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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직업 리포트] 게임방 같은 교실 … 코딩에 푹 빠진 프랑스·핀란드

중앙일보 2017.09.09 01:37 종합 8면 지면보기
③·끝 디지털 시대 인재 키우는 지구촌
핀란드 코딩 교육업체 미헤킷은 일선 고등학교와 협력해 방과후 ‘코딩 교실’을 연다. 핀란드엔 이런 학교만 200개가 넘는다. [사진 미헤킷]

핀란드 코딩 교육업체 미헤킷은 일선 고등학교와 협력해 방과후 ‘코딩 교실’을 연다. 핀란드엔 이런 학교만 200개가 넘는다. [사진 미헤킷]

핀란드 헬싱키 외곽의 작은 도시 에스포에 위치한 포요이스 타피올란 고등학교의 과학실험실. 15명의 고등학생이 모여 스마트폰으로 원격 조종하는 카메라를 만들고 있었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꽂고, 스마트폰으로 렌즈의 방향·각도를 조작해 셀프카메라를 찍는 장치를 고등학생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대학입시가 코앞인 학생 엘리자베스 우봐로봐(18)는 “입시 못지않게 학교 코딩(coding·컴퓨터 프로그래밍)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인공위성 개발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 안나 비헤르봐(18)의 꿈은 ‘신경과학과 심리학을 융합한 신개념 심리학자’다. 그런데 지금은 코딩 수업에 푹 빠져 있다. 비헤르봐는 “신경망이나 심리 모두 빅데이터를 활용하지 않고선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코딩 전문대학 ‘에콜42’에는 교단도 교수도 없다. 대형 PC방 같은 교실에선 서로 가르치며 코딩을 배운다. [김도년 기자]

프랑스 코딩 전문대학 ‘에콜42’에는 교단도 교수도 없다. 대형 PC방 같은 교실에선 서로 가르치며 코딩을 배운다. [김도년 기자]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 너머에 있는 코딩 전문학교 ‘에콜42’는 거대한 PC방 같았다. 그래픽·보안·인공지능 등 원하는 분야를 골라 단계별로 코딩 기술을 습득한다. 24시간 개방되다 보니 공부·식사·잠을 모두 에콜42에서 해결하는 학생도 많다.
 
IBM이 미국 뉴욕 교육당국과 손잡고 2011년 브루클린에 문을 연 코딩 전문 고등학교 피테크. 정규 공교육 과정을 배우는 학교가 아닌 데다 학비가 공짜다 보니 대부분 빈곤층 자녀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코딩의 세계를 접하면서 자신도 주류 사회에서 ‘폼 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IBM에 취직한 피테크 졸업생 래드클리프 새들(18)은 “일용직 노동자 부모를 둔 흑인으로서 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코딩을 배우고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2년째 시장 트렌드를 분석하는 애널리스트 업무를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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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취재팀이 둘러본 핀란드·프랑스·미국의 교육 현장은 ‘창의적 디지털 인재’를 키우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 어느 곳도 프로그래밍 언어 자체를 암기하듯 가르치지 않았다. 배우는 학생들이 희망하는 직업도 반드시 프로그래머만은 아니었다. 코딩 자체가 ‘디지털 혁명’으로 달라질 미래사회를 이해하는 통로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코딩교육업체 미헤킷의 산나 레포넨 기술책임자(CTO)는 “우리는 학생들에게 자바스크립트(프로그래밍 언어) 사용법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감정을 코딩으로 표현하는 법을 가르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험 점수를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하지도 않았다. 미국 피테크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을 일부러 뽑지 않을 정도다. 빈민가 저소득층 가정, 유색 인종 중에서도 공부엔 큰 관심이 없는 학생들을 주로 선발한다. 이들은 6년간 사이버 보안이나 분석학, 그래픽 디자인 등을 배운 뒤 실용적 지식을 갖춘 정보기술(IT) 전문가가 된다. 설립 이후 처음 배출된 졸업생 40명 중 70%는 4년제 대학에 진학했고, 나머지는 IBM 등 IT 회사에 취직했다.
 
세계의 코딩 교육은 이처럼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데, 국내는 아직 코딩 공교육이 발걸음도 떼지 못했다. 내년부터 중학교 과정에선 3년간 34시간, 내후년부터 초등학교 과정에서 2년간 17시간을 배우는 게 고작이다. 학교의 태반은 전문 교사조차 없다. “결국 교과서를 외워 시험을 치르는 식의 교육이 이뤄질 것”이란 걱정이 벌써부터 나오는 이유다. 김갑수 서울교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한국 학생들의 컴퓨터 활용 능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라며 “초등 과정에 고작 17시간을 배정한 것은 코딩 교육을 안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코딩 바람’을 감지한 국내 학부모들은 사교육 시장으로 몰린다. 문제는 학원들이 기존 입시교육과 비슷한 방식으로 코딩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공계 열풍’으로 우후죽순 생겨난 로봇교육 학원들이 간판만 ‘코딩 학원’으로 바꿔 영업하는 일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강남 코딩학원의 관계자는 “로봇교육 학원들이 코딩을 가르치겠다며 한 대당 100만원 상당의 실습용 로봇을 학부모에게 강매하기도 한다”며 “선행학습 위기감을 부추겨 한 달 만에 과정을 끝내주는 곳도 생겨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컴퓨터 관련 직업을 원치 않는 아이도 코딩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디지털 세상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자신이 무엇을 창조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전문직의 미래』의 저자인 대니얼 서스킨드 옥스퍼드대 교수는 “코딩 교육은 미래에 모국어나 수학 교육만큼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플랫폼 인더스트리4.0 글로벌 대표인 헤닝 카거만은 “디지털을 이해하되, 특정 기술에만 치우친 인재를 길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과 이로 인해 급변할 직업 시장을 감안하면 유연하게 직업을 넘나들 수 있는 범용적 인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국민적 코딩 교육이 나라의 경쟁력을 가를 것이란 주장도 많았다. 핀란드 알토대의 한누 세리스토 부총장은 “4차 산업혁명에 정부의 힘만으로는 대비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적인 코딩 교육이 중요하다”며 “대학에서 시작하는 것은 이미 늦기 때문에 초·중·고등교육 과정에서 코딩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민화 KAIST 초빙교수는 “미래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은 인공지능이 맡고, 인간은 창조적이고 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며 “사회문제를 직접 고민하고 풀어보는 실전형 교육이 더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헬싱키·파리=김도년 기자, 뉴욕=최현주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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