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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 ‘나무가 되어’ 떠난 조동진

중앙일보 2017.09.18 01:00
지난달 세상을 떠난 조동진의 추모공연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 사진은 새의전부·소히 등 ‘조동진 사단’의 막내 라인.[사진 푸른곰팡이]

지난달 세상을 떠난 조동진의 추모공연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 사진은 새의전부·소히 등 ‘조동진 사단’의 막내 라인.[사진 푸른곰팡이]

16일 오후 7시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음악 레이블 푸른곰팡이 연합공연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를 찾은 1000여 명의 관객들은 조용히 숨을 죽이고 무대에서 나오는 소리 하나, 영상 하나에 집중했다. 비록 이날 공연의 주인공인 조동진은 지난달 28일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나갔지만, 그가 남긴 영상과 사진, 음성이 곳곳에서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가 뿌린 음악적 자양분을 먹고 자란 17팀이 꾸민 150분은 고인이 13년 만에 무대에 올라 펼치고자 했던 ‘조동진 꿈의 작업 2017’이라는 부제를 완성하기에 충분했다.
 
공연은 담담하게 시작됐다. 가을의 문턱에서 조동진이 남긴 편지가 그가 사진으로 찍은 제주의 나무들 위로 펼쳐졌다. 그는 “물방울이 모여 물줄기가 되고 웅덩이가 되듯 함께 모인 사람들”과 “‘경이롭고 고요한 세계’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원했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무가 되어’를 부르자 소히·새의전부 등 ‘조동진 사단’의 막내 라인이 무대에 올라 ‘나는 이제 따라갈 수 없으니 그대 홀로 떠나갈 수 있기를’이라고 노래를 이어받았다. 먼저 떠나간 형님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내고 슬픔으로 오열하는 대신 그의 자리를 남겨둔 채 추모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포크록의 대부’ 조동진의 젊은 시절 모습.

‘포크록의 대부’ 조동진의 젊은 시절 모습.

 
당초 조동진이 부르기로 예정돼 있던 곡들도 후배들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푸른곰팡이를 이끌고 있는 동생 조동희는 인도 현악기 시타르를 들고나와 ‘그’를 불렀다. 오빠의 음색과는 사뭇 다른 맑은 목소리였지만 ‘그’는 멀리 있어도 나의 그림자이자 친구임을 고백하는 노래는 이날 공연과 꼭 맞는 선곡이었다. 그는 “웃으면서 준비한 공연이 본의 아니게 추모공연이 되어버렸다”며 “아마 이 자리에서 듣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에서 형님에게 꼭 들려드리고 싶었던 곡”라며 오소영이 띄운 ‘작은배’나 SNS에 올라온 추모글과 사진 위로 한동준이 부른 ‘당신은 기억하는지’ 역시 그는 갔지만 떠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기타리스트인 이병우는 “형님이 돌아가신 날 꿈을 꿨는데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얼굴이 형님 얼굴이었다”며 에피소드를 털어놓기도 했다.
음악적 동지이자 가족인 장필순 등 푸른곰팡이 소속 뮤지션이 총출동했다. [사진 푸른곰팡이]

음악적 동지이자 가족인 장필순 등 푸른곰팡이 소속 뮤지션이 총출동했다. [사진 푸른곰팡이]

 
제수인 장필순은 고인의 ‘제비꽃’과 ‘겨울비’를 부를 때는 차마 객석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 채 옆모습 혹은 뒷모습을 보였다. 평소 조동진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그는 “형님 생각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마음이 담긴 무대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함께 서기로 한 무대에서 형님이 이야기해준대로 후배들이 자신의 소리로 노래했다. 눈물을 잘 참고 노래해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놀라운 것은 여러 가수가 각기 다른 메시지가 담긴 본인들 노래를 부를 때도 그 안에 흐르는 정서가 하나로 이어진 점이다. 이규호가 만든 ‘뭉뚱그리다’ 역시 ‘무엇 하나 되살리기에 늦은 무덤’이라며 아름다운 지난 시절을 노래했다. 모던록과 록발라드가 어우러진 정혜선이나 재즈를 기반으로 한 더버드와 오늘 등 장르가 바뀌어도 본질은 흩어지지 않았다. 직접 곡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들이 모인 푸른곰팡이만이 지닐 수 있는 색깔이기도 했다.
 
조동희는 공연에 앞서 “다들 절대 울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말했지만 결국 앙코르곡 ‘행복한 사람’을 부를 때는 여기저기서 눈물이 터졌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공감하고 호흡하고 경험하는 순간은 늘 저에게 기적과도 같아요. 그런 기적을 이루게 도와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함께 하시죠”라는 영상 속 고인의 말에 따라 관객들이 일제히 LED 캔들라이트를 켜고 노래를 따라불렀다.
한동준 뒤로 SNS 상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글들이 보인다. [사진 푸른곰팡이]

한동준 뒤로 SNS 상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글들이 보인다. [사진 푸른곰팡이]

 
이날 공연을 연출한 마장뮤직앤픽처스 하종욱 대표는 “원래는 조동진 단독 공연으로 시작해 내년 투어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건강이 급격히 안좋아지면서 가장 빠른 일정을 잡게 됐다”며 “후반부는 별이나 빛을 활용해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등 그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대폭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공연에 대한 추가 문의도 많아 오는 12월 경기 고양에서 다시 한번 연합추모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푸른곰팡이 구성원 각자의 행보도 멈추지 않는다. 장필순과 조동희는 이튿날 바로 화엄음악제로 떠났고, 이병우는 기타 솔로 콘서트에 나선다. 이규호도 단독 공연을 앞두고 있고, 정혜선은 25년 만에 2집을 내기도 했다. 조동희 대표는 “오빠가 하나음악을 맡은 게 지금 내 나이(44)와 같았다고 들었다. 회사라기보다는 공동체에 가깝지만 동료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작가주의 음악들을 계속 해 내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내년에도 초가을쯤 이런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서정민갑 음악평론가는 “조동진은 자발적 고독을 음악으로 전환한 순수의 결정체”라며 “이것이 동아기획-하나음악-푸른곰팡이로 이어지는 포크음악 사조에 대한 재평가와 연구작업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로비에 마련된 전시 속 연대기에서는 이날 공연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조규찬·유희열·윤영배 등 낯익은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유희열은 “철없던 나에게 정서를 가르쳐준 음악가”라며 “안테나뮤직이 제2의 하나음악이 될 수 있길 꿈꾼다”고 말하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그의 영향을 받은 음악가들이 이리 많다니 그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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