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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부활자' 곽경택 감독 "김래원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중앙일보 2017.10.13 15:11
 
 
'희생부활자' 곽경택 감독 / 사진=라희찬(STUDIO 706)

'희생부활자' 곽경택 감독 / 사진=라희찬(STUDIO 706)

[매거진M] 연출 데뷔 20년째. 곽경택(51) 감독의 열세 번째 장편영화 ‘희생부활자’(10월 12일 개봉)는 어느 때보다 낯선 ‘곽경택 영화’다. 억울한 죽음을 되갚기 위해 저승에서 부활한 희생부활자(RV). 이 독특한 소재를 싣고 거친 남성성 대신 헌신적인 모성(母性)이, 뚝배기 정서보단 메마른 혼란이 울적한 서울 거리를 숨 가쁘게 질주한다. 생소한 도전에서 읽히는 건, 중견 감독의 어떤 변화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희생부활자'

'희생부활자'

―오늘 오랜 만에 비 예보가 있었다. ‘희생부활자’ 촬영하며 가장 기다린 게 비였다고. 
“RV는 비가 올 때 나타나서 복수를 마친 뒤 체내 발화를 일으키며 사라진다. 박하익 작가의 원작 소설(종료되었습니다(노블마인))을 각색하며 넣은 중요한 설정이다. 살수차로 물을 77t이나 뿌렸는데, 비 신은 날씨도 받쳐줘야 하거든. 태어나서 가장 일기 예보를 많이 봤던 것 같다. ”
 
―2015년 12월 촬영을 마친 것치곤 개봉 시기가 늦어졌는데. 
“편집과 CG 디테일을 만지느라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RV가 소멸할 때의 화염이랄지. 특히 사람 얼굴에 CG를 하는 게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징그럽게 안 가려고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쳤다. 찍어놓은 분량도 많이 날렸고. 아쉽지. 영화를 열 몇 편째 찍고 있는 감독으로서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낯선 ‘곽경택 영화’여서일까. 
“‘친구’(2001) ‘사랑’(2007) 같은 포괄적인 제목이 편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희생부활자’는 제목부터 장르 색이 강하다. “원래 제목은 ‘부활’이었다. 근데 ‘부활’, 하면 그리스도 부활 같은 종교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서 부담스러웠다. RV라는 생소한 소재를 제대로 알리자는 생각에, 지금 제목을 정했다.”
 
'희생부활자'

'희생부활자'

―원작에서 가장 꽂혔던 대목은. 
“‘살아 돌아온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절대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다. 신이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대신 엄마를 보냈다고 하잖아. 나는 모성 때문에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절대적인 사랑과 희생이 최근에는 조금씩 무너져가는 느낌을 받았다. 씁쓸했다. ‘부활’이란 제목이 나한테는 ‘모성 부활’이란 의미였다.”
 
―원작을 상당 부분 각색했다. 동생 곽신애(바른손이앤이) 대표가 원작을 소개할 때부터 “처음엔 모든 감독들이 좋아하다가 중간에 포기한 작품”이라고 했다면서. 
“원작의 큰 틀에 내가 갖고 있던 이야기를 결합시켜야겠단 아이디어는 팍 떠올랐다.”
 
'희생부활자'

'희생부활자'

―어떤 이야기였나.
“하나는 지인 경험담이다. 술 먹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자기가 신나게 트럭을 몰고 집에 온 꿈이 너무 생생하더란다. 운전면허도 없는데…. 근데 밖을 내다보니, 그 트럭이 있는 거다! 그 얘기 듣고 와, 섬뜩했다. 나도 술 좋아하니까. 
또 하나는 꼬마 때 ‘테레비’에서 본 뉴스다. 아나운서가 이랬다. ‘안타까운 뉴스 하나 전해드리겠습니다. 구두닦이를 하던 모 군이 사법고시 합격 통지서를 받고 너무 기뻐 뛰어 나가다가 차에 치어 숨졌습니다….’ 가장 행복한 날 가장 큰 불행이 온다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평소 7~8고에 끝냈던 시나리오를 ‘희생부활자’는 18고까지 썼다고. 무엇을 그렇게 고민했나. 
“부활의 매커니즘을 뭘로 갖고 갈 것인가. RV를 좀비처럼 갈 것인가, 귀신으로 갈 것인가. 법에 의한 단죄가 맞을까. 개인의 직접적인 복수가 이 세상에 유리한가. 원작에선 회사원이었던 진홍을 검사로 바꾼 것도 법 집행가로서의 딜레마를 보여주고 싶어서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저지르는 실수에 의한 재앙은 어떻게 평가하고 반성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이 나를 엄청 괴롭혔다. 영화의 출발점과 끝의 정서가 너무 다른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래도 생소한 소재일수록 사람 이야기로 풀어야 한다고 봤다.”
 
