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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물 건너 고개 넘어 길은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중앙일보 2017.11.02 00:02 부동산 및 광고특집 10면 지면보기
고개에서 내려온 길은 마을을 지난다. 대관령 아랫마을이다. 산은 많이 낮아졌지만 숲은 여전히 깊다. 고속도로 아랫마을 위촌리를 하늘에서 내려다봤다.

고개에서 내려온 길은 마을을 지난다. 대관령 아랫마을이다. 산은 많이 낮아졌지만 숲은 여전히 깊다. 고속도로 아랫마을 위촌리를 하늘에서 내려다봤다.

8코스는 명주군왕릉에서 시작한다. 왕릉이면 왕릉이지, 명주군왕릉은 무엇일까. 명주(溟州)는 신라시대 강릉을 부르던 지명이다. 그런데 여느 지명과는 차원이 다르다. 신라 원성왕(재위 785∼798)이 재위하자 또 다른 왕위 계승자 후보였던 왕족 김주원이 명주로 물러났다. 원성왕은 반란을 염려해 김주원에게 명주의 왕으로 봉했고, 김주원은 이후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명주군의 왕이 잠든 곳이어서 명주군왕릉이다. 신라시대 강릉은 자신만의 왕이 따로 있었다.
 
강릉은 원래 고구려 땅이었다(그때 지명이 ‘하슬라’다). 이후에는 신라에 속했지만 신라 왕조도 따로 왕을 둘 만큼 거리를 뒀다. 강릉은 서울하고도 멀었다. 오랜 세월 대관령은 넘지 못할 벽이었다. 하여 강릉은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고유한 문화를 지킬 수 있었다. 단오제의 풍속이 강릉에서만 계승된 까닭이다.
 
고립된 땅이었으나 강릉은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고장이었다. ‘동대문 밖이 강릉’이라는 옛말도 있거니와 ‘평생 대관령 한 번 넘지 않고 죽는 것만큼 복도 없다’는 말에서도 강릉 특유의 정서를 짐작할 수 있다. 8코스에서 강릉의 역사를 살피는 이유가 있다. 8코스의 주제가 강릉 사람이다.
 
대굴령이라는 지명을 아시는지. 물론 대관령에서 나왔다. 데굴데굴 굴러서 대굴령이라는 강릉 사람의 우스개다. 하여 지도에는 없다. 그러나 마을은 있다. 대굴령마을은 대관령옛길 아랫마을인 어흘리와 올림픽 아리바우길 7, 8코스가 지나는 보광 1, 2리 세 마을이 구성한 영농조합의 이름이다. 세 마을은 대굴령마을이라는 이름을 나눠 쓰며 농·산촌 체험프로그램을 함께 꾸린다.
 
8코스는 크게 숲길과 마을길로 구분되는데, 숲길은 내내 익숙했던 송림길이다. 다른 건 마을길이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3코스에서 노추산을 오른 뒤로 좀처럼 마을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관령을 품은 백두대간 자락이 그만큼 크고 높았다. 고개를 내려와서야 비로소 길은 우리네 일상으로 들어온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8코스를 ‘심스테파노길’이라고도 부른다. 병인박해(1866) 때 순교한 심스테파노가 살았다는 ‘강릉 골아위’가 ‘골아우(지금의 경암동)’라는 주장에서 유래했다. 심스테파노는 천주교 순교자 877명 중에서 유일한 강릉 출신이다. 8코스 중간께 마을이 경암동이다. 8코스에는 신당도 많다. 승천사와 법륜사는 사찰이 아니라 신당이다. 신이 깃든 고개의 아랫마을이니 어쩌면 당연한 풍경이다.
 
마을로 내려온 길은 걷기에 편했다. 숲은 깊었지만 산은 험하지 않았다. 솔바우 전망대 오르는 길은 야자매트가 깔렸고, 내려가는 길은 계단이 놓였다. 전망대에도 데크로드가 설치됐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을 조성하면서 새로 들인 시설이다. 솔바우 전망대에서 강릉 시내가 훤히 보인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가 눈에 밟힌다. 까마득한 높이의 교각이 고속도로를 떠받치고 있다. 8코스가 영동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한다.
 
8코스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우추리’라는 마을 간판이 나타난다. 강릉 사람이 위촌리를 부르는 이름이다. 도배(都拜)마을이라고도 한다. 절 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위촌리에서는 온 주민이 모여 촌장에게 세배를 올린다. 율곡 이이(1536∼84)의 마을 대동계가 전승되는 유일한 고장이다. 현재 촌장은 1926년생 박철동 옹이다.
위촌리에서는 설날이 되면 온 주민이 모여 촌장에게 세배를 올린다.

위촌리에서는 설날이 되면 온 주민이 모여 촌장에게 세배를 올린다.

“설 이튿날 촌장님께 세배하러 갑니다. 마을에서 촌장님을 가마로 모셔오지요. 합동으로 세배를 올리고 마을 사람끼리도 세배를 합니다. 원래는 설날 세배를 올렸는데 일제가 막아서 이튿날로 옮긴 전통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위촌리가 고향인 소설가 이순원은 “위촌리에서는 가정마다 대동계 향약의 4대 강목이 걸려 있다”고 덧붙였다.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 학창시절 뜻도 모르고 외웠던 문구가 우추리에는 집집마다 걸려 있단다. 길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무언가를 종종 일깨운다. 위촌리를 벗어난 8코스는 송양초등학교에서 9코스와 만난다.
 
특별취재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안충기 기자·화가 newnew9@joongang.co.kr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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