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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특검의 금요일 트라우마 … 지하 커피숍은 태극기 집합소

중앙일보 2017.08.17 01:00
조강수의 세상만사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세기의 재판’ 1심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올해 2~5월 순차적으로 시작된 국정 농단 사건 재판 중 이화여대 입시 비리,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비선 진료 등의 사건에선 박영수 특검이 완승했다. 이제 남은 건 박근혜 전 대통령·최순실씨의 뇌물수수 재판(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형사27부) 선고뿐이다. 특검과 검찰은 “범죄의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주장한다. 피고인 측은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은 없고 추정과 당위론만 넘친다”고 맞서고 있다. 2017년 한여름, ‘사건 기록 및 증인들과의 역사적 전쟁’을 벌이고 있는 재판부, 검찰·특검, 기업의 입장과 애환을 들여다봤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에 하나뿐인 대법정(서관 417호)에 모처럼 ‘평화’가 찾아왔다. 수개월 전부터 매주 4일(월·화·목·금)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 진행돼 온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사건 재판이 이날 휴정하면서다. 광복절인 이튿날과 재판 준비차 비워 두던 수요일까지 평일 내리 사흘간 재판이 멈추면서 절간 같은 정적(靜寂)이 이어졌다. 여기는 법의 전쟁터다. 재판장이 개정을 선언하면 억울함에 내지르는 고성과 깊은 한숨이 교차한다. 방청객의 대성통곡도 들린다. 그러니 평화는 잠시 누리는 사치다. 당장 17일 54차 재판이 재개되면 소란스러워질 것이다.
 
지난 7일 오후 2시쯤 이 부회장의 결심 공판에 박 특검이 직접 나와 논고문을 읽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방청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박 특검을 에워싸고 구호와 욕설, 물세례를 퍼부었다. 변호사 시절 의뢰인에게 커터칼 테러를 당해 트라우마가 있는 그에겐 압박 요인이 될 만했다. 박 특검에게 연락했더니 “재판이 끝나고 보자”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 대신 수사팀 핵심인 A검사가 분위기를 알려줬다. 그는 “법정에서 20분간 못 나온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박 전 대통령이 갑자기 어지럽다며 피고인석 탁자에 엎드린 날(6월 30일) 재판이 끝났음에도 지지자들이 해산을 안 해 사실상 갇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법정 퇴정 방식이 바뀌었다고 했다. 원래 재판부가 먼저 퇴정하고 검사·피고인 순서로 나가던 데서 피고인·방청객 순서로 퇴정 후 판검사가 같이 퇴정하는 방식으로다.
 
요즘 법정 상황을 어떻게 보나.
“방청석에 촛불 부대는 없고 태극기 부대만 있다. 그들은 주로 휴정 시간, 판사가 자리를 비웠을 때 검사 실명을 부르고 욕설을 한다. 박 특검한테 ‘5대가 망한다’고, 이원석 부장한테는 ‘3대가 망한다’며 저주를 퍼붓는다. 지금까지 퇴정 명령을 받은 사람만 16명이다. 판결 선고일이 다가오면서 위협은 더 커지고 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나.
“법대로 하는 일인데 믿지를 않는다. 잣대가 신앙이고 종교다. 그들은 검찰 기소, 헌재 탄핵 결정, 지금의 재판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어떤 판결이 내려져도 승복을 안 할 태세다. 핵심 측근들조차 안 보인다. 일국의 대통령이 재판을 받는데 오후 서너 시 되면 대법정에 30~40명밖에 없다. 측근 중에선 정무수석을 지낸 허원제씨가 꼬박꼬박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의 주장은 뭔가.
“전부 아래에 미루는 취지다. 안종범 전 수석이 삼성의 장충기, 롯데의 소진세, SK의 김창근하고 다 말아먹었다는 것이다. 문건 유출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과 최씨가 저지른 것이고….”
 
