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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거기 어디?]통의동 보안여관 왜 핫한가 했더니

중앙일보 2017.09.18 00:01
최근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에 자꾸 옛날 여관 사진이 올라온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건물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목욕탕 표시와 ‘여관’이라고 큼지막하게 쓴 투박한 간판 사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의 모습이다. 
오래된 간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갤러리 '보안여관'.

오래된 간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갤러리 '보안여관'.

그 자리에 있은 지 80년은 족히 넘은 이 여관은 요 몇 달 사이 인스타 속 나들이 명소로 떠올랐다. 보안여관 관련 게시물 수만 3600여 개. ‘보안책방’ ‘보안스테이’ ‘일상다반사’ 등 보안여관과 연결된 장소들의 게시물도 속속 올라온다.  
지난 9월 15일 오후 1시쯤 소문으로만 듣던 보안여관을 직접 찾아갔다. 경복궁 영추문 맞은 편에 자리잡은 보안여관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리는 게 가장 쉽다. 4번 출구로 나와 청와대로 들어가는 길, 일명 ‘경복궁 담장길’을 따라 청와대 방면으로 쭉 거슬러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다보면 통의동파출소, 대림미술관을 지나 투박한 보안여관 간판을 찾을 수 있다.   
경복궁 영춘문 건너편에 있는 '보안여관'(오른쪽)과 그 모습을 꼭 닮은 '보안1942'.

경복궁 영춘문 건너편에 있는 '보안여관'(오른쪽)과 그 모습을 꼭 닮은 '보안1942'.

이름은 여관이지만 이곳은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다. 과거 여관으로 운영되다 2004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수년간 버려지다시피한 곳을 2007년 당시 복합문화예술 공간을 기획하고 있던 최성우 보안1942 대표(일맥문화재단 이사장)가 사들였고, 2010년부터 갤러리로 운영하고 있다. 
사실 여관일 때에도 갤러리 못지 않게 많은 문인과 화가 등 예술가들의 공간이었다. 1936년 시인 서정주가 여기서 지내며 김동리·김달진 등 동료 시인과 함께 문예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했다는 이야기는 꽤 알려져 있다. 화가 이중섭이나 시인 이상도 보안여관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리던 예술인들 중에 포함돼 있었다. 2004년 문을 닫기 직전엔 늦게까지 야근하다 통금시간에 걸린 청와대 공무원들의 잠자리로 종종 쓰이기도 했다.  
보안여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옛 여관 시절 경고푯말.

보안여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옛 여관 시절 경고푯말.

보안여관은 꼭 전시를 볼 생각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미성년자는 입장해서도 안 되고 입장시켜도 안됩니다’라는 옛 여관 시절 푯말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았다. 바로 옆에는 손님이 들어오면 숙박 등록을 했을 작은 창과 오래된 거울이 붙어 있고 안쪽으로 길게 난 복도를 따라 작은 방이 열을 지어 나타났다. 
너무 낡고 헐어 골조가 앙상하게 드러난 방에는 오래된 서울의 건물 사진을 전시하는 ‘서울루나포토 2017’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발걸음을 올릴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바닥과 이제는 생활에 사용하지 않는 옛 전구 스위치나 ‘문살짝’ 같은 푯말을 보는 재미가 솔직히 더 쏠쏠했다. 
복도를 따라 열려있는 낡은 방문이 보인다.

복도를 따라 열려있는 낡은 방문이 보인다.

방 안은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골조만 남기고 벽을 철거해 공간을 틔워 전시장으로 쓴다.

방 안은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골조만 남기고 벽을 철거해 공간을 틔워 전시장으로 쓴다.

보안여관 입구에 있는 전등 스위치. 이런 스위치 보는 것, 참 오랜만이다.

보안여관 입구에 있는 전등 스위치. 이런 스위치 보는 것, 참 오랜만이다.

보안여관이 SNS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17년 6월 보안여관 바로 옆에 일맥문화재단 최성우 대표가 보안여관의 2017년 버전인 ‘보안1942’를 만들면서부터다. 카페·책방·전시장·게스트하우스까지 모두 갖춘 공간으로, 이곳의 원류인 보안여관 관련 이야기가 함께 입소문 나면서 인스타그래머들의 관심을 불러모았다. 옛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낡고 오래된 보안여관의 모습과 교과서에서나 만났던 시인의 스토리, 거기에 세련된 카페와 책방까지 한 공간에 갖추니 더 이상 훌륭한 하루 나들이 코스도 없겠다 싶다.
깔끔한 플레이팅의 쌈밥과 차, 커피를 먹을 수 있는 카페 '일상다반사'.

깔끔한 플레이팅의 쌈밥과 차, 커피를 먹을 수 있는 카페 '일상다반사'.

보안여관과 똑 닮은 보안1942 건물은 최 대표가 보안여관의 DNA는 지키면서 이 시대에 맞는 복합문화예술 공간으을 마련하고자 만든 공간이다. 건축디자인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국악중고등학교 등을 지은 민현식 건축가가 맡았다. 이름의 1942는 보안여관 천정 속에서 발견한 ‘1942년 천정을 보수했다’란 기록에서 따왔다. 밤이면 술집으로 변하는 서점(보안책방), 정갈한 쌈밥과 품질 좋은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일상다반사), 전시장, 그리고 7개의 방으로 구성된 게스트하우스(보안스테이)가 갖춰져 한 건물 안에서 읽고 보고 자고 먹는 것을 한번에 다 할 수 있다.
보안1942 2층에 있는 '한권서점'. 이곳을 지키는 개 '보안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보안1942 2층에 있는 '한권서점'. 이곳을 지키는 개 '보안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보안1942 지하의 '보안책방'. 오후 8시 이후엔 술집 '보안술집'으로 변한다.

보안1942 지하의 '보안책방'. 오후 8시 이후엔 술집 '보안술집'으로 변한다.

이곳을 둘러볼 땐 이곳에서 제안하는 순서를 따르는 게 가장 좋다. 먼저 보안여관을 둘러본 후 두 건물을 이어주는 2층 통로로 보안1942 건물로 건너온다. 그러면 보안1942 2층에 있는 한권서점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 곳은 보안책방과 또 다른 책방으로, 보안여관에서 하는 전시와 관련한 책을 주로 판매한다. 전시를 더 보고 싶은 사람은 지하1층의 전시실로, 이제 그만 앉아 음료나 간식을 먹고 싶다면 1층의 일상다반사로 자리를 옮기면 된다. 지하 2층에 있는 보안책방을 들러도 되는데 오후 2시부터 문을 여니 여기를 꼭 방문하고 싶다면 오후로 나들이 계획을 짜는 게 좋겠다.  
일상다반사에서 시킨 자몽국화차.

일상다반사에서 시킨 자몽국화차.

나 역시 보안여관과 한권서점을 둘러본 후 1층으로 내려가 카페 일상다반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큰 유리창 너머로 경복궁 돌담이 그림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직접 만든 과일청으로 만들었다는 자몽국화차 한잔을 시켰다. 국화꽃이 예쁘게 올라간 달콤하고 시원한 차를 한 모금 마시니 오후가 더 여유로워졌다.  
글·사진=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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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희 윤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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