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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죽을 권리, 치료받을 권리

중앙일보 2017.07.18 02:29
김성탁 런던특파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영국 중부에 사는 노엘 콘웨이는 운동신경세포 질환을 앓고 있다. 교수 출신으로 67세인 그는 몸 근육이 파괴돼 현재 걸을 수 없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쉰다. 그는 고등법원에 원하는 시기에 죽음을 택하게 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3년 전 존엄사를 허용해 달라는 소송이 제기됐지만 대법원은 의회가 존엄사법 도입 여부를 정하라고 판결했다. 20년 가까이 논쟁이 벌어져 온 존엄사법을 놓고 2015년 의회가 표결을 벌인 결과 부결됐다.
 
고등법원은 조만간 청문 절차를 진행한다. 법정에 나올 수 없는 콘웨이는 변호사를 통해 “나는 곧 사지 마비가 올 텐데 산지옥이 될 것”이라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좀비처럼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도록 판단 능력이 있을 때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영국에선 의사가 환자의 존엄사를 도울 경우 최고 14년형에 처해진다.
 
이와 동시에 영국에선 생후 11개월 된 찰리 가드의 치료가 재판정에 올라 있다. 가드는 희소병인 미토콘드리아 결핍 증후군을 앓아 근육과 뇌가 손상됐다. 인공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다. 가드의 부모는 미국에서 새 치료법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소셜 펀딩 사이트를 열었다. 8만여 명이 가드를 데려가 보라며 130만 파운드(약 19억원)를 모아줬다. 하지만 가드를 치료해 온 영국 그레이트오먼드 병원 측은 고통만 줄 뿐이라며 연명 치료를 중단하자는 소송을 냈다. 고등법원에 이어 대법원과 유럽인권재판소 모두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드가 생명을 다할 때까지 바티칸의 병원에서 돌봐주겠다고 밝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해당 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실험적인 치료법을 적용해 본 적이 있는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신경과 전문의 미치오 히라노 교수가 치료법이 효과를 보일 가능성이 10%라며 의욕을 보였다. 그레이트오먼드 병원 측은 가드에게 해당 치료법을 적용할 것인지를 다시 고등법원에 물었고, 법원 측은 미국과 영국 의료진이 합의하면 가드의 미국행에 동의할 수 있다고 여지를 열어놨다.
 
히라노 교수가 런던을 찾아 가드를 진료할 예정이라 가드의 운명은 조만간 결론이 날 전망이다. 자신의 몸 상태를 표현하는 콘웨이에게 죽을 권리를 줘야 하는지, 치료가 고통만 더하는지를 말할 수 없는 가드에게 부모의 뜻대로 치료받을 권리를 줘야 하는지 모두 쉽지 않은 문제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 속에 가족과 함께 품위 있게 마지막 생을 마감하는 데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다. 매우 국한된 소극적 안락사 법안이 내년부터 시행되는 국내에서도 안타까운 콘웨이와 가드는 언제든 생겨날 수 있다.
 
김성탁 런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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