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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28) “몸과 돈이 가까워지는 일 어디 없소?”

중앙일보 2017.10.13 11:00
통장으로 들어가는 월급이 아니라, 손에 현금을 쥐어준 고마운 사과. [사진 조민호]

통장으로 들어가는 월급이 아니라, 손에 현금을 쥐어준 고마운 사과. [사진 조민호]

 
카피라이터였으니 글을 써 돈을 벌었다. 만든 광고를 클라이언트에게 팔아야 했으니 말로 돈을 벌었다. 몸을 써 번 게 아니라 머리를 굴리고 펜을 굴리고 혀를 굴려 돈을 벌었으니 몸과 돈의 거리는 한참 멀었다.
 
지인을 통해 사과농장에서 연락이 왔다. 추석 선물용 사과를 수확하고 포장해서 택배로 보내야 하는데, 사과농장 부부 두 사람의 손만으로는 추석 전까지 해결이 안 된다는 거였다. 몸과 돈의 거리가 확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아랫집 목사님은 손사래를 치며 반대하신다. 평생 노동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 험한 일이라고, 돈 몇 푼 벌자고 몸이 고장 나면 손해가 더 크다고, 힘들어 도중에 도망치면 그분들한테 더 큰 낭패라고…. 맞는 말씀이기는 하나 왠지 오기가 발동했다.
 
 
몸을 써 돈을 번 첫 일이 사과 작업이었고, 공교롭게 내 첫 컴퓨터도 apple이었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노트북의 뚜껑에도 사과가 박혀 있다. [사진 apple ad.]

몸을 써 돈을 번 첫 일이 사과 작업이었고, 공교롭게 내 첫 컴퓨터도 apple이었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노트북의 뚜껑에도 사과가 박혀 있다. [사진 apple ad.]

 
‘너 같은 놈은 내가 한두 번이 아니지’ 하는 눈으로 내 몸을 아래위로 스캔하더니 육철수 씨(민들레 사과농장 바깥 사장님)께서 맡겨 준 일은 과수원에서 따 온 사과를 크기순으로 선별해 박스 포장하는 일이었다. 
 
사과나무를 타고 아이 얼굴만 한 사과를 따 모은 박스를 번쩍번쩍 드는 일을 상상했는데, 아주머니 몇 분과 함께 하는 박스 포장일은 도무지 폼이 안 났다. 별로 힘들 것 같지도 않고, 저 일 하고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싶었다.
 
 
내 몸이 돈 벌 수 있다니 
 
근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점심 먹는 1시간, 꿀맛 같은 막걸리 타임 2번을 제외하고는 숨 쉴 틈이 없다. 땀은 비 오듯 했고, 먹물이라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오기 때문에 몸을 더 재게 놀렸다. 모든 근육에는 알이 배었고, 박스에 긁혀 몸의 이곳저곳에 피가 배었다. 하지만 내 몸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현실에 피를 봐도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몸과 돈이 가까워졌다.  
 
 
고맙게도 일당과 함께 정겨운 마음까지 봉투에 담아 건네주셨다. [사진 조민호]

고맙게도 일당과 함께 정겨운 마음까지 봉투에 담아 건네주셨다. [사진 조민호]

 
다행히 나는 평생의 전쟁터에서 몸 하나는 무사히 건져 나왔다. 큰 병 없이, 크게 고장난 데 없이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른다. 이틀 간의 사과 일로 몸은 무거웠지만 못 일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평생 직장에 기대 살았던 것처럼 몸에 기대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뻐근한 느낌이 벅찼다.
 
얼마나 벌었냐고? 이것저것 합쳐 일당 10만원. 주섬주섬 챙겨주시는 사과는 덤. 이틀치 일당을 손에 든 기분과 몸에 심은 자신감은 Priceless! (값을 매길 수 없는!)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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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 퇴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이 없는 도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이러다 죽는 날 아침에 “뭐 이렇게 빨라, 인생이?” 할 것 같았다. 경남 거창 보해산 자락, 친구가 마련해준 거처에 ‘포월침두’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평생 처음 겪는 혼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달을 품고(抱月) 북두칠성을 베고 자는(枕斗) 목가적 생활을 꿈꿨지만 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도시의 취향과 입맛으로 인해 생활은 불편하고 먹거리는 가난했다. 몸을 쓰고, 글을 쓰자. 평생 머리만 쓰고 물건 파는 글을 썼으니 적게 먹어 맑은 정신으로 쓰고 싶은 글, 몸으로 쓰는 글을 쓰자, 했다. 올 3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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