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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누가 김이수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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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 중앙일보 논설위원 cho.kangsoo@joongang.co.kr

[논설위원이 간다] 누가 김이수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나

중앙일보 2017.11.02 01:00
조강수의 세상만사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난봄 헌법재판소의 사법 권력은 막강했다. 현직 대통령을 헌법 수호 의지 박약 등의 이유로 봉고파직시켰다. 촛불의 명령을 헌법적으로 뒷받침했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참사가 터졌다. 헌재소장 임명 과정에서 대통령 권력과 국회 권력이 충돌했다. 대통령이 직접 지명 발표까지 한 김이수 후보자는 국회에서 2표가 모자라 퇴짜를 맞았다. 청와대가 헌재소장 임기(6년) 법제화를 요구하고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려 하자 헌법재판관들까지 반발했다. 그사이 헌재는 급전직하했다. 멀쩡했던 ‘Mr. 소수의견(김이수)’도 만신창이가 됐다. ‘누가 김이수를 죽였는가’. 이 화두를 짚어 봐야 헌재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30일 퇴근 무렵,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청사 305호 앞.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집무실에서 나왔다. 외부 행사가 있어 곧 나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리 비서실에 명함을 건넨 뒤 기다리던 차였다. 3~4차례 면담을 신청했으나 매번 “지금은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고 한다”는 전갈만 받다가 행동에 나선 것이다. 다가가 인사를 하자 그는 처음엔 흠칫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하하” 그랬다. 웃는 게 웃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헛헛했다. 한 발짝 더 걸으면서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죠?”라고 하자 잠시 숨을 고르더니 또 “하하” 그랬다. 그간의 고충이 그대로 묻어났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를 굳이 따라가지 않았다. 더 물을 말도, 들을 답도 없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집무실 앞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집무실 앞

 
사흘 전 청와대가 김 권한대행과 6년 전 같은 날에 헌법재판관으로 부임한 이진성 재판관을 차기 헌재소장 후보자로 임명했지만 그동안 쌓인 앙금이 쉽게 가실 리 없다. 그래도 소장이 정식 임명되기 전까지는 계속 권한대행 역할을 해야 한다. 그 시각 김 권한대행이 향한 곳은 종각 근처 서울글로벌센터였다. 서울에 연구사무국이 있는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AACC) 주최의 1차 재판관 국제회의 개회식에 참석했다. 거기엔 헌재소장·대법원장 7명을 포함한 AACC 13개 회원국의 대표와 세계헌법재판회의 사무총장 등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환영사는 김 권한대행이, 미얀마·몽골 헌재소장이 참석한 1세션 의장은 차기 헌재소장에 지명된 이진성 재판관이 맡았다. 김 권한대행을 만나러 가기 직전, 헌재의 한 관계자가 “소장이나 권한대행 얘기는 되도록 안 하는 게 좋겠다. 지금 유리알 같으셔서…”라고 한 귀띔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자리가 그만큼 불편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차기 소장이 참석한 상황에서 권한대행 역할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김이수 재판관이 참 안됐다. 권한대행만 하다가 자신뿐 아니라 헌재 역사에 오점을 남기게 됐으니…. 인간적으로는 시골사람같이 소탈하다. 소수의견 많이 내며 자기 역할을 충실히 했다. 순리대로라면 국회에서 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됐을 때 내려놨어야 한다. 자리에 연연할 분이 아닌데 해외출장 갔다가 귀국하며 본인이 권한대행직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재판관들도 의아해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거라고 짐작했다. 권한대행 7개월이 인생을 망쳤다. 속으로 억울할지 모르나 ‘모든 것은 운명이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헌재 관계자)
 
그가 권한대행이 된 건 3월 14일 재판관 회의를 통해서다. 전임 박한철 헌재소장이 1월 말에 퇴임하자 권한대행인 이정미 재판관이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사흘 후 이 재판관이 퇴임하고 연장자인 김이수 재판관이 권한대행 바통을 넘겨받았다. 두 달 뒤 문 대통령은 김 권한대행을 차기 소장으로 지명하며 이런 사실을 직접 발표했다.
 
사달은 며칠 뒤 났다. 5월 말 국회에 보낸 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요청서에 “김 권한대행이 국가 권력의 남용을 경계하고 국민 기본권을 존중하는 의견을 개진한 대표 사례 9건 가운데 첫 번째가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의견”이라고 적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통진당 해산 사건에 직접 관여했던 전직 검찰 간부는 “만약 통진당 해산 반대의견을 소장 지명의 첫 번째 사유가 아니라 5~6번째 사유로 적시했다면 국회에서 부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적당히 숨겨도 되는 비밀을 만천하에 공개한 청와대의 아마추어리즘이 헌재 인사 참사의 서막이 됐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 패착은 국회 부결에도 불구하고 10월 초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국회가 헌재소장 임기 문제에 대한 입법적 미비점을 해결할 때까지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같은 날 문 대통령이 5부 요인 초청 오찬에 김 권한대행을 참석시켰다. 문 대통령이 이렇게 과도한 애정을 드러낸 결과는 사흘 뒤 헌정 사상 첫 헌재 국정감사 보이콧으로 나타났다. 이 자리에 권한대행 자격으로 나온 그는 야당 의원들로부터 “왜 나왔느냐. 재판관 자격도 없다. 나가라” 등의 모욕적 언사를 듣는 수모를 당했다.
 
문 대통령의 집착은 어디서 오는 걸까. 김 권한대행의 중학교 동창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둘을 연결하는 끈이란 얘기가 들린다. 코드도 맞다. 문 대통령은 과거 통진당 해산 결정과 관련해 “김이수 재판관의 반대 견해에 100% 동의한다”고 했다. 김 권한대행은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64일간 구금된 전력이 있다. 올해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권한대행 자격으로 참석해 여느 법조인과 달리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하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그가 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건 열창 다음 날이다.
 
김 권한대행의 소장직에 대한 미련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막강한 권한을 갖는 대법원장에 비해 헌재소장의 권한은 크지 않다. 의결권도 재판관 9인 중 1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건 배당 및 회의 일정 조정권 등의 권한에다 헌법 수호기관의 수장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국가 의전 서열 4위다. 임기가 10개월이든, 1년이든 영광스러운 자리다.
 
헌재의 위상 추락을 가장 답답한 심정으로 바라봤을 두 인사를 접촉했다. 서울대 법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인 박한철 전 소장을 찾아갔으나 부재중이었다. 문자메시지에도 답신이 없었다(※5부 요인에 속했던 인사가 소신을 못 밝히고 은둔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정미 전 재판관에게 소장 임명 과정의 사고 재발 방지책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바깥에 있는 사람으로서 예민한 문제라서 말씀드리기 곤란해요. 헌재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뿐입니다”고 정중하게 말했다.
헌법재판소 전경. 건물 맨 위에 9개의 무궁화가 조각돼 있다. 헌법 재판관 9명을 상징한다.

헌법재판소 전경. 건물 맨 위에 9개의 무궁화가 조각돼 있다. 헌법 재판관 9명을 상징한다.

 
헌재 옆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최은주씨는 “대통령 탄핵이 끝나면 조용할 줄 알았는데 또 시끄럽다. 여기는 평화로워 보여도 혼돈이 내재돼 있는, 들끓는 용광로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사 참사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11년 전 전효숙 재판관의 헌재소장 낙마 때도 청와대의 오판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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