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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오디세이] 은둔 강요받던 그녀들… 평양 권력의 중심에 섰다
이영종 기자 사진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

[평양 오디세이] 은둔 강요받던 그녀들… 평양 권력의 중심에 섰다

중앙일보 2017.10.11 01:36
 
은둔 강요받던 그녀들… 평양 권력의 중심에 섰다 
 

북한 최고권력자의 여인들은 오랜 기간 은둔을 강요받았다. 공개석상에 '퍼스트 레이디'로 등장하는 건 절대 금기였다. 얼굴이나 신상도 철저히 베일에 싸였다. 그런데 김정은 집권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노동신문에 '부인 이설주 동지'란 호칭이 등장했고, 다정한 부부의 모습도 연출한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의 행보도 만만치 않다. 오빠의 최측근 보좌역인 그녀는 지난 주말 노동당 정치국에 진입하며 파워엘리트 그룹의 중심에 자리했다. 기지개를 켠 평양 안방권력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김정은(33) 노동당 위원장의 곁에는 지금 28세 동갑내기 두 여인이 있다. 부인 이설주와 여동생 김여정이다. 올케와 시누이 사이인 이들은 절대권력을 거머쥔 김정은을 가장 가까이에서 챙긴다. 이설주는 주로 내조와 부부동반 공개활동을 맡고, 김여정은 행사 의전과 수행을 담당하는 역할 분담으로 이뤄져 있다. 눈길을 끄는 건 이설주·김여정이 같은 동선에서 움직이거나 대화 등 교감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나름대로의 철저한 영역 구분이다.
김정은이 2012년7월 부인 이설주와 함께 평양 능라인민유원지를 방문한 모습. 북한은 이때 처음으로 '부인 이설주 동지'로 호칭해 김정은의 부인임을 공개했다. [중앙포토]

김정은이 2012년7월 부인 이설주와 함께 평양 능라인민유원지를 방문한 모습. 북한은 이때 처음으로 '부인 이설주 동지'로 호칭해 김정은의 부인임을 공개했다. [중앙포토]

권력무대 데뷔는 이설주가 앞섰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집권한 김정은은 이듬해 7월 모란봉악단 창단 공연 관람 자리에 이설주를 동반했다. 그리고 며칠 뒤 관영매체가 처음으로 '부인 이설주 동지'라고 호칭했다. 이후 행보는 파격이었다. 최고지도자와 팔장을 낀 채 나타나고, 평양 시내 카페에서 팝콘을 나눠 먹는 모습은 노동당과 군부 원로는 물론 주민에게 충격을 던졌다.
김정일 집권 시기엔 상상도 못할 일이다. 5명 안팎의 여인들이 김정일 위원장의 여성편력을 거론할 때 등장하곤 했지만 미확인 첩보나 '카더라' 수준에 머물렀다. 정혼한 부인으로 알려진 김영숙도 잘 파악되지 않을 정도였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 당시 이희호 여사 동반 문제를 막판까지 고심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사망 몇 달 전 중국·러시아 방문길에 마지막 여인으로 알려진 김옥을 동반해 서방 언론의 추정보도가 나왔지만 북한은 함구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받은 꽃다발을 김여정이 챙기는 모습.  [노동신문]

김정은 위원장이 받은 꽃다발을 김여정이 챙기는 모습. [노동신문]

김일성 주석도 첫 부인인 김정숙이 1949년 숨지자 비서인 김성애를 맞았지만 공개적으로 내세우기 쉽지 않았다. 후계권력을 다져 가던 김정일이 계모인 김성애를 견제한 때문이다. 1994년 6월 방북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부를 맞이한 김일성은 김성애를 이례적으로 동반했다. 하지만 북한 매체들은 이름도 언급하지 않은 채 '김일성 동지가 부인과 함께 카터 일행을 맞았다'는 수준으로 처리했고, 김성애의 모습은 노동신문 지면에서 빼버렸다.
지난 4월 김일성광장 군사퍼레이드 때 김여정 당시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왼쪽)이 열병식 도중 김정은 옆에서 커다란 앨범형 책자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지난 4월 김일성광장 군사퍼레이드 때 김여정 당시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왼쪽)이 열병식 도중 김정은 옆에서 커다란 앨범형 책자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은이 '부인 이설주'를 공식화한 건 정상국가화를 노린 포석으로 볼 수 있다. 퍼스트 레이디를 동반한 최고지도자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란 얘기다. 여동생 김여정의 등장은 상대적으로 조심스레 진행됐다. 북한 매체에 김여정의 모습이 처음 등장한 건 2014년 3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때였다. 오빠를 수행해 투표장을 찾은 그녀는 이듬해 1월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란 직함을 얻은 뒤 본격적으로 권력무대에 나섰다. 주로 행사장에서 김정은이 받은 꽃다발을 챙기거나 보좌하는 모습이 북한TV에 드러났다. 지난해 5월 7차 노동당 대회 당시엔 휴대전화와 수첩을 들고 행사를 지휘하는 장면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노동당 7차 대회 당시 핸드폰을 들고 행사 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김여정. [지지통신]

