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윤석만의 인간혁명]사피엔스는 틀렸다, 진화의 끝은 AI?
윤석만 기자 사진
윤석만 중앙일보 팀장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사피엔스는 틀렸다, 진화의 끝은 AI?

중앙일보 2017.09.30 05:00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시민들의 봉기로 샤를르 10세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프랑스 7월 혁명을 그렸다. 흩어져 있는 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조직화 된 시민의 힘은 강력하다는 것을 역사의 많은 사례가 이야기 해주고 있다. [중앙포토]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시민들의 봉기로 샤를르 10세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프랑스 7월 혁명을 그렸다. 흩어져 있는 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조직화 된 시민의 힘은 강력하다는 것을 역사의 많은 사례가 이야기 해주고 있다. [중앙포토]

  국가에 큰 위험이 닥쳐오자 이를 먼저 알아차린 한 남자가 시민들에게 경고를 합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믿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동지를 찾아 나선 그는 우연히 비범한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떠나죠. 남다른 용기와 비전을 갖고 있던 이 여성은 끝내 남자의 도움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 그 곳의 여왕이 됩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윤석만의 인간혁명'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관련기사
  지난 회에선 완벽하고 매력적인 휴머노이드 ‘아니타’가 주인공인 영국 드라마 ‘휴먼스’를 소개해 드렸죠. 이번엔 그 이웃나라인 프랑스의 소설 ‘개미’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개미’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병정개미와 여왕개미의 스토리가 이야기의 한 축입니다. 소설 속에서 개미는 사람들처럼 사회가 있고 각자의 역할과 임무를 맡아 공동체를 지탱합니다.   
'개미'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중앙포토]

'개미'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중앙포토]

 전 세계적으로 수천 만 부가 팔린 이 책에서 가장 재밌는 점은 개미도 인간만큼 정교하고 잘 짜인 문명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개미의 생태를 보면 인간이 배워야 할 것도 많습니다. 개미는 약 1억2000만 년 전 지구에 나타나 고도로 조직화 된 사회구조를 만들며 지금까지 생존해왔습니다. 그 때문에 베르베르는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개미라고 말하기도 하죠.
 
 지구상에는 약 1만 여 종의 개미가 존재합니다. 대멸종과 같은 극한의 상황에도 적응하고 살아남았죠. 이런 생존의 열쇠는 바로 ‘협업’에 있습니다. 열대지방의 어떤 개미는 여왕과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일반 개미들이 서로의 몸을 연결해 보호막을 만들고 외부의 열기와 공격으로부터 보호합니다. 제 몸집의 수백, 수천 배에 달하는 먹잇감을 옮기기 위해 수십 마리의 개미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기도 하죠. 
 
 사막의 개미는 한 낮에 더위를 견디지 못한 동물들을 먹이로 삼는데, 먹이의 운반 과정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먹잇감을 먼저 발견한 첫 번째 개미가 먹이를 옮기다 사막의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죽으면 두 번째, 세 번째 주자가 나섭니다. 몇 번의 이어달리기 끝에 최종적으로 먹잇감이 집으로 운반되죠. 개미는 개체가 아닌 공동체로 환경에 적응했기 때문에 지구 역사상 가장 오래 생존한 동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개미는 늘 단체로 움직인다. 제 몸집보다 수백배 큰 먹이도 팀웍을 발휘해 함께 옮길 수 있다. [중앙일보]

개미는 늘 단체로 움직인다. 제 몸집보다 수백배 큰 먹이도 팀웍을 발휘해 함께 옮길 수 있다. [중앙일보]

 인간도 개미와 같은 집단생활을 통해 지금 같은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죠. 다른 점 한 가지는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정확한 진화적 이유를 깨닫고 있지 못하다는 겁니다. 아직도 인간은 자신이 가장 지능이 높고 똑똑한 존재이기 때문에 지구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죠. 현생 인류를 똑똑하다는 뜻의 라틴어 ‘사피엔스(sapiens)’로 부르는 것도 이 같은 편견을 부추긴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건 지능이 높아서가 아니었다는 말이냐고요? 물론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진화의 결정적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단지 똑똑함만이 현생 인류를 지금의 위치로 올려놓은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 증거를 과거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가 동시대에 살았던 과거의 역사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략 3만5000년 전쯤 유럽 대륙에선 인류 역사의 큰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게 된 것인데요. 이는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때문이었습니다. 아프리카 태생인 사피엔스는 7만 년 전부터 자신의 집을 떠나 세계 곳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이때쯤 많은 사피엔스가 유럽 대륙에 정착을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대이동.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유럽, 아시아 등으로 이주했다. [중앙포토]

