포 옆에서 공부한 겁니까?”
 
“선암사 계곡에서 한 2년 했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좀 더 기세 있는 데서
 
해야 쓰것다 해서 지리산으로 갔는데 게서 잽혀부렀소. 될 때까지 한다고 했는디
 
그렇게 가버린 줄도 모르고 꼬박 7년이 가부렀소. 아둔하고 멍청했기에 그랬어라.”
 
“똥물도 먹었다면서요?”
 
“염금향 선생 문하에 남자 4명이 있었는디 그 양반들이 한번 묵어보자고 합디다.
 
옛날 선배들이 똥물로 목을 풀었다먼서…. 그래서 한번 먹었는디 바로 토해 부렀소. 나하고 똥은 인연이 없습디다.”
 
무엇이 그리 절절했기에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소리 공부를 했을까?
 
오죽했으면 똥물을 먹으려 했을까?
 
한 사내의 절절한 소리 사연을 듣다 보니 구천계곡에 당도했다.
 
그가 소리를 하고 나는 사진을 찍었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난데없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등산객들이 친 손뼉이었다.
 
소리가 그들의 발길을 잡은 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가 ‘심청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생로병사 희로애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게 심청가인디요.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인도 심 봉사가 눈 뜨는 대목에선 눈물을 흘립디다.
 
갈수록 힘쓰는 게 되니, 힘 있을 때 완창 음반을 내야 할 텐 디요.”
 
지난달 그를 다시 만났다.
 
오랫동안 호주에서 공연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그가 CD를 내밀었다. 지난해 말했던 ‘심청가’ 완창 음반이었다.
 
‘배일동 심청가’라고 적혀 있었다. 배 명창은 호를 ‘구민(口民)’이라 쓴다.
 
백성의 입으로 민초의 멍울진 한을 풀어놓는 소리꾼이 되겠다는 뜻이다.
 
그 음반엔 영락없는 ‘구민 배일동’의 소리가 담겨 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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