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길이 끝나는 자리, 해가 떠올랐다

중앙일보 2017.11.02 00:02 부동산 및 광고특집 11면 지면보기
마침내 대장정이 끝났다. 131.7㎞ 길이 끝나는 자리에는 푸른 바다가 있었고, 푸른 바다는 붉은 해를 토해냈다. 강문해변의 일출은 길었던 여정을 마무리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마침내 대장정이 끝났다. 131.7㎞ 길이 끝나는 자리에는 푸른 바다가 있었고, 푸른 바다는 붉은 해를 토해냈다. 강문해변의 일출은 길었던 여정을 마무리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구간이다. 심심산골의 장터에서 시작한 길이 강을 거슬러 오르고 백두대간을 지나고 큰 고개를 넘어 바다 앞에서 마무리된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9코스는 강릉 시내로 들어와 경포호수를 따라 걸은 뒤 강문해변에서 끝난다. 길이 끝나는 자리에 바다가 있다. 그래서 좋다.
 
8코스 종점 송양초등학교에서 시작한 길은 야트막한 산을 넘어 죽헌저수지로 이어진다. 강태공 몇몇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배스가 제법 올라온다고 했다. 죽헌저수지를 돌아나온 길이 강릉 시내로 들어선다. 죽헌저수지 지나 오죽헌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오죽헌(烏竹軒)에 들어선다. 신사임당(1504 ~51)의 친정이다. 사임당이 예서 용꿈을 꾸고 아들 율곡 이이(1536∼84)를 낳았다. 이름처럼 검은 대나무가 자란다. 보물 제165호다. 유서 깊은 장소는 분명하지만 성지처럼 꾸민 모양은 마뜩찮다. ‘세계 최초 모자(母子) 화폐 인물 탄생지’라는 안내판 앞에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임당을 현모양처로 기억하는 것은 아들 율곡의 명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홉 번 치른 과거 모두 장원을 차지한 천재, 온갖 벼슬을 두루 거친 관료, 조선을 통틀어 가장 많은 상소를 올린 정치인, 조선 성리학을 완성한 대학자의 어머니이기에 마땅한 대우일 수 있겠다.
 
하나 사임당에 대한 평가는 인색했다고 인정해야 한다. 대관령 반정에 서 있는 시비만 봐도 알 수 있다. ‘늙으신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외로이 서울로 가는 이 마음/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강릉 친정에서 서울 시댁으로 가는 길 사임당이 남긴 칠언절구 한시다. 대관령을 읊은 허다한 시문 중에 최고로 꼽힌다.  
 
오죽헌 지나 선교장이다. 선교장은 관동 제일 사대부가의 가옥이다. 99칸으로 국내 전통가옥 중에서 가장 크다. 세종의 둘째 형 효령대군의 11대 손 이내번(1708∼81)이 약 300년 전에 터를 잡았다.
 
오죽헌. 신사임당의 친정으로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다.

오죽헌. 신사임당의 친정으로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다.

선교장이 각별한 건 주인네의 마음씨 때문이다. 대지주였으면서도 농민들이 굶지 않도록 보살펴 지역의 존경을 받았다. 금강산 유랑에 나선 수많은 묵객도 공짜로 먹이고 재웠다. 흥선대원군(1820∼98), 추사 김정희(1786~1856) 등이 선교장에서 대접을 받고 글씨와 그림을 남겼다. 이강백 관장이 들려준 일화 가운데 하나만 소개한다. 손님이 이제 그만 가기를 바라면 밥상에 차려놓은 반찬그릇의 자리를 바꿨다고 한다.
 
선교장은 원래 경포호수에 접해 있었다. 지금은 물이 많이 빠져 경포호수의 둘레가 4㎞밖에 안 되지만, 선교장이 들어선 18세기에는 둘레가 12㎞나 됐다. 선교장(船橋莊)도 배다리마을이라는 옛 지명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강릉 하면 경포(鏡浦)다. 이름대로 거울처럼 맑은 호수다. 관동의 허다한 명승 중에서 경포는 늘 맨 앞자리에 있었다. 강릉에는 보름달이 다섯 개 뜬다는 옛말처럼 경포호수 품은 강릉의 밤은 로맨틱하다. 호수를 두른 탐방로도 잘 나 있고, 가시연 습지도 정성껏 조성돼 있다. 9코스가 경포호수의 절반 정도를 에운다.
 
길은 바다로 가기 전에 부러 한 곳을 들렀다 나온다. 허난설헌 생가터다. 허난설헌(1563∼89)은 『홍길동전』을 쓴 허균(1569∼1618)의 누이다. 허난설헌은 스물일곱 살에 요절한 불운의 시인이었다. 그의 시편은 그가 죽은 뒤 명나라에 전해졌고 명나라 시인들의 극찬을 받았다. 허난설헌 생가터에서 뜬금없이 오죽헌이 떠올랐다. 얼추 비슷한 시기 경포호수 맞은편에서 살았던 두 여인의 운명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였다. 허난설헌의 고향이 두부로 유명한 초당이다. 초당에서는 바닷물로 간수를 써 두부를 만든다.
 
마침내 바다다.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 강문 솟대다리 앞 백사장이 131.7㎞ 올림픽 아리바우길의 종점이다. 고개를 돌리니 경포 너머로 벽처럼 늘어선 백두대간이 보인다. 저 산 너머 강가에서 시작한 걸음이었다. 길을 걷는 것은 인연을 쌓는 일이다. 지구촌 최대 축제 올림픽도 결국은 인연을 맺는 일일 터이다. 잔치는 끝나도 길은 영영 남을 것이다.
 
특별취재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안충기 기자·화가 newnew9@joongang.co.kr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s

트렌드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