재판이 늘어지는 이유는.
“검찰이 낸 증거에 대해 변호사들이 다 부동의하니 실무자들을 일일이 부를 수밖에 없다. 구속 만기(10월 16일)까지 선고가 내려지지 않게 해 구치소에서 석방돼 다투겠다는 전략 아닌가? 그런 상황 자체가 국가적 불행이다.”
 
건강엔 이상이 없나.
“어지러워 쓰러졌을 때 일시적 현기증이 왔던 것 같다. 그날도 금요일 오후 시간이었다. 월·화·목·금 재판이 이어지다 보니 항상 금요일이 걱정된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에 몰입하지 않고 국외자처럼, 관찰자처럼 지켜본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심정 아니겠나.”(*국회 탄핵안 가결일인 지난해 12월 9일, 헌재 탄핵 결정일인 올해 3월 10일,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치소에 수감된 3월 31일도 금요일이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 측 B변호사는 두 가지를 반박했다. 재판 지연 전략에 대해 “우리가 그렇게 할 특별한 이유가 없으며 재판이 빨리 마무리되기를 바란다”고 부인했다. 오히려 지연의 원인은 검찰에 있다고 받아쳤다. “피의자 신문 조서 등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너무 많으니 합리적인 선에서 불필요한 건 빼달라고 수없이 얘기했다. 그런데 끝까지 철회를 안 하고 증인 신문을 하는 바람에 늦어지고 있다. 우리가 부른 증인은 한 명도 없고 다 검찰 측 증인이다.”
 
박 전 대통령이 사실상 묵비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지금 4개월째 증인 신문 중이라 직접 나서는 게 더 이상한 것”이라며 “증인 신문이 다 끝나고 피고인 신문을 할 때 할 말을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정 농단 재판은 특검법에 따라 1심 선고를 기소 후 6개월 내에 내려야 한다. 재판부를 사건별로 6~7개로 나눠 집중 심리로 진행한 이유다. 재판부 사정을 잘 아는 C판사는 “이번 국정 농단 재판은 워낙 사건이 많아 여러 재판부에 나눠 배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제일 힘들 것이다. 재판부별로 시차를 두고 선고를 하면서 블랙리스트 판결에서의 박 전 대통령 무죄 취지 언급처럼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름휴가를 못 가는 것도 고충이지만 무엇보다 재판 선고에 대한 중압감이 가장 클 것”이라고 말했다.
 ◇ 국정농단 재판들 진행 상황(2017년 8월 17일 현재)

◇ 국정농단 재판들 진행 상황(2017년 8월 17일 현재)

 
체력 고갈도 심각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1주일 네 차례 재판에 빠지질 못한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두 개 조로 나눠 번갈아 들어간다. 여러 종류의 약을 복용하며 버티고 있다고 한다. 수개월째 법정에 나가는 대기업 임직원들도 힘들다. 지난 10일 신동빈 회장이 참석한 재판을 지켜본 롯데의 한 임원은 “요즘 법원 지하 1층 커피숍은 아침부터 재판 관계자들로 미어터진다. 팔도에서 올라온 박사모 회원들이 많다. 아마 서울시내에서 제일 장사가 잘될 것”이라고 전했다. 바라는 게 뭐냐고 묻자 “판사님이 여론에 휘둘리지 말고 법과 원칙, 증거에 따라 선고를 했으면 하는 거죠”라고 답했다. 삼성의 한 임원은 “처음엔 대법정(150개 좌석)을 쓰다가 소법정(30개 좌석, 입석 허용)으로 옮겨 여름 내내 더워서 고생했다. 그러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재판이 끝나고 중법정(102개 좌석)이 비면서 거기서 재판했다”고 전했다.
 
국정 농단 사건 재판의 최대 분수령은 이달 25일로 예정된 이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 결과다. 지난번 구속영장 청구 때와 마찬가지로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 재판이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박 전 대통령의 유무죄와 형량을 속박하는 기이한 구도다. 법정 앞을 지나는데 누군가 말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환청이었을까?
 
조강수 논설위원
※이 기사 작성에는 김솔(한양대 영어영문학과 4년)·이유진(중앙대 사회복지학부 3년)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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