'희생부활자'

'희생부활자'

―진홍은 무척 건조한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는 엄마 명숙 캐릭터가 지금까지 ‘곽경택 영화’의 주인공에 가깝다. 
“정확하게 봤다. 사실 진홍한테 최대한 이입하려고 노력하면서 되게 힘들었다. 시나리오 쓰다 혼자 갑갑해서 미친 듯이 고함친 적도 있다. ‘희생부활자’의 중심은 엄마다. (김)래원씨는 그걸 알면서도 나를 믿고 출연해준 거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김래원의 무엇에 끌렸나. 
“일단 연기를 잘하잖아. 아주 옛날에 같이 작품을 할 뻔했는데, 그때 잠깐 만났던 느낌이 좋았다. ‘희생부활자’에 이 친구가 참여해주면 좋은 기운을 받을 것 같았다. 시쳇말로 슬럼프를 겪고 다시 올라왔잖아. 본인의 연기나 관객에 대한 사랑을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길 거라 생각했고, 실제 그랬다. 래원씨의 진정성이 비현실적인 처지에 놓인 진홍이란 캐릭터를 잘 붙들어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희생부활자'

'희생부활자'

―국정원 요원과 경찰 역의 성동일·전혜진에겐 어투 하나까지 감정을 절제하라 했다고. 
“이 영화는 마지막 가서야 진실을 알게 돼야 하는데, 누구 하나가 감정적으로 툭 튀어나오면 시선이 가서 자칫 엉뚱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으니까.”
 
―김해숙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2008) 특별출연으로 만났던 인연인데. 
“명숙은 목숨 걸고 아들에게 헌신하지만, 때로 복수의 화신 같은 느낌이 있다. 그걸 감당해줄 배우는 김해숙씨뿐이었다. 연세에 비해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장면들은 스턴트를 썼는데, 오토바이에 끌려가며 얼굴이 보이는 장면들은 대역을 쓸 수가 없었다. 바닥에 안전 처리를 철저히 하고 CG로 지웠다. 안전이 제일 걱정이었지.”
 
―초현실적인 장면에선 할리우드 특수효과에 익숙한 관객의 눈높이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도 됐을 텐데. 
“순제작비 50억원 안에서 아무리 다르게 해봐야 어디서 본 장면일 것 같았다. 차라리 최소한의 효과만 주고 스피드와 연기로 승부하려 했다. 진실이 드러나는 3분의 2 지점까지 사건 진행 속도를 가급적 높였다. 그러면서 핸드헬드보다 조금 덜 거친 바디캠으로 진홍의 불안하고 어지러운 심리를 최대한 화면 속에 표현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도 우중충한 느낌이 나도록 조명에도 신경 썼고.”
 
'희생부활자'

'희생부활자'

―주 무대가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이다. 부산 출신으로 주로 부산 배경의 영화를 찍은 당신에게 “서울은 늘 무거운 마음이 드는 도시”라고. 
“서울이라는 데는 내가 높이 올라가려 할수록 많은 사람을 떨궈내야 하는 도시다. 끝없이 경쟁하고, 아등바등 살잖아. 그런 것들이 항상 온몸을 긴장시키는 것 같다. 홍은동은 일단 ‘강남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강남이 다 비슷비슷해서 되게 재미없거든. 사건이 벌어지는 홍은사거리 횡단보도 폭이나, 위에 고가도로가 크게 뒤덮은 느낌도 좋고. 이틀 동안 차량 통제하고 촬영한다고 제작팀이 고생했다.”
 