지난해 5월 노동당 7차 대회 당시 핸드폰을 들고 행사 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김여정. [지지통신]

하지만 이는 김여정의 극히 일부 모습에 불과하다는 게 대북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김정일 관련 행사의 기획·진행은 물론 정책결정 과정까지 개입하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0월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김여정이 간부의 사소한 실수도 수시로 처벌하는 등 권력남용 행태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오빠의 후광을 업은 김여정의 거침없는 행보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지난 4월 평양의 뉴타운격인 여명거리 준공식에선 중장(별 둘로 우리의 소장 계급에 해당)급 군 간부에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이 드러났다. 평양 권력층 사이에서는 "모든 길은 여정 동지로 통한다"거나 "여정 동지를 거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라도 한다. 이설주와의 권력다툼설도 있지만 대북정보 관계자는 "이설주의 행사 참석과 동선도 김여정이 기획한 데 따라 움직이는 구조"라고 귀띔했다.  
김정은과 부인 이설주가 지난 3월 만경대혁명학원을 방문한 모습. [노동신문]

김정은과 부인 이설주가 지난 3월 만경대혁명학원을 방문한 모습. [노동신문]

김여정은 지난 7일 열린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 오르며 승승장구한다. 60~70대가 주축인 정치국에 20대 나이인 김여정이 진입한 건 노동당 72년사에 전례 없는 파격이다. 고모인 김경희(김정일의 여동생)가 66세인 2012년 정치국 위원으로 처음 진입한 것에 비춰 봐도 그렇다. 여기에는 '믿을 건 핏줄뿐'이란 김정은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는 핵·미사일 도발 국면을 중간 점검하고, 집권 6년차 김정은 권력을 물갈이하는 자리다. 노동당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 조연준 제1부부장을 검열위원장으로 퇴진시킨 것도 이런 맥락이다. 결국 초점은 김여정이 사실상 노동당의 2인자 지위를 거머쥐는 데 맞춰진 셈이다.
김정은과 부인 이설주가 2015년10월 노동당 창건 70돌 축가공연을 관람하는 장면. [노동신문]

김정은과 부인 이설주가 2015년10월 노동당 창건 70돌 축가공연을 관람하는 장면. [노동신문]

김여정의 급부상을 놓고 정부가 안일하게 대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3대 세습 지도자인 김정은이 이른바 '백두혈통'을 내세워 봉건왕조 시대에 비견할 비정상적 통치행태를 보이는데도 제대로 된 진단이나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당 전원회의 분석자료를 냈지만 "국면 돌파를 위한 인적 개편"이란 수준에 그쳤다. 스위스 유학 시절 여권정보를 통해 김여정이 '1989년 9월 26일 출생'이란 점을 서방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갈팡질팡하는 등 기초적인 정보 수집에도 구멍이 뚫렸다. 미국은 촘촘한 대북 정보를 토대로 김정은 일가의 전횡을 압박하는 조치도 취하고 있다. 미 국무부가 지난 1월 대북인권보고서에서 김여정을 '북한 언론검열과 주민 세뇌공작의 총책'으로 규정해 인권범죄자 리스트에 올린 게 대표적이다.
노동당 정치국 진입을 계기로 김여정은 서방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9일 김정은과 이설주 사이의 자녀(우리 정보당국은 3명으로 추정)가 모두 여섯 살 이하인 점을 거론하며 "예기치 못한 통치 부재의 상황에서 왕조를 보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백두혈통인 김여정이 다음 후계자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김정은 유고시 여동생을 대안세력으로 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고위층 출신 탈북인사는 "김여정이 김정은과 수시로 통치노선과 인사·정책 문제를 논의하는 등 유사시 권력 후계 1순위로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호르몬계 질환으로 후계 자리를 동생에게 내준 김정철(36)은 팝스타 에릭 클랩턴의 음악에 심취하는 등 권력에 미련을 버린 상태로 파악된다.  
 
※이 기사의 취재·편집에는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이 기여했고, 『김정은 리더십 연구』(정성장 외), 『김정일가의 여인들』(이영종) 등의 문헌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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