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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파일] 살충제 DDT, 약이냐 독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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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부장) kang.chansu@joongang.co.kr

[에코파일] 살충제 DDT, 약이냐 독이냐

중앙일보 2017.11.04 05:00
지난 8월 경북 영천시의 한 재래닭 사육농장의 닭과 계란, 토양에서 DDT 성분이 검출됐다. 40년 가까이 사용이 중단됐던 DDT가 어디서 왔는지가 미스터리로 등장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8월 경북 영천시의 한 재래닭 사육농장의 닭과 계란, 토양에서 DDT 성분이 검출됐다. 40년 가까이 사용이 중단됐던 DDT가 어디서 왔는지가 미스터리로 등장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40년 만에 등장한 DDT 미스터리 
지난 8월 살충제 계란 파동 와중에 또 다른 살충제인 DDT가 경북 경산시와 영천시의 산란계 농장의 계란과 닭, 농장 토양 등에서 검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DDT는 1979년에 시판이 금지됐는데, 40년 가까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문제가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닭이나 토양에서 검출된 농도를 보면 1970년대 이전에 사용했던 DDT가 남아있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높았다.
경산의 농장 닭에서 검출된 DDT는 최고 0.453ppm, 영천 농장의 닭에서는 최고 0.41ppm으로 잔류 허용 기준치 0.3ppm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농장주들은 DDT를 사용한 적이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이 DDT가 어디서 왔는지, 누가 뿌렸는지가 미스터리로 떠올랐다.
지난 8월 계란과 닭에서 모두 DDT(디클로로디페닐트라클로로에탄) 성분이 검출됐던 경북 영천의 토종닭 사육농장에서 닭 폐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8월 계란과 닭에서 모두 DDT(디클로로디페닐트라클로로에탄) 성분이 검출됐던 경북 영천의 토종닭 사육농장에서 닭 폐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제3의 살충제 디코폴 탓일까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제3의 살충제인 디코폴(Dicofol)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DDT를 원료로 사용해서 디코폴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남아있는 DDT를 제거하지 않으면 DDT가 불순물 형태로 남아있게 된다는 것이다.

디코폴이 최종 성분이지만 불순물인 DDT도 살충 능력이 절대 낮지 않기 때문에 살충제 제조업체 쪽에서는 굳이 비용을 들여서,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DDT를 걸러낼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생산·시판된 디코폴 제품 1㎏에 DDT 성분이 244g이나 들어 있었다는 논문도 있다.
디코폴은 2010년 12월 등록이 취소될 때까지 중국에서 수입돼 사용됐고, 이로 인해 국내 토양이 DDT로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DDT의 분자구조. 염소(Cl) 성분이 들어있는 유기염소계 살충제다.

DDT의 분자구조. 염소(Cl) 성분이 들어있는 유기염소계 살충제다.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유기염소계 살충제 
DDT는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에탄(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의 약자로 색깔·냄새가 없는 살충제다.
염소 성분이 들어있어 유기염소계 살충제로 분류된다.
DDT는 당연히 곤충이나 동물에게 해롭지만, 사람에게 암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5년 DDT를 그룹 2A 발암물질(사람에게 암 발생 우려 있음)로 분류했다.
DDT는 1874년에 처음 독일에서 합성됐지만, 살충 작용이 있다는 것은 1939년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헤르만 뮐러(1899~1965)가 처음 알아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군인과 시민들의 말라리아와 장티푸스를 예방하는 데 기여했다.
전쟁이 끝난 후인 1945년 10월 미국에서는 DDT가 살충제로 일반에 시판되기 시작했다.
DDT [사진 Venggage]

DDT [사진 Venggage]