―모성애가 강하게 남는 엔딩이다. 어찌 보면 장르적인 재미와는 상반된 결말이란 인상도 들더라. 
“지금의 엔딩에 대한 내부 반대에 저항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근데 ‘절대 모성’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애초 내가 이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
 
'희생부활자'

'희생부활자'

―‘미운 오리 새끼’(2012) ‘극비수사’(2015) 등 최근작으로 올수록, 가족이랄지, 어린 생명을 지키려는 마음이 더 많이 엿보이는 것 같다. 이번에 다룬 모성애도, 남성 중심적인 시선이 강했던 이전 영화들에선 거세돼 있던 정서다. 
“나이가 들면서 시선이 바뀌는 것 같다. 요즘 20대들을 보면 아들·딸 같아서 더 조심스럽게 대하게 된다. 우리 아이한테 나이든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고 그러면 기분 나쁠 테니까. ‘희생부활자’에도 진홍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소녀(이지원)가 나온다. 내 욕심 때문에 아역 배우를 너무 고생시키긴 싫었다. 최대한 배려하려고 애썼다.”
 
―준비하던 작품이 늦어지면서 ‘희생부활자’를 먼저 하게 된 거라고. 
“정우성씨랑 사극 하나 하려다가 제작사와 인연이 안 맞아서 못하고, ‘사주’(가제)도 하다가 안 됐다. (조감독이었던) 후배 김태균 감독이 찍는 ‘암수살인’ 각본을 같이 작업하면서, 남북 스파이영화를 개발 중이다. 곁에 있는 작가들 중에 탈북한 친구가 있거든. 10년 전에 국정원 통해 소개 받았는데, 그 친구랑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있다. 비슷한 소재가 많이 나오긴 했지만, 차별성이 있을 것 같다.”
 
―휴대폰에 형사부터 국정원 요원까지 웬만한 국가 요직들의 전화번호가 다 있을 것 같다. 
“최근에 많이 없어졌다. 껄껄. 예전에는 취재부터 연출까지 내가 다 한다는 식이었다면 요즘은 글을 혼자 안 쓰려고 한다. 1년에 한 작품 연출하기보단, 2년에 한 작품 하고, 후배들 영화 두세 작품 돕는 게 더 좋다. 체력은 떨어지지만(웃음), 노하우는 있으니까. 후배들한테 기회를 더 많이 주고 싶다.”
 
'희생부활자'

'희생부활자'

―어느 인터뷰에서 영화를 외국어에 비유한 적이 있다.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가 크다’면서. 지금의 ‘영화 구사력’을 자평하자면. 
“10점 만점에 6~7점?”
 
―자신의 작품에 어떤 지점이 아쉬운가.
“공간에 대한 지각력이 조금만 더 좋으면 좋겠다. 이야기를 만드는 걸로 붙으면 이길 자신 있다. 근데 숏을 구성해낸다? 아직 헷갈린다. 웬만한 감독들보다야 콘티를 잘 만들겠지만, 나보다 더 기똥차게 잘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할리우드로 치면, 데이미언 셔젤 감독! ‘위플래쉬’(2014)를 보면 굉장히 힘 있잖아. 그 리듬이 섬뜩섬뜩하더라. ‘그래비티’(2013, 알폰소 쿠아론 감독)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도 정말 ‘악’ 소리 나게 훌륭하잖아.“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라면. 
“내가 잘 ‘듣는’ 편이다. 아버지는 내가 영화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셨지만, 알고 보면 당신도 어릴 때 이북에서 동네 애들 데리고 대본 써서 공연하고 그러셨더라. 이야기를 좋아하는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웃음). 어차피 인생 한 번인데,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많이 듣고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재밌나. 내가 더 익어가면서 들려줄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적절한 기술과 결합됐을 때 비로소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모르는 걸 아는 척, 억지로 ‘오바’ 않고 꾸준히 하면, 계속 영화로 관객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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