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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은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하게 될까요. [퓨처앤잡-미래직업리포트] 2회는 미래 일자리 형태를 전망한 '유연해지는 노동 시장, 긱 이코노미가 뜬다' 입니다. 
 
‘긱 이코노미’의 상징과도 같은 디지털 노마드(유목민)들은 근무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한다. 출퇴근 개념도 없고 고정적으로 속한 회사도 없다. 사진은 인도네시아 발리에 위치한 공유 오피스 후붓은 디지털 노마드들의 성지로 불린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토론하고 각자 업무를 본다. [하선영 기자]

‘긱 이코노미’의 상징과도 같은 디지털 노마드(유목민)들은 근무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한다. 출퇴근 개념도 없고 고정적으로 속한 회사도 없다. 사진은 인도네시아 발리에 위치한 공유 오피스 후붓은 디지털 노마드들의 성지로 불린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토론하고 각자 업무를 본다. [하선영 기자]

눈을 들면 창밖으로 드넓은 논밭 풍경이 시원하다. 바로 옆에선 이탈리아인 프로그래머와 영국인 교수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울의 선배가 카톡으로 업무를 지시했다. 미국에 있는 취재원을 화상 전화로 인터뷰하고, 기사화해 서울로 보냈다. 왕골 의자에 앉아 빈탕(Bintang) 맥주를 한 잔 마시며, '저녁엔 캐나다 출신 마케팅 전문가 크리스틴이 여는 강의를 들어봐야지’라고 생각했다.
 
국내에선 다소 생소한 개념의 디지털 노마드는 글로벌 정보기술(IT) 전문가 사이에선 이미 보편화된 삶의 방식이었다.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로 불리는 발리 ‘후붓’에는 2012년 설립 이후 1만 명이 넘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다녀갔다. 기자와 함께 후붓서 일한 100여명은 대부분이 미국ㆍ유럽 지역에서 온 20~30대였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디지털 노마드는 급격히 부상(浮上)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ㆍ단기 임시직 중심의 경제 체제)를 상징하는 존재다. 긱은 원래 재즈 공연장 주변에서 자리가 나면 바로 공연을 하던 연주자를 가리킨다. 시장의 필요에 따라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경제 용어가 됐다.  

온라인 플랫폼 등의 발달을 통해 '긱 이코노미'가 뜨고 있다. [사진 Techunzipped]

온라인 플랫폼 등의 발달을 통해 '긱 이코노미'가 뜨고 있다. [사진 Techunzipped]

 
긱 이코노미의 부상은 플랫폼의 발달 덕분이다. 온라인 네트워크는 제품ㆍ서비스를 사려는 이와, 팔려는 이를 실시간으로 연결해준다. 거래를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유통업자도, 대형 조직도 필요 없다.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나 음식 배달 서비스인 우버잇츠가 대표적이다. 평소엔 다른 일을 하다 저녁에 잠깐 자신의 차량을 활용해 ‘긱’으로 활동할 수도 있는 세상이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단기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온디맨드(On-Demand·주문형) 일자리 플랫폼도 확산하는 추세다.
 
국내 온디맨드 플랫폼인 프로파운드의 이유경 대표는 “일 년에 몇 차례 있을지 모를 이벤트나 조사를 위해 관련 인력을 정규직으로 뽑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플랫폼에 등록된 전문 인력을 몇 시간에서 몇 일 단위로 고용해 도움을 받는 기업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후붓에서는 일주일에 10회 이상 다양한 강의가 열린다.[하선영 기자]

후붓에서는 일주일에 10회 이상 다양한 강의가 열린다.[하선영 기자]

긱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미국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미국의 긱 이코노미 종사자는 480만 명으로, 정보ㆍIT 계통 종사자를 모두 합친 470만 명보다도 많다. 2020년엔 이 규모가 두 배 수준인 920만 명으로 늘어날 걸로 전망된다.
 
이런 긱 이코노미가 부상하며 대기업 정규직을 중심으로,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엔 퇴근하는 일의 형태가 급속히 바뀐다는 것이 학자들의 분석이다.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미래직업연구팀 연구위원은 “지금은 어느 직장에 다니느냐가 내 일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표현이지만, 미래엔 나는 어떤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가 일을 설명하는 핵심 표현이 될 것”이라며 “이 역량을 기반으로 플랫폼에서 내 재능을 사고 파는 일들이 일상화된다”고 내다봤다.  
[사진 구글]

[사진 구글]

 
문제는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의 근무 환경이 양극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 같이 전문성ㆍ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군에선 긱 이코노미가 자유로움과 다양한 일감을 보장하는 기회로 여겨진다. 전기ㆍ배관 같은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도 플랫폼을 통해 수요자를 실시간으로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버 드라이버 같이 교통ㆍ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순 노무직들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이 플랫폼에 몰리며 몸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 데이비드 오터 메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가 “창의적 역량이 극단적으로 중요해지는 시대다. 교육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자신만의 역량을 개발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중앙일보 하선영(왼쪽) 기자가 후붓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하선영 기자]

중앙일보 하선영(왼쪽) 기자가 후붓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하선영 기자]

플랫폼을 통해 노동력을 사고파는 세상, 직장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미래는 너무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공유 오피스 ‘후붓’을 설립한 스티브 먼로는 “안정성을 보장받기 위해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으냐”고 되물었다. 미래엔 자신의 역량을 기반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하는 선택권이 열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급변하는 산업 지형 때문에 미래엔 직업의 안정성에 매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거란 지적도 있다. 호주의 비영리 교육단체 FYA(the Foundation for Young Austrailliansㆍ호주청년재단)는 지난해 ‘새로운 일의 질서’라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 15세인 호주 청소년은 평생 다섯 가지의 직종에서 17개의 직업을 전전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만큼 일자리 시장의 변화가 빠를 거란 얘기다. 브로닌 리 FYA 부대표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평생 한 직업에 종사하겠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며, 직업을 목표로 공부하는 일도 어리석다”고 말했다. “다양한 직업을 넘나들 수 있도록 포괄적인 범위에서 역량을 키우되, 어떤 역량이 기술로 인해 대체될 가능성이 큰지를 늘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일자리 시장이나 고용 정책이 이런 변화에 등돌리고 있다간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민화 KAIST 초빙교수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어떤 산업의 어떤 직업군이 부상할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확실한 건 갈수록 빠르게 유연해지는 노동 시장의 변화에 구성원이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변화를 앞장서 받아들이고 재교육 시스템 및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은 어떻게 일하고 어떤 꿈을 꾸게 될까요. 중앙일보 퓨처앤잡 페이지(http://news.joins.com/futurejob)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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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임미진, 발리(인도네시아)=하선영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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