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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보수우파 가치 지키면서 혁신 … 중도까지 포용해야 집권 가능

중앙일보 2017.07.22 01:00 종합 16면 지면보기
이주영 국회 개헌특위 위원장
인터뷰 약속이 갑자기 당겨졌다. 19일 오후 개헌특위 제1 소위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주영(66) 국회 개헌특위 위원장은 소위원회에 모두 참석한다고 했다.
 
“소위 논의가 진짜거든요.”
 
제헌절인 17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연말까지 개헌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한 뒤 국회 개헌특위도 바빠졌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칠 계획이다. 지난 1월 5일 6개월 시한으로 발족한 개헌특위는 활동 기간을 6개월 연장했다.
 
“87년 체제 헌법이 상당히 민주화된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질 수 있었죠. 그 5년 단임제 대통령이 무슨 횡포를 많이 부렸다거나 독재·독선이 심화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대부분 말로가 안 좋았습니다. 그걸 넘어설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이주영 의원은 “저는 탄핵에 동조를 안 했기 때문에 … 지금 탄핵 결정을 마음으로 수용하기는 어렵다”며 “너무 가혹하게 탄핵의 결과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이주영 의원은 “저는 탄핵에 동조를 안 했기 때문에 … 지금 탄핵 결정을 마음으로 수용하기는 어렵다”며 “너무 가혹하게 탄핵의 결과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분권형 권력구조로 간다는 말씀인가요.
“선거 때 정권 쟁취를 위해 뭉쳤던 집단들이 대개 이익 추구로 흘러가더라는 거지. ‘운영이 문제다’ ‘개헌을 굳이 할 필요 없다’는 주장도 있어요. 그렇지만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를 보면 역시 이게 운영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그 대신 협치하는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죠.”
 
 
지방 분권이 강조되고 있던데.
“중앙정부가 권한을 대폭 지방으로 넘겨야 하잖아요. 쥐고 있던 것을 남한테 주기가 쉽지 않고 전통적으로 중앙집권 사회였거든요. 지방 분권은 헌법에 구체적인 규정을 두기는 어렵습니다. 법률과 거의 동급 수준의 그런 조례 입법권도 줄 것인지, 또 지금은 조세법률주의인데 조례로도 조세의 종류와 세율까지 정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인지, 뭐 이런 원칙적인 규정들이 문제지요.”
 
 
문재인 대통령은 분권형으로 가려면 선거법을 고쳐야 한다고 했는데.
“각 정당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지역에서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니까 정치가 발전되지 못하고 있죠. 소선거구제 대안으로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중대선거구제로 가자,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자, 다양한 얘기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과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내각으로 이원화시킨다면 협치가 어려울 것 아니냐. 이런 점을 염려해 어느 한 정당도 절대 다수가 되지 못하도록 하자. 이런 측면에서 선거제도를 논의하고 있는 것이죠.”
 
 
갑자기 전문을 내놓고 투표하라고 하면 국민이 당황하지 않을까요.
“국민과 함께하는 개헌을 하려고 국회개헌특위는 처음부터 다 개방했습니다. 회의록도 다 공개하고 국회방송을 통해 생중계가 다 되었거든요. 또 개헌에 관심이 많은 시민사회를 다 수용하는 자문위원회의가 53명으로 구성돼 있어요. 8월 말부터 9월 말까지 광역자치단체와 공동으로 11차례 정도 전국을 순회하면서 개헌 국민대토론회를 열 계획입니다. 10월 중순부터는 전국에서 네 차례 정도 국민대표 5000명을 임의로 뽑아 대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오프라인에 국회 개헌 발언대를 두어 상시적으로 국민이 제안하고 찬반·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중심제 지지도가 제일 높았는데.
“과거에 그랬죠. 지난해 ‘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 조금 변화가 오고 있는 듯해요. (주머니에서 메모해 놓은 종이를 꺼내) 국회의장실에서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고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하는 혼합정부 형태가 46%, 대통령중심제 38%, 의원내각제 13%였어요.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아니지만 혼합 형태로 이동해가고 있는 거죠.”
 
