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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숲의 바다를 가르는 세 갈래 길, 여기는 대관령 꼭대기

중앙일보 2017.11.02 00:02 부동산 및 광고특집 8면 지면보기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돌고 돌아 내려오면 강릉이다. 대관령 반정에서 드론을 띄웠다. 어제와 오늘의 고속도로가 겹쳐지듯 지나갔고, 사람의 길은 단풍 물든 숲 안에 숨어 보이지 않았다.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돌고 돌아 내려오면 강릉이다. 대관령 반정에서 드론을 띄웠다. 어제와 오늘의 고속도로가 겹쳐지듯 지나갔고, 사람의 길은 단풍 물든 숲 안에 숨어 보이지 않았다.

6코스는 주제가 분명한 구간이다. 대관령을 터덜터덜 내려와 고개 아랫마을에 들어서면 길이 끝난다. 내내 내리막이 이어진다. 6코스 시작점 대관령(835m)에서 종점 보현사 버스종점(220m)까지 약 600m의 비고가 있다. 꼭 걸어 내려오길 권한다. 대관령옛길을 고스란히 품고 있어서이다.
 
대관령옛길은 스스로 문화재다.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 길 자체가 문화유산이다. 대관령옛길 약 6.3㎞ 구간이 명승 제74호로 지정돼 있다. 대관령(大關嶺)이라는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큰 대(大)’ 자는 함부로 붙이는 것이 아니다. 지리적 경계를 넘어 성스러운 장소라는 의미가 더해져 있다. 영동·영서·관동과 같은 지명도 대관령에서 유래했다.
 
대관령 휴게소에서 백두대간 옆의 오솔길을 따라 2.5㎞를 나아가면 제법 널찍한 터가 나타난다. 재궁골 신터로, 산신과 국사성황신을 모시는 신당 두 곳이 있다. 산신(山神)은 김유신(595~673) 장군이고, 국사성황신(國師城隍神)은 범일국사(810~889)다. 강릉단오제는 두 신에게 제를 지내는 의식에서 시작한다.
 
강릉단오제는 대관령 치제(致祭)에서 비롯됐다. 조선 광해군 때 쓰인 『임영지』에 최초의 기록이 있다. ‘936년 강릉에 사는 왕순식이 태조 왕건을 도우려 병사를 이끌고 원주로 향할 때 대관령에 있는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전쟁에서 이긴 뒤로 계속 제사를 지낸다’는 구절이다. 이 기록이 강릉단오제의 기원과 함께 대관령의 유래도 설명한다.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아리랑이야 민족 고유의 가락이므로 별문제가 없었지만, 단오제는 한국·일본·중국 등 동북아시아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풍속이어서 중국의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강릉의 손을 들어줬다. 강릉에서만 단오제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파종을 끝낸 강릉 사람들이 액막이 제사를 지내고 한바탕 노는 세시풍속으로서 단오제는 면면히 내려왔다. 김동찬 ㈔강릉단오제위원회 상임이사의 기억이다.
 
“단옷날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시장에서 쓰려고 돈을 모았고, 아버지는 회사에서 단오 보너스를 타왔어요. 동네 어르신은 심청굿을 보며 소원을 빌었고요. 1년 중에 가장 큰 장이 서는 날이 단오였어요.”
 
국사성황당에서 길은 대관령을 내려간다. 반정까지 꼬불꼬불한 숲길이 이어진다.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라는 말이 있다. 강릉 선비가 과거를 보러 대관령을 넘을 때 곶감 100개를 챙겨 굽이를 지날 때마다 하나씩 꺼내 먹었는데 정상에 오르니 하나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길은 구덩이 모양 깊이 패어 있다. 길이 한없이 휜 것도, 크게 팬 것도 애오라지 사람의 흔적이다. 흉터일 수도, 주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관령 신당에서 산신에게 제를 지내는 의식과 함께 강릉단오제가 시작한다.

대관령 신당에서 산신에게 제를 지내는 의식과 함께 강릉단오제가 시작한다.

 
길은 옛 영동고속도로(456번 지방도로)를 지나 반정(半程)에 다다른다. 강릉시 구산면과 평창군 횡계면(지금의 대관령면)의 중간이어서 반정이다. 반정은 강릉 시내와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대관령 최고의 전망 포인트다. 봇짐장수도, 소금장수도, 과거 보러 가는 선비도, 과거에서 또 떨어진 선비도 여기에 서서 제 길을 내려봤을 터이다.
 
반정에서 길은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꼬부랑꼬부랑 흙길도 다시 이어진다. 굽이가 많아 경사가 급하지 않다. 그래, 힘들면 돌아가면 된다. 길은 늘 세상 사는 이치를 일러준다. 반정에서 3㎞ 남짓 숲길을 걸으면 주막터가 나온다. 2008년 강릉시가 복원한 쉼터로 음식을 팔지는 않는다. 주막터부터 경쾌한 물소리가 부지런히 쫓아온다.
 
다시 3㎞ 즈음을 내려오니 길 왼편에 우주선 모양의 화장실이 나타난다. 대관령옛길이 끝나는 지점이다. 여기는 ‘원울이터’라는 이름이 내려온다. 이름 그대로 ‘원님이 울던 데’라는 뜻이다. 강릉 부사가 부임할 때는 길이 험해서 울었고,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서운해서 울었다고 한다.
 
대관령옛길은 끝나도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아직 남았다. 마을길을 따라 4㎞ 남짓 더 나아가 보현사 어귀에 있는 버스 종점에 도착해야 6코스가 마무리된다.
 
특별취재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안충기 기자·화가 newnew9@joongang.co.kr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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