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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30년간 50만 시간 대기록 포스코 노사 '상생 자원봉사' 현장 가보니

중앙일보 2017.09.17 16:44
16일 오전 포스코 냉연부 소속 직원들이 경북 영천에 있는 국립영천호국원에서 비석을 닦고 있다. [사진 포스코]

16일 오전 포스코 냉연부 소속 직원들이 경북 영천에 있는 국립영천호국원에서 비석을 닦고 있다. [사진 포스코]

16일 오전 경북 영천시 고경면에 위치한 국립영천호국원. 추석 성묘 철을 앞두고 200여 명의 포스코 냉연부 소속 직원(노사 양측)와 그들의 가족이 함께 모였다. 비석을 닦기 위해서다. 이들은 ‘포스코 사회봉사단’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손에 장갑을 낀 채 정성스레 국가유공자들의 비석을 하나씩 닦고 주변을 청소했다. 흩어진 잡초를 치우고, 조화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오랜 만에 만난 직원들의 가족들은 서로의 안부인사를 반갑게 물었다.
 
강병우 1냉연공장 사원은 "자원봉사 활동도 좋지만 사무실에서 듣지 못했던 현장 이야기를 듣고 선배들과 고충을 나누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동호 냉연부 2냉연공장 공장장은 "평소에는 일이 바빠 같은 부서라도 팀이 다르면 함께 회식도 같이 하기가 힘들다. 오늘처럼 봉사활동 끝나고 1500원짜리 우동에 막걸리 한잔하면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하는 데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시 포스코 스테인레스(STS) 1냉연공장에서 티타늄사업부 기술개발팀원들이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포항시 포스코 스테인레스(STS) 1냉연공장에서 티타늄사업부 기술개발팀원들이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가공된 쇳물을 최종 제품으로 만드는 포스코 냉연부 3개 공장에 소속된 직원은 모두 460명인데 이들 중 관리직인 엔지니어는 35명이다. 소수의 관리직원과 다수의 현장직 근로자들이 잘 소통하고 단합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지난 10년간 계속해온 냉연부 소속 노사의 호국원 봉사활동은 직원들이 활발하게 소통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냉연부 뿐만이 아니다. 포스코가 매달 셋째주마다 진행하는 ‘나눔의 토요일’인 이날 각 부서는 다양한 봉사활동에 나섰다. 벽화 그리기, 바다 속에 들어가 쓰레기를 줍는 클린오션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일회성으로 보여주기 식이 아닌, 전 직원이 꾸준하게 의지를 갖고 참여한다. 
지난해 포스코 직원의 1년 평균 봉사활동 시간은 31시간이었다. 1988년 포스코 직원들이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한 이후 지난해에 누적 50만 시간을 달성했다. 안동일 포항제철소 소장은 "이제 직원들에게 봉사활동은 현장직ㆍ관리직ㆍ지역주민이 함께 소통하는 무대가 됐다"고 말했다.    
포항시 제철동 주택가 담장에 포스코 직원들이 그린 벽화. 백경서 기자

포항시 제철동 주택가 담장에 포스코 직원들이 그린 벽화. 백경서 기자

경북 경주의 온정마을에서 EIC기술부가 하는 봉사활동도 올해로 10년째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씻겨주는 목욕 봉사다. 손대호 온정마을 원장은 "장애인 씻어주기와 산책 동행 봉사는 아주 힘든 봉사인데 포스코 직원들이 꾸준히 도와줘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16일 오전 포항시 남구 제철동에서 포스코 직원들이 벽화그리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16일 오전 포항시 남구 제철동에서 포스코 직원들이 벽화그리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포스코(6월 현재 1만6791명 근무)에는 1988년 노조가 설립됐으나 93년 대거 이탈해 현재는 10여명이 가입한 소규모 노조만 있다. 조합원 1만9800명의 거대 노조였지만 조합원 생일선물 납품업체 선정과정에서 노조간부가 금품을 받은 사실이 폭로된 뒤 노조원 대부분이 탈퇴했다. 포스코에서 적극적 자원봉사 활동을 주도해온 주체는 노조가 아니라 97년 발족한 노경(勞(經)협의회다. 노경협의회 대의원 10명이 모두의 의견을 반영해 봉사활동 계획을 세우고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영천호국원 봉사 활동 현장에 직접 동행한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장기간에 걸친 포스코 노사의 꾸준한 봉사활동에 대해 '사회민주주의 노동'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설명했다.
송 교수는 "포스코 직원을 만나보면 포항시와 포스코, 시민이 모두 함께 성장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운동에서 시작된 포스코의 봉사활동은 이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형태의 '사회적 노동운동'이 됐다"고 분석했다. 지역 사회 전체를 발전시키는 활동이 그 지역에 속한 회사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쳐 근로조건 개선과 근로자들의 지위 향상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저서 『가보지 않은 길』에서 단순히 근로자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강성 노조를 비판했던 송 교수는 노조가 이기주의의 틀을 깨고 지역사회의 이익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포스코의 현장직 근로자들은 노조를 구성해 노조의 이익만 추구하는 노동운동에서 벗어나 에너지를 봉사활동에 발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포스코 근로자들은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직접 교류하면서 강한 연대감을 키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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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교수는 다른 기업과 달리 봉사활동이라는 사회적 노동운동이 생길 수 있었던 배경을 포스코의 설립과정에서 찾았다. 그는 "보통 재벌이 기업을 만들 때 자신의 돈을 끌어 모아서 시작한다. 하지만 포스코의 경우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6억달러를 받았다. 이른바 식민지보상청구금의 성격이다. 당시 이 돈 중에서 1억달러로 포스코를 만들었다. 따라서 조상이 흘린 피의 대가로 세웠다는 의식이 강하다. 애국에 대한 부채의식인 셈"이라고 말했다.  
송호근 교수

송호근 교수

포스코의 '제철보국(製鐵報國·제철을 발전시켜서 나라의 발전에 보탬이 되자)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진 배경을 봉사활동에서 찾았다. 그는 "직원과 신입사원 사이의 교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니 봉사활동을 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포항=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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