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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의 어쩌다 투자]기자도 ‘노다지’ 가상화폐 사기에 속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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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중앙일보 기자 neoran@joongang.co.kr

[고란의 어쩌다 투자]기자도 ‘노다지’ 가상화폐 사기에 속을 뻔했다

중앙일보 2017.10.31 00:30
이번엔 ‘어쩌다 투자’가 아니라 ‘어쩌다 사기’에 관한 이야기이다(기사라고 하지 않는 건 기사라고 하기엔 개인적인 소회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단독’이라는 표시가 달린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이 자극적이었다. 
[단독]“나는 노다지인 줄 알고 ‘가상화폐’에 이렇게 속았다”
 
출처: M사 홈페이지

출처: M사 홈페이지

암호화폐(‘cryptocurrency’이기 때문에 ‘암호화폐’가 더 정확한 표현이지만 ‘실체가 없다’는 판단을 담아 대개는 ‘가상화폐’라 부른다)에 관심이 많은 터라 당연히 클릭했다. 글을 읽다 보니 뭔가 익숙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문제의 M사가 몇 달 전 투자 권유를 받았던 ‘그’ 회사였기 때문이다. 
 
작년 말부터 기자들이 직접 자기 돈으로 투자해 보고 그 경험담을 쓰는 ‘써티테크’ 연재를 시작했다. 경제부 소속 몇 명의 기자들이 돌아가며 썼다. 실제 가격에 (미약하나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내 주식 직접 투자를 제외한 모든 대상에 대한 투자가 가능했다.
 
펀드나 예금, 금 등 뻔한 것 말고 새로운 곳에 투자해 보고 싶었다. 그때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게 비트코인. 들어는 봤지만, 진짜 투자하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는데, 올 초 만난 한 운용사 대리가 정말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있었다.

 
그 만남을 계기로 실제 비트코인에 투자해 봤다. 
[이제는 써티(Thirty)테크] ⑬ 헉, 한 달 새 300% 수익?…투자인가 투기인가 비트코인!
 
비트코인 투자를 하면서 이더리움이라는 시가총액 2위 암호화폐도 알게 됐다. 비트코인의 기반이 되는 분산 원장 기술인 블록체인에 스마트 콘트렉트라는 기술을 더한, 범용성이 더 뛰어난 암호화폐였다. 비트코인이 금융에만 특화된 일종의 계산기라면, 이더리움은 스마트폰을 닮았다. 스마트폰에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이를 실행시키면 스마트폰은 MP3플레이어가 될 수도, 카메라가 될 수도, 노트북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이더리움은 모든 산업에서 응용 가능한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  
출처: 이더리움재단

출처: 이더리움재단

 
알아볼 수록 매력적인 암호화폐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생각을 사적인 자리에서 나눴다. 주위 사람들 가운데 ‘이더리움’이라는 단어를 필자를 통해 접하는 경우도 많았다.
 
3월까지만해도 3만원 언저리이던 이더리움 가격이 5월 들어선 10만원을 넘어섰다. 5월 하순으로 들어서면서는 갑자기 가격이 뛰어 5월 25일엔 장중 38만5050원(빗썸 기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 즈음 회사 후배 한 명이 필자에게 “선배 이런 게 있다는데 한 번 봐 주시겠어요?”라고 물어왔다.
 
M사 얘기였다. 비트코인ㆍ이더리움 등 암호화폐를 취재하면서 ‘채굴(mining)’이라는 개념을 알기는 했지만, 실제 채굴을 해 볼 엄두는 내지 못했다. 채굴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돌리는 건데, 어떻게 컴퓨터를 관리해야할지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한 필자로서는 능력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배는 자기가 아는 언니가 이더리움 채굴기를 샀는데 여기서 매일 약간의 이더리움이 나온다고 했다. 채굴기는 위탁 업체가 다 알아서 관리해주는 대신 채굴하는 이더리움을 위탁업체와 일정 비율(나중에 확인한 결과 투자자 6, M사 4였다)로 나눠 갖는다고 한다. 그렇게 채굴하는 이더리움을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고, 일정량 이상이 모이면 자기 계좌로 출금할 수 있다고 했다. 2년 위탁계약이지만 지금 현재 예상되는 월별 채굴량을 따지면 당시 시세로는 6개월이면 원금 회수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믿기 어려웠다. 이런 땅짚고 헤엄치기식 투자가 어딨나. 이게 진짜 뭔가 싶어(투자자로서, 그리고 기자로서 호기심에) 그 후배의 언니에게 M사를 소개한 A씨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5월 31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IFC몰 모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약속 시간 전에 도착해 자리를 잡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가 도착했다. 커피를 주문하러 갔다 자리에 와 보니 그 사이 A씨가 와 있었다. A씨는 자기 커피는 자기가 사 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다시 와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탓인지, 이더리움이 뭔지에 대한 설명부터 했다. 이더리움이 얼마나 혁신적인지를 설명하면서 자기는 이더리움을 3000개 모으는 게 목표라고 했다. 3000개면 그날 시세로 약 10억원 수준이다.
 