호모 사피엔스의 대이동.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유럽, 아시아 등으로 이주했다. [중앙포토]

 그러나 이곳엔 이미 네안데르탈인이 오랜 시간 살고 있었죠. 생김새부터 다른 네안데르탈인은 북쪽의 추운 기후에 적응해 상체는 근육이 발달해 있었고 열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부진 체격을 가졌습니다. 반면 따뜻한 남쪽에서 올라온 사피엔스는 상대적으로 호리호리한 체형이었죠. 아마 두 종이 1대 1로 맞붙었다면 피지컬 면에서 뛰어난 네안데르탈인이 이겼을 겁니다. 

 
 하지만 두 종간에 벌어진 전쟁의 결과는 달랐습니다. 이들이 함께 공존했던 약 300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네안데르탈인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중동지역과 동아시아에 퍼져 있던 데니소바인, 플로네시스인 등도 사피엔스와의 경쟁에 뒤처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다른 인류의 종은 왜 멸종했을까요.
뇌의 용적량. 1. 침팬지 2. 오스트랄로피테쿠스 3. 호모 에렉투스 4. 네안데르탈인 5. 호모 사피엔스 [소프트피디어]

뇌의 용적량. 1. 침팬지 2. 오스트랄로피테쿠스 3. 호모 에렉투스 4. 네안데르탈인 5. 호모 사피엔스 [소프트피디어]

 지금까지의 오랜 통념은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보다 더욱 똑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인류학 연구 흐름을 살펴보면 ‘똑똑함’만이 사피엔스의 승리 이유는 아닙니다. 단적으로 근래에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을 분석해보면 뇌의 용적량이 1400cc(성인 남성 기준)로 현대인(1370cc)보다 오히려 큽니다. 이전 종인 호모 에렉투스(935cc)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494cc)보다 월등히 앞서죠. 즉, 네안데르탈인도 사피엔스처럼 높은 지능을 갖고 있었다는 이야깁니다. 
 
 고고학의 권위자인 네덜란드 레이든 대학의 윌 로브로크 교수는 “네안데르탈인은 부싯돌로 도구를 만들고 사냥기술도 뛰어날 만큼 지능이 발달해 있었다”고 말합니다. 2014년 8월 영국의 일간신문 ‘가디언’도 ‘네안데르탈인은 우리와 공존했다’는 기획보도를 통해 당시 네안데르탈인이 사피엔스에 못지 않은 지능을 갖고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보다 신체적 조건이 뛰어난 네안데르탈인을 물리칠 수 있던 것은 '협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보다 신체적 조건이 뛰어난 네안데르탈인을 물리칠 수 있던 것은 '협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은 왜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밀렸을까요?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동굴에서 발견된 유골과 생활 흔적 등을 비교해 두 종간의 차이점을 유추했습니다. 그러나 유전공학의 발달로 DNA 지도를 그려보니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언어와 사회성입니다. 이 둘을 관할하는 뇌의 전두엽이 사피엔스가 월등하게 발달해 있던 거였죠. BBC가 제작한 네안데르탈인 다큐멘터리를 보면 언어와 사회성은 사냥 방식에서도 큰 차이점을 드러냅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직접 들소를 쫓아가 창을 꽂아 사냥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피엔스는 언어를 통해 소통하고 협업을 했죠. 누군가는 들소를 몰고, 누군가는 미끼가 돼 유인하며, 또 누군가는 큰 바위나 나무 뒤에 숨어 있다 창을 던졌습니다. 
 
