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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정치학자가 보는 ‘남한산성’,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중앙일보 2017.10.13 01:55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중앙대 교수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중앙대 교수

역사와 정치, 권력을 다룬다는 점에서 정치학자, 영화감독, 소설가는 잠재적 경쟁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과학자의 영향력은 뛰어난 영화감독이나 작가의 상대가 되지는 못한다. (필자가 공들여 쓰는 학술논문을 주의 깊게 읽는 독자는 같은 전공자 수십 명에 불과할 것이지만 병자호란을 다룬 영화 ‘남한산성’은 순식간에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다.) 영화 ‘남한산성’이 전쟁과 평화, 엘리트의 분열과 대중의 삶이라는 고전적 토론을 새로이 자극하는 중이니 정치학자의 관점에서 몇 가지 생각을 덧붙여보려 한다.
 
‘남한산성’이 큰 화제가 되는 배경은 아마도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강대국 세력정치와 병자호란 당시의 고단한 현실이 겹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강대국 정치의 폭풍우를 헤쳐 가는 데 있어 명·청 교체기의 조선왕조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 세계 11위 규모의 무역국가의 위상이나 전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의 핵심부품을 공급하는 나라라는 사실보다도 우리는 시민들이 삶의 방식과 공동체를 지키려는 의지를 모을 수 있는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가꿔왔다는 점 때문이다.
 
먼저 병자호란 시기의 아픈 역사가 요즘의 어려움과 겹쳐지는 배경부터 살펴보자. 첫째는 강대국 세력전이(power transition)의 국제정치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어려운 선택의 문제다. 영화 ‘남한산성’은 명·청 교체기에 청의 홍타이지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한양까지 침공해오는 수난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만주에서 일어난 청나라가 대륙을 지배하던 명나라를 쓰러뜨리기에 앞서 조선을 먼저 공격함으로써 배후를 안정시키려는 과정이 곧 병자호란이었다.
 
장훈칼럼

장훈칼럼

강대국 세력전이의 거대 폭풍우가 다시 몰려오는 곳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다. 세계 2위의 대국으로 귀환하고 있는 중국과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내세우는 미국이 맞부딪치는 태풍의 최전선이 한반도다. 1600년대의 조상들이 명과 청의 힘의 전이를 면밀히 살펴야 했듯이 우리 역시 미국의 압도적 힘의 우위(군사력, 사회적 활력, 의지, 경제력의 총합으로서의 힘)가 앞으로 얼마나 유지될 것인지, 또한 미국과 중국은 과연 협력적 세력전이의 길로 나아갈지 혹은 파괴적 세력전이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를 예민하게 살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사드 배치 논란과 중국의 보복은 거대한 태풍의 전주곡에 불과할 것이다.
 
두 번째 고단한 현실의 공통점은 정치 엘리트들의 분열이다. 최명길의 주화론과 김상헌의 척화론이 끝내 간격을 좁히지 못했듯이 오늘날 우리의 4당 체제 역시 분열의 골은 깊고도 넓다. 예컨대 자체 핵무장-전술핵 재반입-미국의 핵우산으로 펼쳐져 있는 어려운 선택지 앞에서 여야 정당들은 갈등과 대립의 골을 한 치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강대국 세력정치의 무게와 엘리트들의 분열이라는 고질병을 깊이 의식할수록 비관주의의 유혹은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명·청 교체기와 오늘날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가꾸어 온 민주주의의 힘이다. 민주주의란 단지 자의적 국가권력과 억압으로부터 시민의 자유를 지키는 방어적 제도만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분열의 권력다툼을 일삼는 정치계급을 시민들이 제어할 수 있는 기제이기도 하다. 지난겨울 촛불 시민들이 주권자들로부터 괴리된 채 부패에 연루된 대통령의 책임을 물었듯이 한국 민주주의에서 민주적 책임성(accountability)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다시 말해 거대한 세력전이의 태풍 앞에서도 우리 안의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계급을 민주 시민들은 심판할 수 있다. 어느 정치세력이 사드 논쟁을 더 큰 분열로 몰고 가려 하는지, 어느 정당이 북핵 위협을 틈타 우리 안의 분열을 더욱 조장하는지, 누가 정치세력 간의 진지한 대화를 조롱하고 거부하는지를 시민들은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다.
 
민주주의의 또 다른 결정적 힘은 시민들의 주권의식에서 나온다. 민주주의라는 말뜻 그대로 시민들(demos)이 지배(kratos)하는 체제의 근본적 힘은 공동체의 이슈에 관여하고 참여하는 시민들의 주인의식에 있다. ‘남한산성’에서 평민을 상징하는 대장장이 날쇠가 양반 엘리트들을 향해 내비치는 냉소와는 다른, 시민들의 주권의식이 우리 공동체의 힘이다. 달리 말해 강대국 세력정치의 폭풍우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첨단기술의 무기들이라기보다는 우리 공동체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일 터인데, 그 같은 의지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훨씬 강력하게 작동한다. 역사가 이미 여러 번 보여주었듯이 의지의 힘이 무기의 힘을 누를 수 있다.
 
장 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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