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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

중앙일보 2017.10.28 01:00 종합 22면 지면보기
가객(歌客) 김광석이 떠난 지 2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그의 이름이 부쩍 자주 들리는 요즘이다.
 
그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아려오는 사진이 있다.
 
그가 떠나기 몇 달 전에 찍은 사진이다.
 
온전한 기억이 떠오를 리 만무한 시간이 흐른 터라 가물가물하지만,
 
그날의 기억을 더듬자면 이렇다.
 
1995년 8월의 어느 날이다.
 
가요 담당이던 선배가 김광석 라이브콘서트 1000회 기념공연을 함께 가자고 했다.
 
이미 공연 안내 기사는 보도했기에 정식 취재는 아니지만,
 
의미 있는 공연인 만큼 사진을 찍어두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한 게다.
 
두말 않고 카메라를 챙겨 들고 따라나섰다.
 
당시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 8월 한 달 내내 1000회 기념 공연이 있었다.
 
(고백하건대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정식 취재가 아니기에 신문 게재용
 
컬러필름이 아니라 흑백필름으로 촬영했다. 게다가 바로 필름을 현상하지도 않았다.
 
김광석의 부고를 접한 후에야 헛헛한 마음으로 현상했다.
 
다섯 달 남짓 묵혀둔 필름을 현상한 터니 정확한 날을 가늠할 수 없었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좌석은 물론 복도며 무대 가장자리까지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극장 측에서 무대 가장자리 바닥에 자리를 내어줬다.
 
따로 사진 촬영할 만한 공간이 없어 미안하다며 내어준 무대 바닥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좋았다.
 
정면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와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그의 코 밑에서 호흡 소리까지 함께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자리였다.
 
하나 공연을 시작하자마자 촬영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요즘은 어림없는 일이지만 당시엔 공연 중에도 촬영이 가능했다.)
 
첫 카메라 셔터 소리에 극장 안이 싸늘해졌다.
 
마이크와 너무 가까운 탓에 카메라 셔터 소리가 천둥만큼 크게 울린 게다.
 
일순간 극장 안의 모든 눈이 나를 향했다.
 
김광석.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광석.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무리 촬영허가를 받았더라도 감당하기 힘든 눈총이었다.
 
아시다시피 그의 노래는 대부분 읊조리며 관객과 마음으로 교감하지 않는가.
 
눈과 귀 그리고 온 마음으로 교감하는 찰나,
 
난데없는 셔터 소리는 거의 테러 수준이었다.
 
셔터 한 번 누르는 게 무서울 정도로 숨죽여야 할 상황이었다.
 
그나마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함께할 수 있는
 
흥겨운 노래일 때만 눈치껏 한 컷 한 컷 누를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우 한 롤의 필름을 채웠다.
 
공연 후, 축하 뒤풀이 자리가 있었다.
 
함께하자는 선배의 권유를 뿌리치고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공연 때 셔터 소리 테러를 한 민망함 때문이었다.
 
그 해 12월 어느 날, 가수 안치환의 공연이 있었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안치환의 부친상으로
 
동료 가수들이 하루씩 공연을 맡는다는 안내 글이 있었다.
 
그날의 대타 공연자가 바로 김광석이었다.
 
모든 관객의 눈총을 받으며 좌불안석하며 듣던 8월과 달리,
 
카메라 없이 듣는 12월의 목소리는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날 공연을 함께 봤던 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슬픈 목소리를 오늘 들었다.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꼭 이 사람 사진을 찍어야겠다.”
 
그리고 스무 날 남짓 후, 황망한 그의 부고를 들었다.
 
민망한 기억에 현상조차 하지 않았던 필름을 찾아 현상을 했다.
 
흑과 백으로 반전된 필름 속의 남자는
 
하모니카를 목에 걸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었다.
 
그날 가객 김광석은 그렇게 노래하고 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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