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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1322m 노추산 넘어가니 눈물로 쌓은 어머니의 돌탑 3000개

중앙일보 2017.11.02 00:02 부동산 및 광고특집 5면 지면보기
노추산 아랫자락에 숨은 모정탑길. 올림픽 아리바우길이 발굴한 최고의 비경이다. 한 여성의 한스러웠던 26년 삶이 깊은 계곡에 어려 있다.

노추산 아랫자락에 숨은 모정탑길. 올림픽 아리바우길이 발굴한 최고의 비경이다. 한 여성의 한스러웠던 26년 삶이 깊은 계곡에 어려 있다.

길은 다시 기차역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번 역은 다르다. 기차 없는 기차역이다. 그래도 사람은 미어터진다. 탄광 시절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북적댄다. 구절리역은 올림픽 아리바우길 3코스의 시작점이자 국내 최초의 레일바이크 탑승장이다. 이미 우리는 레일바이크가 익숙하다. 아우라지에서 걸어 올라오면서 수시로 마주쳤다.
 
1990년대 석탄산업이 기울면서 정선선 열차도 기력을 잃었다. 한국철도공사(지금의 코레일)는 2001년 11월 14일을 끝으로 증산역(지금의 민둥산역)과 구절리역을 왕복했던 비둘기호 열차 운행을 중단했다. 이날 정선선을 달린 1707호 열차는 한국 철도 역사 최후의 완행열차로 이름을 남겼다. 정선선 종점은 구절리역이지만, 아우라지역과 구절리역을 잇는 7.2㎞ 구간은 폐선이 됐다. 그 옛 기찻길에 레일바이크가 들어섰다. 2005년 6월 30일의 일이다.
 
정선 레일바이크는 폐선로를 활용한 국내 레저산업의 첫 성공사례다. 용도 폐기된 산업자원이 수익 높은 관광자원으로 거듭났다. 정선 레일바이크의 성공 이후 현재 전국에는 여남은 개 지역에서 레일바이크를 운영하고 있다. 솔직히 지금은 비슷한 게 너무 많아서 탈이다.
 
구절리역에서 북동쪽 하늘을 올려다보면 우람한 봉우리들이 강고한 벽처럼 늘어서 있다. 그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노추산이다. 해발 1322m의 노추산은 강릉시 왕산면과 정선군 북면에 걸쳐져 있다. 백두대간 남쪽 줄기로 태백산맥에 든다. 이 크고 높은 산을 올림픽 아리바우길이 넘는다. 구절리역의 해발고도가 약 430m이니 약 900m 높이를 올라야 한다.
 
산에 들어갈 때는 정선 땅이었는데 나와 보니 강릉 땅이었다. 산에서 나오는데 꼬박 6시간이 걸렸다. 3코스는 올림픽 아리바우길 9개 코스 중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구간이다. 노추산 정상의 해발고도 1322m는 올림픽 아리바우길 전체 코스에서 가장 높은 고도이기도 하다.
 
노추산(魯鄒山). 이름이 어렵다. 신라시대 설총(655∼?)이 노나라의 공자와 추나라의 맹자를 기려 노추산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강원도 깊은 산에서의 공맹 타령이 뜬금없어 보이지만, 설총과 율곡 이이(1536∼84)가 노추산 자락에서 학문을 닦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정상 아래에 ‘이성대(二聖臺)’라는 사당이 있다. 노추산에 들어온 두 성현을 기려 한 강릉 주민이 50년쯤 전에 지은 것이다. 이성대에서 내다보는 산세가 압권이다. 날이 좋으면 멀리 태백의 매봉산(1303m)과 동해의 두타산(1353m)까지 보인다.
 
노추산 깊은 숲에서 올빼미를 만났다. 강릉과 정선을 가르는 노추산은 인적이 드물었다.

노추산 깊은 숲에서 올빼미를 만났다. 강릉과 정선을 가르는 노추산은 인적이 드물었다.

산은 인적이 없어 고요하다. 바위에는 이끼가 무성하고 길섶에는 버섯이 수두룩하다.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올빼미와 한동안 눈싸움을 하기도 했다. 정선 자락의 올라가는 길은 짙은 그늘의 숲길이고, 강릉 자락의 내려오는 길은 물소리 발랄한 계곡길이다. 산행이 힘들어도 지루하지는 않다. 계곡 물소리가 잠잠해질 즈음 상상도 못했던 비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모정탑길. 할머니 혼자 돌탑을 쌓은 계곡길이라고 했다.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눈앞의 장면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돌탑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길이 500m가 넘는 계곡을 따라 어른 키 높이의 돌탑 수천 개가 촘촘히 서 있었다.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마을회의 오과현 사무국장이 돌탑에 얽힌 기막힌 사연을 들려줬다.
 
“강릉 시내에서 차순옥이라는 아주머니가 노추산 계곡에 들어와 돌탑을 쌓았다. 남편이 원인 모를 병에 걸리고 자녀도 병으로 죽는 등 우환이 끊이지 않았는데 돌탑 3000개를 쌓으면 가족이 평안하다는 꿈을 꾸고 계곡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계곡에서 움막을 짓고 26년 돌탑을 쌓다 2011년 돌아갔다. 66세였다. 지금은 돌탑이 4000개가 넘는다.”
 
여성 한 명이 이 엄청난 돌탑을 쌓았다는 것도 믿기 어려웠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비경이 여태 알려지지 않은 까닭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모정탑길은 올림픽 아리바우길이 발굴한 최고의 장관이었다. 모정탑길에서 나오면 노추산 산행도 끝난다. 긴 꿈을 꾼 것 같다.
 
특별취재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안충기 기자·화가 newnew9@joongang.co.kr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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