국내에도 1945년 미군과 함께 들어와  
국내에서도 DDT는 1945년 이후 보건용(이와 벼룩 방제용)으로 도입됐다.
그 무렵 대한약학회에서 발행한 『약학회지』에는 ‘DDT 해설’이란 글이 실렸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방 후 진주한 미군에 의하여 신(新) 살충제로 등장한 것이 DDT였으며, 그 후 널리 물것(모기 등) 방지에 쓰이고 있는 터이나 그 사용방법에 있어 분명치 못한 점도 적지 아니할 뿐 아니라 장차 농업 방면 해충에 대한 살충제로서의 가치가 매우 주목되는 바이므로 외국잡지에 기재된 것을 택하여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DDT를 물 또는 다른 적당한 확산제를 가입하여 현탁 또는 유화하여 만든 것이 현탁액 유제이다. DDT 현탁액은 모기·이·파리·빈대·좀 등의 구제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하며 0.25% DDT 현탁액은 가축의 몸에 뿌려주는 데 사용하며, 창고·개집·닭장·공장 내 등에는 천정·벽·기타 기구 등에 5% 유제를 산포하면 효과적이다.”
해방 전후와 한국전쟁 당시에 촬영된 영상을 보면 미군이 한국 시민들 몸에, 특히 속옷에 직접 DDT를 살포하는 모습도 들어있다.
전염병을 옮기는 이를 없애기 위해 몸에 직접 DDT를 뿌리는 모습

전염병을 옮기는 이를 없애기 위해 몸에 직접 DDT를 뿌리는 모습

칭송과 비난, 극단적인 평가를 받다

DDT는 기적의 약품이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고, ‘침묵의 봄’을 부르는 무시무시한 유독물질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지난 70여 년 동안 극단적인 평가를 받은 것이다.
발명가인 뮐러는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섀런 버트시 맥그레인이 쓴 다음 글을 보면 DDT가 걸어온 길을 알 수 있다.
DDT의 살충 능력을 알아낸 파울 헤르만 뮐러, 그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DDT의 살충 능력을 알아낸 파울 헤르만 뮐러, 그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DDT를 발명한 스위스 발명가 파울 헤르만 뮐러(Paul Hermann Müller)가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을 때, 그 살충제는 페니실린만큼 기적적인 약품으로 보였다. DDT가 없었더라면, 수백만의 시민과 군인이 전쟁 기간과 그 직후에 곤충이 매개하는 발진티푸스와 말라리아로 죽어갔을 것이다. 노벨 재단은 뮐러의 살충제를 신이 준 물질이라고 불렀다. 뮐러의 발명은 합성 살충제 산업과 그것의 사용에 반대하는 환경운동을 낳았다. 그렇지만 수줍음을 잘 타고, 자연을 사랑한 파울 뮐러는 14년 뒤에 레이철 카슨(Rachel Carson)이 베스트셀러 『침묵의 봄 Silent Spring』을 통해 DDT의 사용에 사회적 경각심을 일으킨 주장에 상당히 공감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섀런 버트시 맥그레인, 『화학의 프로메테우스』
DDT에 노출된 새들이 낳은 알. 껩데기가 얇아 정상적인 번식이 불가능해졌다.

DDT에 노출된 새들이 낳은 알. 껩데기가 얇아 정상적인 번식이 불가능해졌다.

먹이사슬 통해 농축되는 환경호르몬

DDT는 사용 초기부터 해롭지 않은 곤충까지 다 죽인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았다.
더욱이 한번 살포된 DDT는 땅속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 또 생물체 내에 한 번 들어오면 잘 빠져나가지 않고 쌓인다.
이 때문에 먹이사슬을 올라갈수록 수백 배에서 수십만 배까지 쌓이는 생물농축(biomagnification)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DDT는 환경 호르몬으로도 알려져 있다. 야생동물의 번식을 막는다.
DDT에 노출된 새들의 알껍데기가 얇아져 쉽게 깨지기도 하고, 부리가 휘는 기형이 나타나기도 한다.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철 카슨은 1962년 베스트셀러가 된 책 『침묵의 봄』을 통해 DDT를 포함한 살충제가 야생동물과 환경을 오염시키고 사람의 건강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책 1장에는 다음과 같이 과장이 섞인 ‘우화’를 담고 있다.
레이첼 카슨