그는 2014년 3월 5일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40일 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 그는 참사 당일인 4월 16일 팽목항으로 바로 내려가 8월 20일까지 169일 동안 현장을 지켰다. 텁수룩한 수염, 장발과 ‘세월호 장관’이라는 별명이 그의 상징이 됐다.
 
“그날 아침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하고 나와 그 소식을 처음 들었거든요. 구조와 수습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에 있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인천 해경본부 상황실로 달려갔죠. 거기서 워낙 심각한 상황을 보고받고 오전 11시 바로 해경비행기로 현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대통령과 따로 통화는 안 하셨나요.
“우선 수습이 급하지… 상황은 보고가 다 되는 걸로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제가 직접 말씀드릴 계제는 아니었죠.”
 
당시 일부 새누리당 의원이 인양을 반대한 일을 꺼내자 이 위원장은 더 이상 언급을 피했다.
 
“세월호 문제는 안 다루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 흘러간 이야기인데… 이미 인양해 미수습자 9명 중 4명 수습하고 5명 남아 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 상처가 되살아나게 한다든지, 이런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최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하는 걸 보면 극우, 6070, 영남 지향적입니다.
“그건 뭐,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당이 처한 여러 가지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한 과정으로 봅니다. 결국 보수우파의 가치와 이념을 원칙으로 삼고, 그 다음에 변화에 잘 적응하는 혁신도 함께해나가야 되거든요. 그렇게 해서 중도까지 다 포용할 수 있는 정당으로 가야 집권할 수 있죠. 지금 보여지는 그걸 극우라고 평가한다면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죠.”
 
 
보수의 가치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옛날 공산 독재, 그런 정치이념과 대척점에 있는 자유민주주의, 시장에 많은 재량권을 주는 시장경제주의, 그리고 권력의 사유화나 남용을 잘 견제하기 위해 법치주의를 잘 지켜내는 것. 이런 것들이 보수우파가 지켜야 될 근본 가치가 아니겠는가 봅니다.”
 
 
탄핵 때는.
“질서 있는 퇴진으로 가자고 했죠. 탈당 요구를 해서는 안 되지 않느냐. 우리가 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지 대통령만 축출하고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우리만 살기 위해서. 원로들이 4월 퇴진, 6월 조기 대선을 요구했기 때문에 그렇게 가면 좋겠다고 했죠.”
 
 
최근 한국당 일부에서 탄핵을 부정하는데.
“저는 탄핵에 동조를 안 했기 때문에…. 뭐 지금 탄핵 결정을 마음으로 수용하기는 어려워요. 대통령의 질서 있는 조기 퇴진으로 잘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너무 가혹하게 이런 탄핵의 결과가 왔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그는 “보수 가치 이념을 중심으로 단결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S BOX] 판사 시절 홍준표 대표 이름 바꿔주고 함께 정치 입문
이주영 위원장 부친은 은행원이었다. 경남 의령 출신으로 마산상고를 나왔다. 부친을 따라 초등학교 때 서울로 전학한 이 위원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다녔다.
 
그는 1995년 판사를 그만두고 96년 15대 총선에 출마했다. 그는 청주지법 판사 때 홍준표 검사를 만나 이름을 ‘판(判)표’에서 ‘준(準)표’로 바꿔줬을 정도로 가까웠다.
 
그때는 3김 정당이 지배했다. 신한국당(김영삼), 새정치국민회의(김대중), 자민련(김종필). 새정치국민회의에 따라가지 않은 통합민주당에는 노무현·이철·제정구·원혜영·박계동 의원 등이 있었다.
 
“홍준표하고 제가 의논하면서 그랬죠. ‘참신하고 개혁적인 정당이다. 젊은 의원들이 우리 희망이다.’ 같이 가기로 하고 제가 먼저 입당했습니다. 홍준표는 뒤에 입당하기로 했는데 마음이 바뀌어서 신한국당으로 갔죠.”
 
결국 이 위원장도 한나라당으로 갔잖아요.
“97년 대선 때 조순씨를 통합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냈는데 이회창씨와 단일화해 합당해 버렸죠.”
 
이 위원장은 17대 보궐선거를 포함해 16대부터 창원과 창원마산합포에서 5선을 했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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