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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총기난사 사건이 미국에서 사라질 수 없는 까닭

중앙일보 2017.10.14 01:52
스티브 이스라엘 미국 뉴욕주 전 하원의원

스티브 이스라엘 미국 뉴욕주 전 하원의원

지난주 라스베이거스에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터졌다. 미 정부와 의회는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떠들어댔다. 또 관공서에 조기를 게양하고,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트윗을올리고, 의회방송 채널(C-Span) 특집 프로에 묵념 장면도 끼워넣었다. 항상 똑같았다. 콜럼바인과 헤르키머, 투손, 샌타모니카, 하이얼리어, 테럴, 앨투러스, 킬린, 버지니아 공대 등 셀 수 없이 많은 곳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된 절차다. 그러나 헛일이다. 앞으로도 총기 난사는 이어질 것이다. 왜냐고?
 
내가 연방 하원의원으로 재직한 16년 동안 무려 52번의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의원 생활을 하면서 그 이유를 조금씩 깨달아갔다. 첫 번째 교훈은 햇병아리 의원 시절이던 2001년 1월 얻었다. 내가 총기류 안전장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하려고 아칸소주 출신 민주당 의원에게 지지를 요청했다. 그는 “지지해줄 수 없다. 우리 주에선 사냥 시즌이 시작되면 학교가 문을 닫는다”고 했다. 나는 “우리 뉴욕주에선 쇼핑몰 세일 철에 학교들이 문을 닫는데”라고 받아쳤지만 그때 깨달았다. 주마다 현실이 다르고 그것이 정치를 결정한다는 걸 말이다. 총기 규제에 찬성하는 뉴욕주와 반대하는 아칸소주 사이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총기 규제에 한 가닥 희망을 가진 적도 있었다. 2012년 코네티컷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로 26명이 숨진 참극을 TV로 지켜볼 때였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눈물을 글썽이며 “반드시 대책을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만 해도 최소한 정신질환자는 총기를 구매하기 어렵게 만드는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동료 의원들이 논쟁 주제를 아이들의 생명권에서 총기 소유자의 기본권으로 뒤집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그 의원들은 보안이 유지되는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에서 내게 “총기 규제를 지지하는 정치인은 막강한 로비력을 가진 전미총기협회(NRA)에 곧바로 찍히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나”라고 고백했다.
 
nyt 칼럼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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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민주당이 테러리스트 목록에 오른 사람의 총기 구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을 때에도 나는 실낱 같은 희망을 가졌다. 이 정도라면 통과될 것으로 확신했다. 테러를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해 여객기 탑승이 금지될 만큼 위험한 사람이라면 살상 용도의 총기 구입이 금지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당시 미국 시민의 80% 이상이 동의했을 만큼 상식적인 법안이었다. 그런데도 공화당 의원들은 반대했다. “미국에선 유죄 입증 때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테러리스트 목록에 오른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이렇게 총기 규제에 미온적이었던 미 의회는 결국 비싼 대가를 치렀다. 바로 의원 본인이 총기 난사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얼마 전 워싱턴 인근 알렉산드리아 시에서 의원 친선 야구 경기를 앞두고 연습하던 스티브 스칼리스 의원이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그런데도 미 의회는 총기 규제를 막기에만 급급하다. 왜 이럴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총기 로비의 양극화다. 한때 일정 수준의 총기 규제를 지지했던 NRA는 경쟁 단체들의 난립으로 인해 초강경 노선으로 돌아섰다. 총기 규제에 온건한 입장을 취하면 경쟁자들에게 시장을 뺏기기 때문이다. 총기 로비는 누가 더 뻔뻔하고 극단적인지를 증명하는 시합장이 되고 말았다.
 
둘째, 게리맨더링식 지역구 조정 탓에 공화당 의원이 급격히 우경화된 때문이다. 이런 정치적 환경에서는 NRA의 입장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의원은 미 헌법상의 ‘총기 보유의 자유’를 지지하지 않는 인사로 낙인찍혀 정치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
 
셋째,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자신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행동에 나서는 대신 다른 페이지로 넘어가 버리는 무관심이 총기 난사 방지 노력의 싹을 잘라버린다. 이런 무관심 덕분에 라스베이거스의 참사도 며칠 안에 잊힐 것이다. 총기 로비스트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거다. 그들은 우리가 이 사건을 쉽사리 잊어버리길 바란다. 누군가의 아이와 부모·형제와 자매가 무차별 난사되는 총탄에 숨지는 비극을 새로운 일상으로 받아들이길 원한다. 이 칼럼을 대충 읽고 잊어버린 뒤 앞으로도 이어질 참극에 침묵으로 일관할 사람을 의원으로 뽑길 원한다.
 
스티브 이스라엘 미국 뉴욕주 전 하원의원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7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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