레이첼 카슨

미국 대륙의 한가운데쯤 모든 생물체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마을이 하나 있었다. … 그런데 어느 날 낯선 병이 이 지역을 뒤덮어 버리더니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악한 마술의 주문이 마을을 덮친 듯했다. 닭들이 이상한 질병에 걸렸다. 소 떼와 양 떼가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마을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했다. …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 들판과 숲과 습지에 오직 침묵만이 감돌았다. … 처마 밑으로 흐르는 도랑과 지붕널 사이에는 군데군데 흰 알갱이가 남아 있었다. 몇 주 전 마치 눈처럼 지붕과 잔디밭, 밭과 시냇물에 뿌려진 가루였다. 이렇듯 세상은 비탄에 잠겼다. 그러나 이 땅에 새로운 생명 탄생을 가로막은 것은 사악한 마술도, 악독한 적의 공격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저지른 일이었다. -레이철 카슨 『침묵의 봄』 제1장 ‘내일을 위한 우화’
DDT에 내성을 가진 모기의 등장 
하지만 과학자인 카슨이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그는 DDT에 내성을 가진 모기들이 등장하고 있는 데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책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책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살충제 살포 과정은 끝없는 나선형처럼 이어지게 마련이다. DDT의 보편적인 사용이 허용된 이래 독성이 더욱 심한 화학물질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다윈이 제창한 적자생존론을 증명하듯, 곤충은 살충제에 내성을 지닌 놀라운 종으로 진화해갔다. 그러다 보니 이런 곤충에 사용하기 위한 더욱 강력한 살충제가 나오고 그다음엔 이보다 독성이 더 강한 살충제가 등장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해충은 살충제 살포 후 생존 능력이 더욱 강해져서 오히려 이전보다 그 수가 많아진다. 따라서 인간은 이 화학전에서 결코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그저 격렬한 포화 속에 계속 휩싸일 뿐이다.  -레이철 카슨 『침묵의 봄』 제2장 ‘참아야 하는 의무’
 
1972년 미국 환경청 시판 금지
카슨의 주장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듬해인 1963년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과학자문위원회에 카슨의 주장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1967년 미국의 과학자·변호사 모임인 환경보호기금(Environmental Defense Fund, EDF)는 정부를 상대로 DDT를 금지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971년 미국 항소법원은 환경보호청(EPA)에 대해 DDT를 등록 취소하라고 판결했고, EPA는 7개월에 걸친 청문회를 거친 뒤 1972년 마침내 사용을 금지했다.
이를 필두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1970년대 DDT의 사용을 금지했다. 국내에서도 1979년 시판이 중단됐다.
1980년대 이후에는 세계적으로 DDT의 사용이 금지됐다. 
말라리아 모기. 열대·아열대 여행 시에는 모기에 주의해야 한다.

말라리아 모기. 열대·아열대 여행 시에는 모기에 주의해야 한다.

부산 연안에서는 아직도 검출돼 
하지만 DDT는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2011~2014년 부산 연안해역에서 채취한 퇴적물과 어류에서도 미량이지만 DDT(DDT의 분해 산물인 DDD, DDE 포함)가 검출됐다. 자연계에서 DDT가 10분의 1로 줄어드는 데는 50년이 걸린다는 보고도 있다.
 
DDT는 1950~1980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매년 4만t 이상 생산 판매됐다. 하지만 DDT의 판매가 금지되면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아프리카 국가들을 중심으로 말라리아가 다시 창궐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에 국제 보건 전문가들 가운데는 말라리아 피해가 극심한 개발도상국에서는 DDT를 다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고 조금씩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환경호르몬을 규제하는 스톡홀름협약에서도 DDT를 규제 대상 유해물질로 정하기는 했지만, 전면적으로 금지하지는 않고 있다. 2009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약 3300t의 DDT가 생산됐다.
 
DDT는 자연 생태계와 인류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준 게 사실이지만, 인류의 생명을 지켜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DDT가 독이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신중하게 사용한다면 약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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