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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오십 청년, 칠십 중년은 순간의 위안일 뿐

중앙일보 2017.09.18 02:16
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

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

농사짓는 은행 지점장을 2006년 봄에 동행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53세이던 그는 주말마다 경기도 이천의 고향에 내려가 논 6000평(1만9800㎡), 밭 800평(2640㎡) 농사를 지었다. 주중에는 노부모가 농사에 필요한 잔일을 살폈다. 그는 고향 집에 도착하자마자 양복을 훌훌 벗어 던지고 허름한 바지와 셔츠로 갈아입고서는 고무신을 신고 밭으로 나갔다. “지금은 부모님을 돕고, 여기서 나오는 농산물을 은행 업무 판촉용으로 쓰는 정도지만 퇴직 이후엔 본격적으로 농사지을 겁니다. 지금은 그때를 위한 준비죠”라고 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트랙터를 몰던 그 지점장이 떠오른 건 우리 사회 고령화 관련 뉴스가 근래 쏟아지기 때문이다. 반갑지는 않은 것들이다. 가령 한국 남성의 퇴직 연령은 평균 51.6세지만, 사회활동에서 은퇴하는 연령은 72.9세다. 직장을 그만둔 뒤에도 생계를 위해 20년 이상 일해야 할 형편이다. 드디어 고령 사회에 들어섰다는 소식도 있다. 8월 말 현재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는 725만7288명으로 전체인구(5175만3820명)의 14%를 넘었다. 유엔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인 경우 고령화 사회, 14% 이상은 고령사회, 20% 이상은 초고령 사회로 분류한다. 전남 고흥(38.1%), 경북 의성(37.7%) 등 기초지방자치단체 93곳은 이미 초고령 사회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선 곳은 사실상 노인이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하는 동네다. 그런 노인 세상이 다가오지만 아직 변변한 대책이 없다. 고령화 대책은 저출산과 패키지로 인식되며, 중심은 저출산에 가 있다. 인구대책 차원에서 출산율을 높이는 게 장기적으론 올바른 방향이지만 한계가 있다. 지난 10년간 151조원을 투입했음에도 출산율은 여전히 초저출산율의 기준인 1.3명 이하를 기록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 연금제도, 고용정책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고령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진일·박경훈 ‘고령화에 대응한 인구대책: OECD 사례를 중심으로’, 2017)
 
요즘 유엔의 새로운 생애주기별 연령지표를 인용해 0~17세를 미성년, 18~65세를 청년, 66~79세를 중년, 80~99세를 노년, 100세 이상은 장수 노인이라 부른다고 한다. 40~50대에겐 후기청년이란 명칭이 붙는다. 퇴직 후에도 20년 넘게 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좋은 말이다. 하지만 대개는 순간의 위안일 뿐이다. ‘후기 청년’ ‘중년’이라면 그에 걸맞게 일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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