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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최재식의 연금 해부하기(9) 연금수급권이 신성불가침하다고?

중앙일보 2017.09.17 04:00
연금. [중앙포토]

연금. [중앙포토]

 
연금수급자 바우 씨는 주장한다. “그건 우리에게 이미 확보된 권리야! 재산권이라고. 그러니까 건드리지 마라!” 후배들은 반문한다. “아니 선배님, 현재 연금제도는 선배님들끼리 결정했잖아요. 돈 대는 우리랑 의논도 안 했는데 왜 그걸 우리가 지켜드려야 하죠?” ‘연금수급권’이라는 똑같은 문제에 대해 관점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연금 받을 권리’는 국가의 사회보장 노력으로 형성되는 급여청구권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재산권과 다르다. 재산권적 성격이 있지만, 부동산이나 채권처럼 자유의사에 따라 관리·사용·처분할 수 있는 재산권과 구별된다는 것이다. 아직 퇴직하지 않았거나, 퇴직은 했지만, 연금 받을 나이가 안됐을 때는 연금 받을 사유가 충족됐을 경우를 조건으로 하는 기대권 적 성격에 머물러 있다는 특징도 있다.
 
그래서 연금수급권은 사적 재산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지만, 정책적으로 조정이 가능한 특수한 성격의 재산권이다. 국가 재정 능력이나 기금의 상태, 국민 전체의 소득 및 생활 수준 등 기타 여러 가지 사회적·경제적 여건이나 정책적 고려사항을 종합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폭넓은 형성 재량으로 조정될 수 있다.
 
 
연금인상 기준 변경, 신뢰 보호 위배 안돼    
 
연금 지급 약속을 파기하는 것은 신뢰 보호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제도변경으로 침해받은 이익의 보호 가치, 신뢰가 손상된 정도 등과 새 입법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공익적 목적을 종합적으로 비교해 판단할 문제다. 
 
 
공무원연금 개혁방향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가 새정치연합 공적연금발전TF팀 주최로 열렸다. [중앙포토]

공무원연금 개혁방향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가 새정치연합 공적연금발전TF팀 주최로 열렸다. [중앙포토]

 
2000년 공무원연금 개혁은 연금재정 안정화를 위해 몇 가지 연금지출 억제조치를 취했다. 그중에서 연금액 인상기준을 ‘공무원 보수변동률’에서 ‘전국소비자물가변동률’ 연동으로 바꾼 것이 있었다. 이 사항은 연금 개혁 당시 이미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도 적용됐고, 이들은 이것이 신뢰보호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통상적으로 물가인상률이 보수인상률보다 낮아 그 만큼 연금이 적게 인상돼 신뢰이익이 침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연금연동방식 변경으로 인한 연금수급자의 신뢰가치 손상 정도에 비해 새 입법을 통해 연금제도를 건실하게 유지하려는 공익이 더 중요하다고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장차 받게 될 연금을 산정할 때 기초가 되는 ‘보수월액’이나 ‘연금지급률’ 등을 변경하는 것은 부진정(不眞正) 소급입법에 해당되어 변경이 가능하다. 또한 앞으로 받게 될 연금의 연동방식을 조정하는 것도 법 개정 이후의 법률관계만을 규율하므로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이것이 2000년 공무원연금 개혁내용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결국 앞으로 받을 연금을 변경하는 것은 아직 완성되지 아니한 진행 중의 법률관계를 규율대상으로 하는 부진정 소급입법에 해당돼 소급입법 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종료된 과거의 법률관계에 새로운 법률을 소급 적용하는 진정(眞正) 소급입법에 해당되는 것은 소급입법 금지원칙에 위배된다. 
 
그래서 연금지급률이나 연금산식을 개정할 경우 법 개정 전의 재직기간은 종전 제도를 그대로 적용하고, 법 개정 이후의 재직기간에 대해서만 개정된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중앙포토]

공무원연금 개혁 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중앙포토]

 
많든 적든 월급쟁이는 계획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 월급날이면 얼마가 내 통장으로 들어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연금소득도 마찬가지다. 퇴직하면 연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미리 알아야 한다. 그래서 공적연금은 대체로 확정급여(defined benefits) 형식을 취하고 있다. 확정급여방식은 연금수준을 미리 정하고 나중에 보험료를 조정해 나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확정급여방식이라 하더라도 보험료 인상만으로 제도운영이 어려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연금수급권을 조정할 수 밖에 없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로 제도를 운영하다가 제도성숙과 함께 지출이 늘어나면 결국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세대 간 부양체제로 운영되는 부과방식의 연금제도에서 후세대가 너무 힘들어 받치고 있는 손을 빼버린다면 제도가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약속된 연금이지만, 불가피한 경우 조정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연금수급권 조정 최소한에 그쳐야
 
 
연금수급권. [중앙포토]

연금수급권. [중앙포토]

 
바우 씨가 공무원 생활을 하던 시절은 중국집에서 상사가 “먹고 싶은 것 다 시켜! 난 짜장면”하면 모두 짜장면을 시켜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딤섬, 차오판, 훠궈’ 등 듣도 보도 못한 것을 각자 하나씩 시켜댄다. 이런 후배를 보고 “답은 이미 정해져 있어. 너희들은 그냥 따르기만 하면 돼!”라는 명령이 통할 리 없다.

 
더구나 돈 내는 후배 세대와 한 약속도 아닌데, 그들에게 무조건 약속 지키라고 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경제가 성장하면 많이 받을 것이고, 경제가 위축되면 적게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하다. 
 
또 사회보장연금은 부담 형편에 따라 조정될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하다. 기득권 보장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현실적인 문제가 더 중요하다. 연금수급권의 불가침성만 강조된다면 연금제도 자체의 부실과 중단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연금 약속이 쉽게 무너진다면 누가 제도에 가입하려고 할까? 연금수급권 조정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그리고 조정을 하더라도 현재 행하고 있는 또는 가까운 장래에 예정되어 있는 생활패턴이나 소비패턴의 급격한 변동을 초래하지 않도록 일정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행될 필요도 있다. 
 
연금제도 운영은 신뢰가 중요하다. 연금약속은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지혜가 딴 데 있지 않고 어리석음이 사라진 그 자리에 있다. 믿을 수 있는 연금 약속!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최재식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silver2061@hanmail.net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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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식 최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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