 이처럼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협업’ 때문입니다. ‘공동체’라는 경쟁력을 만들어낸 거죠. 집단에서 나오는 협동의 힘이 다른 종과 싸움에서 우위를 가지게 했고 결국엔 지구의 주인 노릇까지 할 수 있던 겁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도 “사피엔스는 정교한 언어와 협업을 통해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오늘과 같은 문명을 이룩했다”고 말합니다. 자연에서 한 개체로서의 인간은 어린 맹수 한 마리도 상대하지 못할 만큼 약하지만 ‘공동체’란 경쟁력을 만들어내면서 지금은 지구 밖까지 우주선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존재로 우뚝 섰습니다.
하버드대의 교육철학이 잘 표현돼 있는 덱스터 게이트. 학교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땐 "지혜를 키우고" 안에서 밖으로 나갈 땐 "더 나은 사회와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고 쓰여 있다. [중앙포토]

하버드대의 교육철학이 잘 표현돼 있는 덱스터 게이트. 학교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땐 "지혜를 키우고" 안에서 밖으로 나갈 땐 "더 나은 사회와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고 쓰여 있다. [중앙포토]

 결국 현생 인류의 가장 큰 강점은 똑똑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이미 많은 영역에서 AI가 인간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진화의 열쇠가 단순히 지능뿐이었다면 특이점(AI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시점) 이후 시대엔 지구의 주인 자리를 AI에게 내줘야 합니다. 그러나 1억년 이상 살아남은 개미에서 보듯 인간이 지구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던 건 사회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그 안에서 협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개체의 생존이 아니라 집단의 공존이 중요한 이윱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한번 살펴볼까요. 한국의 학생들은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똑똑합니다. 올림피아드 등 대회에서 늘 최상위권을 차지하죠. 그런데 유독 팀워크와 협동엔 약합니다. 실제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선진국과 한국 학생들의 시민성을 조사해보니 우리가 유독 낮게 나왔습니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질서와 규칙을 배우고 실천한다”는 질문에 프랑스(63%)와 영국(53%)은 절반 이상이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한국은 18%에 불과했습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걸 배우고 실천한다“는 물음에는 프랑스·영국(60%)의 4분의 1 수준(16%) 밖에 안 됐죠.
시민성 부족한 한국 학생들(단위 %). 한국 등 4개국 초등학생 2349명 조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시민성 부족한 한국 학생들(단위 %). 한국 등 4개국 초등학생 2349명 조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하지만 미래 사회는 혼자서만 똑똑한 것보다 다양한 개성이 함께 어우러져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4차 혁명의 첨단에 서 있는 구글이 대표적입니다. 구글은 매년 전 세계에서 300만 명이 입사 지원을 하고 이중 0.2%만 채용되는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10번이 넘는 면접을 거쳐야 하며, 매번 다른 질문과 평가로 지원자를 심사하죠.    
 
 그런데 구글에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협업’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인 최초로 구글 본사의 책임자로 일하는 이준영(46)씨는 “아무리 똑똑해도 팀워크가 없으면 구글러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보스포럼도 2016년 미래 사회에 필요한 핵심 능력 중 하나로 ‘협업’을 제시하기도 했죠. 이처럼 앞으로의 사회에선 내가 원하는 직장을 얻고, 성공하기 위해선 ‘협업’ 능력이 필수란 이야깁니다.
중앙일보 2016년 10월 15일자. [중앙포토]

중앙일보 2016년 10월 15일자. [중앙포토]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기준도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성적과 스펙 등 개인의 똑똑함만을 강조해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아이를 키우는 교육을 이젠 그만 해야 합니다. 대신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하죠.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만을 키울 게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과 공공선을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도 함께 길러야 한다는 거죠. 어린 시절 우리가 자주 듣던 말처럼 “배워서 남 주냐?”고 되물을 게 아니라, 정말 “배워서 남에게 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오길 기대해 봅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 ‘윤석만의 인간혁명’은 매주 토요일 아침 업데이트 됩니다. 다음 회(5회)만 추석 연휴로 인해 9일 오전 5시에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만 기자는
.

.

 중앙일보 교육팀 소속인 윤 기자는 2010년부터 교육 분야를 취재했다. 특히 인성·시민 교육 및 미래에 관심을 갖고 관련 보도에 집중했다. 앞으로의 사회에선 성적과 스펙보다 협동과 배려, 공감 같은 인성역량이 핵심능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를 주제로 ‘휴마트(humanity+smart) 씽킹’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중앙인성연구소 사무국장을 겸임하고 있다.
 
배너

윤석만의 인간혁명

구독하기를 하시면 기사 업데이트 시
메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