그런데 자꾸 신경이 쓰였다. 가장 거슬리는 부분은 사람을 처음 만나면 이름과 소속을 밝히는 것이 예의이건만 자신의 이름도, 소속도 밝히지 않았다(아직도 A씨의 이름을 모른다). 대화 내내 호칭 없어 어물쩡 질문을 이어가야 했다.
 
대놓고 이름을 물어보긴 뭐해서 “뭐 하는 분이세요?”라고 물었더니 무역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란다.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첫 만남 때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게 에티켓이라는 걸 알 텐데도 이름을 말하지 않은 거다(그래서 나 역시 끝까지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자기가 투자하면 되지 뭐하러 자기 시간을 들여 투자를 권유하는지도 의문이었다. 이유는 투자 권유를 받은 사람이 투자를 하면 자기 몫으로 수당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다단계다. 게다가 그 수당 구조도 무척 복잡하다. 일단 투자를 유치하면 채굴기 대당 200달러가 떨어진다. 또, 자기 밑으로 가지치기를 해서 투자자를 끌어모으는데 그 가지치기가 균형을 이뤄 커져 나가면(전문용어로 ‘바이너리 옵션’이란다) 수당이 늘어나는 구조다.
 
M사 보상 구조. 출처: 비하인드엠엘엠

M사 보상 구조. 출처: 비하인드엠엘엠

 
A씨는 수당으로 다시 채굴기를 사서 30여대(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이 수준이었던 듯 싶다)를 돌리고 있다고 했다. 자기는 채굴기에서 나오는 이더리움을 코인원(국내 3대 암호화폐 거래소 중 하나) 지갑(계좌)에 보관하고 있지만 장기 투자할 생각이기 때문에 팔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수익성이 높다면 채굴업체가 자기 돈으로 채굴하면 되지 뭐하러 투자를 받느냐고 했더니, 당장 자금 조달을 위해서란다. 또 수당으로 그렇게 많이 떼 주는 대신에 채굴기를 싸게 팔면 투자가 더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수당을 수당이 아니라 일종의 광고ㆍ마케팅비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계속 찜찜하다. 그래서 계좌를 보여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A씨는 “여태껏 계좌 보여 달라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계좌를 보여줬다. 그런데 분명 코인원 지갑에 보관하고 있다더니 보여주는 건 폴로닉스(해외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 지갑이었다.
 
결정적으로 대화 말미에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할 수 있게 명함을 달라”고 했더니, A씨는 “명함을 안 가져왔다”고 답했다. 무역일을 하는 사람이 명함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는게 말이 되나. 결국 A씨의 성도 알지 못한 채 자리를 떠야 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M사를 검색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기(스캠)’라는 글이 떠돌고 있었다. 이더리움을 채굴하는게 아니라 시장에서 이더리움을 사서 개인별 계좌로 꽂아주는 것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실제 채굴기는 없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M사가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 같지만 실상은 한국계 미국인이 운영하는 불법 다단계회사라는 주장도 있었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굳이 말 나오는 업체에, 그것도 투자 권유를 하는 사람조차 믿지 못하겠는 업체에 투자할 이유는 없다.  
 
그리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24일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기사([단독]“나는 노다지인 줄 알고 ‘가상화폐’에 이렇게 속았다”)가 뜬 것이다.
 
기사를 계기로 인터넷에서 M사를 검색했더니 이미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7월부터 채굴한 이더리움을 인출할 수 없게 되면서 피해자가 속출했다. 기사에는 투자자 40여명이 전주지검에 M사의 한국 사업자를 사기죄 고소한 것으로 나왔는데, 이와 별개로 금융감독원도 지난 7월에 M사 관련 인물을 검찰에 수사의뢰한 상태였다.
 
피해자들 중심으로 결성된 인터넷 카페도 둘로 나뉘었다. 채굴기를 어떻게든 되찾아와 피해금을 조금이라도 되찾자는 쪽과, 채굴기는 애초 없는데 가해자가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법적 대응을 늦추고 있다는 쪽이 서로를 비방하고 의심했다(다단계 사기 사건에서 중간 모집책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다단계 사기 사건이 터지면 업체(혹은 상위 사업자)를 고소해봐야 건질 게 없으니 업체로부터 최대한 받아낼 건 받아내자는 쪽과, 민ㆍ형사적으로 고소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쪽이 갈라져 피해자들끼리 싸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M사의 경우엔 이미 수사기관에서 수사에 착수한 상태이지만, 아직도 암호화폐를 미끼로 많은 사기 업체들이 판을 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고수익을 약속하는 다단계 방식의 투자 모집은 100% 사기라고 봐도 된다”며 “비트코인 등 각종 코인으로 수단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유사수신”이라고 강조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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