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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영화 '김광석'에는 김광석이 없다

중앙일보 2017.10.13 00:01
양성희 문화데스크

양성희 문화데스크

지금도 그날이 생각이 난다. 그가 죽었다. 골이 띵했다. TV에선 자살이라고 했다. 천하의 김광석이, 아직 젊디 젊은 그가 죽었다!

상업 가수가 되기 전 대학가 노래패 시절부터 그의 공연을 보러 다녔고 인터뷰도 여러 차례 했다. 주변에는 그와 친분 있는 사람도 많았다. 무엇보다 그의 음악을 좋아했다. 곧 자살이 아니라는 말이 나돌았다. 부인이 죽였다고도 했다. 그때 나는, 부인이 그를 정신적으로 괴롭혀 죽음에 이르게 했다거나 혹은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얘기로 받아들였다. 가령 부부싸움을 벌이다 자살하겠다며 목에 줄을 감는 남편 앞에서 “죽든지 말든지, 죽어봐라”고 상대를 벼랑으로 내모는 악랄한 여인의 모습을 저 혼자 떠올렸다. 딱 그런 뉘앙스로 이해했다.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유족이든 지인이든 당시 재수사를 요구하는 사람이 왜 없었겠는가 말이다.
 
시대를 풍미했던 영원한 가객 갬광석. 그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중앙포토]

시대를 풍미했던 영원한 가객 갬광석. 그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중앙포토]

어찌 되었든 무려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그의 죽음이 다시 세간의 관심거리가 됐다. 방송 기자 출신 이상호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 때문이다. 영화 개봉 후 딸마저 오래전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의혹은 더 커졌다. 부인 서해순씨는 딸의 사망과 관련해 12일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한편에선 김광석 관련 재수사를 촉구하는 일명 ‘김광석 법’이 발의됐다.
 
이 다큐가 불러일으킨 의혹과 파장에 비해, 부인이 살해했다는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는 비판은 여러 곳에서 나왔다. 실제로 다큐는 행적이 수상한 부인의 과거사를 들추며 ‘악녀에게 희생당한 비운의 뮤지션'이라는 틀을 좇는다. 애초에 자살로 결론 내린 수사관이나 부검의를 찾아가는, 취재의 ABC라 할 만한 일을 하진 않는다. 다큐에 따르면 부인은 영아살해도 했다. 그 근거 또한 다큐 안에는 없다.  
 
영화 '김광석'의 포스터.

영화 '김광석'의 포스터.

사실 고발 다큐로서 이 영화의 흠결은 영화의 첫 장면부터 등장한다. 영화는 사무실이 수해를 입는 바람에 물에 젖은 취재수첩 더미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깊게 탄식하는 감독의 목소리가 오버랩된다. 누구도 손대지 않는 금단의 영역에서 힘겹게 싸우는 한 저널리스트의 악전고투가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임을 암시한다. 영화 내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도 역설적으로 감독이다. 관계자든 행인이든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 그 옆의 감독이 함께 잡힌다. 난센스에 가까운 영화 포스터에도 김광석이 아니라 회한에 잠긴 감독의 얼굴이 중심에 등장한다(나 홀로 정의를 좇는 열혈 저널리스트로서 자신을 부각시키는 것은 감독의 전작 ‘다이빙벨’에서도 강하게 드러난다).

 
고발 다큐멘터리에서 이처럼 감독이 주인공 급으로 등장하는 것은 미국의 마이클 무어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카메라 앞에 서기 좋아하는 무어도 그럴 땐 꼭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 외에 저널리스트 주인공의 사투를 그린 무수한 영화가 있다. 그때 그들에겐 '팩트로 말한다'는 저널리즘의 원칙이 무기였다.  
 
오는 11월 재공연되는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2015년 초연). 김광석과 동물원의 음악을 바탕으로 제작된 주크박스 뮤지컬이지만 저작권 문제 때문에 김광석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는 빠졌다. 배역 이름도 김광석 대신 '그 친구'다. [중앙포토]

오는 11월 재공연되는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2015년 초연). 김광석과 동물원의 음악을 바탕으로 제작된 주크박스 뮤지컬이지만 저작권 문제 때문에 김광석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는 빠졌다. 배역 이름도 김광석 대신 '그 친구'다. [중앙포토]

서너해 전부터 김광석을 소재로 한 뮤지컬들이 쏟아졌지만 정작 그 안에 진짜 김광석은 없다는 말이 있다. 저작권을 가진 부인 서씨가 거액을 요구하는 바람에 김광석 자작곡이나 사진을 쓰지 못해 반쪽짜리 공연에 그쳤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화 ‘김광석’에도 김광석은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건, 죽음의 진실도 무엇도 아니고 어쩌면 몰랐어도 좋을 그를 둘러싼 사생활의 그늘뿐이다. 한 팬은 “저작권 수익이 부인에게 간다니, 노래방 가서 김광석 노래 부르기 싫어졌다"고 했다. 최근 가수 아이유가 리메이크 앨범을 내면서 녹음해 놓은 김광석 노래를 빼버린 것도 이런 대중의 불편함을 의식해서 였을 것이다(감독과 친분이 있으나 다큐 제작에 부정적이었다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페이스북에 비슷한 글을 썼다). 
 
김광석 20주기이던 지난해 대구시 중구 방천시장 김광석길을 찾은 시민들이 김광석 벽화 앞에서 그의 음악을 들으며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제 대중에게 김광석은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까. [프리랜서 공정식]

김광석 20주기이던 지난해 대구시 중구 방천시장 김광석길을 찾은 시민들이 김광석 벽화 앞에서 그의 음악을 들으며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제 대중에게 김광석은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까. [프리랜서 공정식]

더 이상 김광석 음악을 그저 김광석으로 들을 수 없게 된 것. 이게 영화 ‘김광석’이 남긴 성과라면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다. 음악으로 신화가 되었다가 지금은 무덤 속에서 만신창이가 돼버린 김광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의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길 원하면서도 뮤지션으로서 아우라가 깨지는 걸 바라진 않았을 것 같다. 영원한 가객 김광석은 이제 우리에게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까.  
  

양성희 문화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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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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