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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야당 같은 여당, 여당 같은 야당

중앙일보 2017.09.18 02:04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낙마는 의외다. 여당도 놀라고, 야당도 놀랐다. 여도 야도 지금이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라는 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압도적 득표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으니 국정은 그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국회는 귀찮은 절차의 하나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김 후보자만이 아니다. 당장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같은 일이 벌어지면 문 대통령이 생각하는 사법 개혁은 모두 헝클어진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를 자진 사퇴시키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사과했다.
 
정부·여당이 이제 정신을 차린 걸까. 아직은 아니다. 국회 부결을 버릇없는 아이의 ‘뗑깡’ 정도로 생각한다. 압도적 표로 당선된 대통령, 70%를 넘나드는 국민 지지도…. 그 힘을 믿는다. 이것이 촛불 민심이고, 국민의 뜻이라는 생각이다. 야당이 대통령의 ‘개혁’에 협조하는 것이 ‘협치(協治)’라고 믿는다.
 
1988년 우리 국회는 초유의 상황을 맞았다. 집권당이 과반수에 못 미친 것이다. 민정당의 김윤환 원내총무는 자정 전에 귀가하는 날이 없었다. 여야를 뛰어다니며 협상을 주도했다. 스스로 속을 비운 ‘빈 배’로 자처하며 아호를 허주(虛舟)라 했다.
 
노태우 대통령을 만들어낸 전두환 전임 대통령을 국회 청문회에 불러내고, 백담사로 유배 보냈다. 현직 대통령도 자유롭지 않은 광주 청문회, 5공 청문회를 열었다. 각종 악법(惡法)들을 개폐했다. 역대 국회 중 가장 많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4당 4색이었지만 모든 문제를 합의 처리했다. 이 바람에 보수 진영에서는 노 대통령을 ‘물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
 
군사정부에서의 일이다. 국민 직접선거로 당선됐지만 쿠데타로 집권하고, 그 힘을 이용해 연장한 정부다. 정통성이 취약했기 때문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힘을 쓰던 사람이 절제하기는 더 어렵다. 더구나 국회는 장식물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세 가지 축, 그중에서도 1인 권력자의 독재를 견제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그때는 대선 뒤에 총선이 있었다. 총선 뒤에 대선을 치른 현 상황과는 거꾸로다. 대선 결과가 현재 민심이고, 총선은 최순실 사태를 모를 때 잘못된 판단의 결과라고 묵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각제에서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다시 한다면 모를까 이미 구성된 국회는 4년 동안 대의기구로 인정하는 게 헌법이 정해놓은 약속이다.
 
여당이 여당답지 않고, 야당이 야당답지 않은 게 가장 문제다. 국정 운영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집권당이 져야 한다. 인사가 잘못돼도,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아도, 법률안이 처리되지 못해도 집권당 책임이다. 국회가 어떻게 하건 행정부는 내 길을 간다는 건 헌법 파괴다.
 
어떤 국회이건 이견이 없을 수 없다. 집권당의 생각이 옳을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존중하며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민주 정치다. 어떻게든 합의를 이끌어내는 건 바로 집권 여당의 책임이다.
 
그런데 여당에 책임감이 없다. 야당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여론을 향해 야당을 비난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한 것처럼 생각한다. 국민을 상대로, 역사를 상대로 정치하겠다는 건 독재자들이나 하는 행동이다. 아니면 상대적으로 책임이 가벼운 야당들이 보일 수 있는 행태다.
 
김이수 후보자가 낙마하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야당을 “염치없는 행동” “뗑깡” “협치라는 이름으로 다수의 폭거를 행사하는 것은 골목대장 같은 막가파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전에도 ‘머리 자르기’ 발언으로 우원식 원내대표마저 “곤혹스럽다”고 했지만 그는 국회 상황보다 문자부대의 응원에 고무됐다.
 
선거 때라면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집권당 대표라면 국회를 끌고 가야 할 책임이 있다. 더구나 원내대표는 협상의 당사자다. 그런데도 야당이 장외투쟁에 나서면 국회로 복귀하도록 달래야 할 여당 원내대표가 원내로 복귀한 야당을 향해 “책임을 묻겠다”고 비난했다. “민심과 괴리된 국회”라며 “민심과 일치된 국회를 만들 책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고도 협치가 안 된다고 누구를 비난할 건가.
 
야당은 배가 부르다. 정권교체의 절박함이 없다. 그저 야당의원으로 현실을 즐기는 것 같다. 장기적으로 보수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 구상도, 전략도, 의지도 없다. 눈앞의 이익, 내년 지방선거, 사소한 말다툼으로 고정 지지층으로부터 박수를 받는 것만 즐긴다.
 
야당 같은 여당, 여당 같은 야당이다. 빨리 제자리를 찾지 않으면 국회는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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