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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김명수는 반양승태 깃발 든 저항군” … 뒤집히는 사법부

중앙일보 2017.08.31 01:00
조강수의 세상만사
지난 24일 찾아간 춘천지법의 전경. 을지연습 마지막날, 김명수 후보자는 청문회를 준비 중이었다. [춘천=조강수 기자]

지난 24일 찾아간 춘천지법의 전경. 을지연습 마지막날, 김명수 후보자는 청문회를 준비 중이었다. [춘천=조강수 기자]

대한민국 사법부가 요동치고 있다. 김명수(58·사법연수원 15기) 춘천지법원장이 지난 21일 양승태 대법원장의 후임 대법원장에 지명되면서다. 그는 56년 만의 비(非)대법관 출신 후보자다. 사법연수원 기수로는 양 대법원장보다 13기 아래다. 무엇보다 올해 초 터진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도한 ‘국제인권법연구회’(판사 480명 가입)의 초대·2대 회장을 지냈다. 법원 내부에서 “‘양승태 코트(법원)’의 대립군 지도자가 대법원장에 발탁됐다고 본다. 대통령-대법원장-대법관 등으로 이어지는 인적 쇄신을 통한 사법 개혁의 신호탄”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 24일 오후 서초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동서울터미널로 갔다. 6800원에 춘천행 고속버스표를 사서 36번 승차장으로 향했다. 휴가 나왔다가 복귀하는 듯한 군복 차림 젊은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는 내내 차창 밖으로 비가 내렸다. 1시간10분 걸려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춘천지법으로 직행했다. 김명수 후보자를 만나려고 떠난 ‘무작정 춘천행’이었다. 김 후보자가 22일 양 대법원장을 면담하러 올 때 춘천지법에서 대법원까지 시외버스·지하철을 갈아타고 왔다길래 그 경로를 거꾸로 되짚어갔다. 그가 혼자서 움직이는 동안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 축소, 엘리트 집합소인 법원행정처 개혁, 사법부 블랙리스트 관련 조사 등과 관련해 어떤 구상을 했는지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였다.
 
을지연습 마지막 날, 막상 찾아간 3층 법원장실은 적막했다. 전국 법원 중에서 제주지법보다 규모가 작은 곳이 춘천지법(소속 판사 25명)이라는 게 실감났다. 기자가 나타나자 부속실 직원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더니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이윽고 “지금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 중인데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외부인은 일절 만나지 않으신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만 돌아가라는 권고였다. 이석준 공보담당 판사에게 무슨 구상을 했는지 대신 질문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몇 시간 뒤 답이 왔다. “그냥 웃으시던데요?”
 
김 후보자는 사법부의 주류는 아니었다. 지난 5월 신임 대법관 인선 때 조재연·박정화 대법관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진보 성향 법관들 모임에선 주류였다. 노무현 정부 때 ‘우리법연구회’ 회장, 그 후신 격으로 2011년 8월 출범한 ‘국제인권법위원회’의 초대 회장 등을 지냈다. 법관 독립에 대한 소신이 확고하고 사법 행정의 민주화를 주도해왔다는 평가를 듣는다.
 
춘천지법 A판사의 얘기다. “지금까지 사실심(1, 2심) 재판 업무에만 종사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사법 행정의 관료화에 대한 문제 의식이 강할 겁니다. 사법 행정은 수직적·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판사와 시민이 적극 참여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는 소신을 갖고 있어요. 지난해 초 춘천지법원장으로 발령 나자 서울의 집을 처분하고 춘천의 관사로 부인과 둘이 내려와 삽니다. 재산도 많지 않고 소탈한 편이죠. 급진적이라기보다 온건 합리주의자에 가까운데 잘 몰라서 지레 걱정하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그 걱정하는 분들 중 고등법원의 B판사를 만났다. 그는 “대법관 출신이 아니고 기수가 낮아서 대법원장에 부적절하다는 것도 고정관념”이라며 “일선 법원장까지 했다면 역량은 인정받은 것이고 지명 여부는 대통령의 인사 권한”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려스러운 건 특정 모임이나 세력을 대표하는 인사가 발탁됨으로써 법원의 구성원들에게 잘못된 사인을 주고 그것이 사법부의 독립을 해칠 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대법원청사 중앙홀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중앙포토]

서울 대법원청사 중앙홀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중앙포토]

잘못된 사인이라니?
“여태까지는 법과 양심에 따라 충실한 재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젊은 법관들 사이에서 특정 세력에 줄 서고 기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횡행할까 우려된다. 김 후보자는 지난 3월 25일 인권법연구회가 개최한 학술대회에 현직 법원장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석해 발언했다.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의 상징이 돼야 하는데 그에 걸맞은 행동은 아니었다. 지난 2월부터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사법행정권 남용 문제를 제기하고 5월에 인권법연구회 간사이던 김형연 부장판사가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갈 때 (특정인을 요직에 앉히려 한다는) 의구심이 일었는데 그런 게 현실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이번 인사의 충격 강도는.
“솔직히 말하면 김 후보자의 선배인 연수원 13, 14기의 현직 법원장과 고법원장들 충격이 클 것이다. 기수를 파격적으로 내림으로써 그들이 법원에 근무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리면 양승태 코트가 추진해온 ‘평생법관제’가 물 건너갈 수 있다. 판사 근무평정 등에 대해 법원장들이 대법원장에게 업무보고를 해야 하는데 양쪽이 다 불편하지 않겠나.”
 
어떤 생각이 드나.
“나는 후배들에게 늘 판사는 무색투명한 유리그릇이 돼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릇에 색칠을 미리 해놓고 있다면 안에 든 물건이 하얗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뭐라고 해야 할지 헷갈린다.”
 
지방에 근무하는 15년차 C판사는 “이러다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인권법연구회 소속 대법원장,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비(非)인권법연구회 소속 대법원장의 이분법적 구도로 사법 권력이 교체되는 것으로 국민에게 비쳐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장의 인사제청권 행사로 대법관 구성이 변화하면 상고심 판결 경향에도 변화가 온다. 특히 바람을 타는 건 사법 행정의 방향이다.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상고법원 도입, 법원행정처 개편 등 어디에 힘을 주느냐에 따라 사법부의 색깔도 달라진다. 김 후보자는 지명 직후 “31년5개월간 사실심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호흡하며 재판만 해온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보여 드릴 것”이라고 직무 수행의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가 대법관 제청권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3명 지명권, 3200명의 판사 임명권 등을 갖는 대법원장직을 어떻게 요리해 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 과정에서 이런 목소리도 참고하길 바란다.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에 신학자인 라인홀트 니부어의 ‘평온을 비는 기도’가 나온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용기,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내용이다. 지금 상황에 딱 맞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어쩌겠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재판이다. 열심히 기록만 보고 있다.”(법원장급 판사)
 
갑자기 김 후보자에게 다시 묻고 싶어졌다. 대법원에 도착했을 때 중앙홀에 있는 ‘한국 전통 복장을 한 정의의 여신상’을 마주했는지, 그 여신상이 저울과 법전을 양손에 들고 있는 걸 봤는지를. 아마도 저울은 진보나 보수의 시각이 아니라 법의 잣대로 증거와 양심의 무게를 재라는 뜻 아닐까. 그럴 것이라 굳게 믿으며 서울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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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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