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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히말라야서 손가락 잃고 산이 된 남자

중앙일보 2017.08.26 01:00 종합 19면 지면보기
산악인 박정헌,
 
그를 처음 만난 건 2007년이다. 첫 악수, 뭔가 뭉클했다.
 
짧고 뭉텅한 그의 손가락 탓이었다.
 
온몸에서 살점을 떼어 붙여 만든 손가락이었다.
 
사실 그를 만나게 된 계기가 바로 그 손 때문이었다.
 
짧고 뭉텅한 손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인터뷰의 주제였다.
 
2005년 사고가 있기 전까지 그는 당대 최고의 거벽 등반가였다.
 
안나푸르나 남벽,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올랐다.
 
더욱이 K2 남남동릉은 무산소로 등정했다.
 
시샤팡마 남서벽에선 새 루트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러다 2005년 1월 사고가 났다.
 
촐라체 북벽 겨울 등반에 성공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후배 최강식이 빙하 틈새에 빠졌다.
 
최강식의 양쪽 발목이 부러졌고 그 여파로 박정헌의 갈비뼈엔 금이 갔다.
 
걸을 수 없는 후배, 갈비뼈에 금이 간 그는 서로를 끈으로 연결한 채 산에서 내려왔다.
 
우여곡절 끝에 5일 만에 구조되었다.
 
지옥 문턱에서 돌아온 게다.
 
하지만 손가락과 발가락에 심한 동상이 걸려 있었다.
 
기적같이 용케 살아왔지만, 손가락 8개와 발가락 2개를 잘라내야만 했다.
 
두 손과 두 발로 기다시피 거벽을 오르던 그에겐 생명을 잃은 일과 마찬가지였다.
 
가슴에 품었던 산이 사라져 버렸지만, 그는 뭉텅한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았다.
 
산악자전거로 중국 톈진에서 출발해 베이징, 시안을 거쳐 실크로드 6000㎞를 달렸다.
 
패러글라이딩으로 지리산 삼신봉~세석평전~촛대봉을 거쳐 70㎞를 날았다.
 
10년 전 그의 손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그리고 5년 후, TV에서 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카로스의 꿈’이라는 KBS 다큐멘터리 프로였다.
 
그는 패러글라이딩으로 히말라야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장장 168일간 히말라야 동서 2400㎞를 패러글라이딩으로 횡단했다.
 
하늘에서 히말라야를 다시 품은 게다. 그 모습을 보며, 그에게서 산을 느꼈다.
 
박정헌, 그 자체가 끝을 알 수 없는 산으로 여겨진 게다.
 
그에게 연락을 해서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했다.
 
스튜디오로 온 그에게 몸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그가 겉옷을 벗고 포즈를 취했다. 박정헌, 과연 그가 곧 산이었다.
 
그 후로 그를 보지 못했다.
 
다만 그의 SNS를 통해 활동 소식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에 재미있는 장면들을 보게 되었다.
 
어떤 날은 그가 맨손으로 폭포를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어떤 날은 암벽을 타고 있었다.
 
어떤 날은 카약으로 급류를 헤치고 있었다.
 
각 장면들엔 ‘GREAT 지리산’이란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것은 MBC경남에서 방영되는 자연 다큐 프로그램의 장면이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리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지난 8월 1일엔 한국방송대상 지역오락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메모장을 뒤져 5년 전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찾았다.
 
“여태 봤던 곳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 히말라야였습니다.
 
제가 본 히말라야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패러글라이딩으로 히말라야 횡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이가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제 경험을 전수하고 싶습니다.
 
제가 겪은 어려움과 고난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것 또한 제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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