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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한마디에 … ‘사드 보복’ 항의도 못하게 된 산업부

중앙일보 2017.09.18 01:59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이 급감했다. 지난 14일 인천국제공항의 중국 항공사 카운터가 한산하다. [뉴시스]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이 급감했다. 지난 14일 인천국제공항의 중국 항공사 카운터가 한산하다. [뉴시스]

“청와대가 통상 당국의 입지를 좁혀 놨다. 앞으로 대(對)중 협상력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통상 전문가인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에 정부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평가다.
 
정부는 다음달 6일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무역이사회에서 한국 유통·관광 분야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의 부당함을 지적하기로 했던 기존 방침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3일 한·중 통상 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중국에 대한 WTO 제소 검토와 함께 유통 분야 등에 대한 문제 제기 방침도 정했다. 그런데 이런 방침이 뒤집힐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정부의 입장 변화는 청와대가 사실상 제시한 ‘가이드라인’ 영향이 크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한·중 통상 점검 TF 회의 다음 날인 지난 14일 “한·중 간 어려운 문제에 대해 전략적인 소통과 협력을 더욱 강화하며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WTO에 제소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사실상 밝혔다는 걸로 해석되는 언급이었다. 정부의 공식 발표를 하루아침에 뒤집은 셈이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WTO에 제소하거나 WTO 회의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한 실효성 논란은 그간 있어 왔다. 다른 소송과 마찬가지로 WTO에 제소해 이기려면 중국이 WTO 규정을 어겼다는 걸 입증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중국은 ‘사드 보복’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국의 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식으로 한국 기업을 괴롭히고 있다.
 
한국 정부 입장에선 증거를 찾기 어렵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은 “WTO에 제소해도 승소를 기대하기 어렵고 근본적인 중국의 정책 기조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며 “정부가 그간 WTO 서비스 분과회의에서 문제를 제기하긴 했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나서 정부의 기존 입장을 번복하며 한국 내부의 ‘엇박자’를 드러낸 건 경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WTO 제소는 현실화 여부를 떠나 국제사회에서 공론화해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협상카드’였다. 김현종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3일 기자들과 만나 WTO 제소 여부에 대해 “옵션으로 갖고 있다. 카드는 일단 쓰면 카드가 아니다”고 말했다. WTO 제소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필요시 상대를 압박하겠다는 의도였다. 앞으론 이 카드를 사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커졌다. 심상렬 교수는 “통상 당국의 전략적 모호성을 청와대가 깨 버렸다”며 “앞으로 통상 당국이 문제 제기를 하기도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민간 업계의 피해는 커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중국이 자국민의 한국 여행을 사실상 금지했던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한국 관광 분야에서 65억1000만 달러(약 7조6000억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피해액은 156억2000만 달러(약 18조1000억원) 수준이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롯데마트·이마트 등은 철수를 결정했다. 이런 만큼 정부의 보다 치밀한 대응이 요구된다. 정인교 대외부총장은 “외교·안보 문제가 결부된 상황에서 경제 분야의 대응에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그렇더라도 내부에서조차 대응전략을 조율하지 못하면 결국 민간 기업이 더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드 보복의 결과는 중국에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걸 적극 알리면서 장기적으로 경제 분야의 ‘대중 쏠림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에 대한 경제 편중현상이 통상 분야의 협상력을 더 끌어내릴 수 있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에서 한국 기업이 철수하면 결국 중국도 고용 및 투자 등에서 손해를 본다. 이런 점을 중국에 널리 알리는 등 활용하면서 장기적으로 인도·동남아시아 등으로 교역시장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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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현 하남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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